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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아닙니다.
고슴도치 젖먹이는 모습입니다.
눈도 귀도 붙어 있는 주제에
일어서기부터 하고 있는 당돌한 새끼입니다.
태어난지 1주일 된 새끼의 뒤집어진 모습입니다.
고슴도치 전문용어로는 '밤송이 모드'라고 한답니다.
오늘은 저희 아이들 얘기를 좀 하려고요.
고슴도치 새끼들이 아니라, 저희 새끼들 말입니다.
연년생인 딸 둘이 있는데요,
큰 아이는 초등학교 때 과학영재반에 들어갈 만큼 공부를 좀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냈습니다.
어린이 선교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교회에서 운영하기에 신뢰가 갔고,
기독교 세계관 확립을 위한 커리큘럼이 좋았거든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에 비하여 비용도 저렴했고요.
그런데,
나중에 하나하나 알게 된 사실들이 참 실망을 주더군요.
5개 학년(약 200명)이 기숙하고 있는데 저녁시간에 사감 한 분이 감독을 하기에 아이들의 탈선이 심해지고,
과목 선생님들은 반 이상이 현직 학원강사들의 출장 강의로 충당하고,
그곳의 교감 선생님 딸도 중1에 들어왔으나 제일 먼저 자퇴시키는 등등.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허용하심에 귀 기울여보자"
죽일놈의 말이었지요.
더는 안되겠다 싶어 그 해 11월에 아이를 자퇴시켰습니다.
이것이 홈-스쿨링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아이의 정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책상에 10분도 앉아 있지를 못하는 집중력, 가끔 내 벹어지는 욕설, 인터넷 중독 등등.
무기력증도 심했습니다.
나중에 고백한 말이지만 죽고 싶었다고 말하더군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싫어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다는 항변에 저 역시 멍해졌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한 참 후에 아빠인 저 자신에게서 그 문제를 찾게 됐습니다.
아이는 항상 저의 맘에 쏙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의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나르시시즘이었습니다.
나의 소망을 딸 아이에게 투사했던 것이지요.
언젠가 기도 중에 그 아이의 얼굴에 저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환상을 보게 됐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저 자신 이었습니다.
아이 사랑이 아닌 자기사랑에 빠져 살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딸 아이는 저의 굴레에 쌓여 질식하기 직전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저를 위한 죽음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존재를 보게 됐고 사랑하게 됐습니다.
제가 아이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아이의 행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아이를 향한 저의 비전은 말끔히 버렸습니다.
그져 존귀한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만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부터 아이가 안정되어 갔습니다.
작년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올 해에 숭의여고에 입학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것에 본인도 만족스러워 합니다.
잘 적응을 못하고 있는 회장이 된 친구에게 위로하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습니다.
저 역시 기쁘고 감사합니다.
책임, 도리, 운운하며 내가 만든 나의 짐에 눌려 살았거든요.
이 짐을 덜게 됐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요.
둘째 아이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말씀이 길어졌네요.
언니따라 덩달아 둘째 아이도 홈-스쿨링을 하게 됐습니다.
본인은 학교에 가겠다고 주장했는데 꼬드겨서 학교를 안 보냈거든요.
결국 작년에 언니와 같이 검정고시를 패스했고,
지금은 친구보다 빠른 1년을 즐기느라 입이 찢어졌어요.
심지어 토플에 도전하겠다고 열심이긴 한데, 하거나 말거나지요.
이제는 고등학교에도 안가겠다고 하니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됩니다.
이제 위의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고 마치려합니다.
두 아이가 애완동물을 좋아합니다.
저희 부부는 질색이고요.
저는 동물을 사람과 같이 여기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하거든요.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3년 전에 마당에서 키우는 조건으로 강아지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서 바람을 피웠는지 7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때 문외한인 제가 산파역할을 했거든요.
정말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요?)
나중에는 감당이 안되어 젖을 끊자마자 새끼들을 나눠줬는데 몇 달 후에는 어미도 집을 나가 안 들어오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보신탕집에서 잡아간것 같아요. 틀림 없어요)
집안에 바글거리던 강아지들이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그런 적막함에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땐가 아이들이 고슴도치 한 쌍을 분양받아왔어요.
자기들이 용돈을 모아 샀으니 지켜만 보라면서요.
위의 사진은 그것이 사고를 쳐서 낳은 새끼들이에요.
6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죽었어요.
'고슴도치 사랑' 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사망소식을 올린 것을 보여주더군요.
애도의 물결이 얼마나 넘쳐나는지 카톨릭 장례미사를 보는 듯하더군요.
추도 글 하나 소개할까요?
"무지개 너머 천국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거에요~"
그런데, 지들은 즐기기만 하고 목욕, 집 갈이 등등은 제가 하고 있는거 아세요?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슴도치를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고요,(처음에 정신이 이상한 아이들 아닌가 걱정 했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슴도치에게도 정이 가더라고요.
처음엔 처다도 안 보던 아내 마저 새끼들을 보며 즐거워 하니,
알 수 없는게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