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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에 관해 말씀드리면, 저는 미소년기부터 시작된 신앙생활이 원래 감리교회 출신입니다.
(물론 감리든 장로든 침례든 성결이든, 현재 한국내 개신교회들은 교파불구 모두가 비슷 비슷한 색깔일 뿐이지요. 경동교회만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저는 참으로 지금까지 약 십여 년간 수도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기웃거린 교회가 한 50개는 될 것입니다.(그런데, 기대를 갖고 찾아가 봐도 다 그냥 그렇더만요. 특히 적지않은 돈을 들여서 예배당 건물은 새로
잘 지어놨는데 전체적인 예배의 질이 엉망이다라고 느껴질 때는 더욱 실망(차라리 "절망")이 컸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의 예배형태 및 그 외 교회에서 벌이는 다른 모든 일들(예를 들면 바자회 같은것, 이걸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물건 파는 것에 크게
역정내신 모습이 떠오를 뿐입니다)이 과연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 바에 부합되는 것인지에 관해 깊은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박해를 받고 카타콤 지하 묘실에서 숨어 살던 로마 초기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변화시켰는데, 그런데 왜 화려한 지금의 우리의 교회들은
그런 능력은 없고 오히려 교회를 나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가 회의가 생기게까지 만들고 있는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는 분명 사회(극렬하게 대비시키자면 "회사")와는 달라야 하는 것인데, 그런데 지금 교회와 물질적이며 외적 부흥이 목적일 뿐인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會社가 서로 다른 모습이 과연 있는 것인가.
예수님은 물질을 중요하게 들어 언급하신 바가 전혀 없었고, 심지어는 열두 사도를 파송하시면서 두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금전도 몸에 지니고 나가지
말라고 지도하셨는데, 또한, 누군가가 잘 지어진 성전을 가리키면서 마치 요즘의 기자들이 누군가에게 하듯이 '보시고서 한 말씀 소감을 말씀해 주시라'고
요청하자, '그래 아주 훌륭하다. 참으로 멋지게 잘 지어졌구나! 라고 물질적 모습을 찬미하시는 대신에, 뜻밖에도, 한마디 짧은 말씀으로 가라사대, '이를 헐라.
내가 삼일만에 다시 짓겠다'라고 하셔서 육신을 가진 모든 인간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인 이 세상의 물질적인 위대성에 찬미하는 것을 부정하셨던
명쾌한 가르침이 우리 신앙의 표본이 될 성경말씀에 분명히 나와 있는데(이러한 물질적 위대성을 시인하는 것이 현대의 "자본주의"), 그런데 지금 왜 교회들은
물질적 축복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또