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

돼지가 아닙니다.
고슴도치 젖먹이는 모습입니다.


눈도 귀도 붙어 있는 주제에
일어서기부터 하고 있는 당돌한 새끼입니다.


태어난지 1주일 된 새끼의 뒤집어진 모습입니다.
고슴도치 전문용어로는 '밤송이 모드'라고 한답니다.


오늘은 저희 아이들 얘기를 좀 하려고요.
고슴도치 새끼들이 아니라, 저희 새끼들 말입니다.

연년생인 딸 둘이 있는데요,
큰 아이는 초등학교 때 과학영재반에 들어갈 만큼 공부를 좀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냈습니다.
어린이 선교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교회에서 운영하기에 신뢰가 갔고,
기독교 세계관 확립을 위한 커리큘럼이 좋았거든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에 비하여 비용도 저렴했고요.
그런데,
나중에 하나하나 알게 된 사실들이 참 실망을 주더군요.
5개 학년(약 200명)이 기숙하고 있는데 저녁시간에 사감 한 분이 감독을 하기에 아이들의 탈선이 심해지고,
과목 선생님들은 반 이상이 현직 학원강사들의 출장 강의로 충당하고,
그곳의 교감 선생님 딸도 중1에 들어왔으나 제일 먼저 자퇴시키는 등등.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허용하심에 귀 기울여보자"
죽일놈의 말이었지요.
더는 안되겠다 싶어 그 해 11월에 아이를 자퇴시켰습니다.
이것이 홈-스쿨링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아이의 정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책상에 10분도 앉아 있지를 못하는 집중력, 가끔 내 벹어지는 욕설, 인터넷 중독 등등.
무기력증도 심했습니다.
나중에 고백한 말이지만 죽고 싶었다고 말하더군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싫어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다는 항변에 저 역시 멍해졌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한 참 후에 아빠인 저 자신에게서 그 문제를 찾게 됐습니다.

아이는 항상 저의 맘에 쏙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의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나르시시즘이었습니다.
나의 소망을 딸 아이에게 투사했던 것이지요.
언젠가 기도 중에 그 아이의 얼굴에 저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환상을 보게 됐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저 자신 이었습니다.
아이 사랑이 아닌 자기사랑에 빠져 살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딸 아이는 저의 굴레에 쌓여 질식하기 직전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저를 위한 죽음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존재를 보게 됐고 사랑하게 됐습니다.
제가 아이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아이의 행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아이를 향한 저의 비전은 말끔히 버렸습니다.
그져 존귀한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만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부터 아이가 안정되어 갔습니다.
작년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올 해에 숭의여고에 입학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것에 본인도 만족스러워 합니다.
잘 적응을 못하고 있는 회장이 된 친구에게 위로하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습니다.
저 역시 기쁘고 감사합니다.
책임, 도리, 운운하며 내가 만든 나의 짐에 눌려 살았거든요.
이 짐을 덜게 됐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요.

둘째 아이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말씀이 길어졌네요.
언니따라 덩달아 둘째 아이도 홈-스쿨링을 하게 됐습니다.
본인은 학교에 가겠다고 주장했는데 꼬드겨서 학교를 안 보냈거든요.
결국 작년에 언니와 같이 검정고시를 패스했고,
지금은 친구보다 빠른 1년을 즐기느라 입이 찢어졌어요.
심지어 토플에 도전하겠다고 열심이긴 한데, 하거나 말거나지요.
이제는 고등학교에도 안가겠다고 하니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됩니다.

이제 위의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고 마치려합니다.
두 아이가 애완동물을 좋아합니다.
저희 부부는 질색이고요.
저는 동물을 사람과 같이 여기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하거든요.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3년 전에 마당에서 키우는 조건으로 강아지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서 바람을 피웠는지 7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때 문외한인 제가 산파역할을 했거든요.
정말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요?)
나중에는 감당이 안되어 젖을 끊자마자 새끼들을 나눠줬는데 몇 달 후에는 어미도 집을 나가 안 들어오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보신탕집에서 잡아간것 같아요. 틀림 없어요)
집안에 바글거리던 강아지들이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그런 적막함에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땐가 아이들이 고슴도치 한 쌍을 분양받아왔어요.
자기들이 용돈을 모아 샀으니 지켜만 보라면서요.
위의 사진은 그것이 사고를 쳐서 낳은 새끼들이에요.
6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죽었어요.
'고슴도치 사랑' 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사망소식을 올린 것을 보여주더군요.
애도의 물결이 얼마나 넘쳐나는지 카톨릭 장례미사를 보는 듯하더군요.
추도 글 하나 소개할까요?
"무지개 너머 천국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거에요~"
그런데, 지들은 즐기기만 하고 목욕, 집 갈이 등등은 제가 하고 있는거 아세요?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슴도치를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고요,(처음에 정신이 이상한 아이들 아닌가 걱정 했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슴도치에게도 정이 가더라고요.
처음엔 처다도 안 보던 아내 마저 새끼들을 보며 즐거워 하니,
알 수 없는게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profile

애니

March 28, 2009

아이고 너무 귀엽습니다!!
profile

정용섭

March 28, 2009

고슴도치를 애완용으로 키운다는 말은
듣긴 들은 것 같은데,
이렇게 실제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질문이요.
어린 고슴도치의 침이 언제부터 빳빳해지나요?
고슴도치는 흙색이거나 회색으로 생각했는데,
위 어미 고슴도치는 흰색이군요.
아기를 낳을 때만 저런 색깔인지,
아니면 늘 저런 색깔인지요.
수고가 많습니다.

sksms

profile

박승수

March 29, 2009

안녕하세요,
제가 저 고슴도치 주인 박주영입니다.
3주때부터 따가워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따갑긴 해요.
고슴도치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회색 고슴도치는 플라티나, 스탠다드이고 사진 속 고슴도치는 알비노 종입니다.
가시가 하얗고 눈이 빨간 종류이죠.
그 외에도 많은 종류에 따른 색깔이  있지만 크게는 회색, 갈색, 하얀색으로 나누어집니다.
profile

라크리매

March 29, 2009

승수님께선 정말 소신껏 자녀교육을 시키시네요
엄마가 되기전에? 많이 배워야 겠어요
누군가를 양육하고 책임진다는 것은 힘든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놀라운 일이기도 한것 같아요
아름다운 모습 잘 보고 갑니다
profile

홀로서기

March 30, 2009

아, 이게 그 고슴도치구나!!!  그런데 저는 얘네들말고 박승수님의 또 다른 고슴도치들이 더 보고 싶습니다 ㅋ
profile

은빛그림자

March 30, 2009

"제가 아이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아이의 행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 문장의 심층 의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 한계....
이 한 문장을 오늘 내내 틈틈이 생각해 볼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Notice 사회적거리 유지 기간 온라인예배 임마누엘 Mar 05, 2020 59515
Notice 말씀예전 - 성경봉독 - 에문. 2023.12.10 file 우디 Jan 09, 2018 65516
Notice 서울샘터교회 휘장성화 총정리 file [7] 우디 Jan 04, 2014 131836
Notice 교인나눔터 게시판이 생겼습니다. [2] mm Feb 13, 2012 233827
Notice 2025년 교회력 [1] 우디 Nov 26, 2011 271534
Notice 서울샘터 교회 창립의 변 [123] 정용섭 Oct 24, 2008 353004
107 사람, 변화 [13] 박찬선 Apr 15, 2009 11497
106 카페 개설 설문 조사!(댓글 달아 주세요~~) [47] 은빛그림자 Apr 15, 2009 10209
105 부활절 예배! [1] 정용섭 Apr 10, 2009 20052
104 주보 2009년 4월 12일, 부활절 (부활절 첫째 주일) file [6] 우디 Apr 10, 2009 10910
103 1차 샘터 산행을 마치고 [11] 산꾼 Apr 09, 2009 10495
102 정목사님과 우디 님께 공개 감사 드립니다~~~ [8] 신완식 Apr 08, 2009 10353
101 잠깐 광고!! [5] 은빛그림자 Apr 07, 2009 10703
100 再會 [3] 김바울 Apr 07, 2009 9658
99 호빈 어머님께 드리는 짧은 글 [22] 은빛그림자 Apr 06, 2009 10470
98 운영위원회 정기 회의 결과 [7] 은빛그림자 Apr 05, 2009 10657
97 서울 샘터교우 첫 산행 에 참여하는 사람들 [2] 산꾼 Apr 04, 2009 11095
96 주보 2009년 4월 5일, 사순절 여섯째(종려) 주일 file [8] 우디 Apr 03, 2009 12847
95 주일 산행 사전 답사 다녀왔습니다 ~ ^^* [5] 소풍 Apr 01, 2009 10534
94 샘터교회 홈피가! [9] 정용섭 Mar 31, 2009 10342
»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쁜 법이여!!! file [6] 박승수 Mar 28, 2009 13141
92 첫번째 샘터교우 산행 알림 [25] 산꾼 Mar 27, 2009 10308
91 주보 2009년 3월 29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file [3] 우디 Mar 27, 2009 11800
90 예배준비에 대해서 [6] 정용섭 Mar 26, 2009 10286
89 샘터교회 식구중 산에 오르고싶은 분 계시나요? [18] 산꾼 Mar 21, 2009 10610
88 교만의 끝자락 [16] 박승수 Mar 20, 2009 10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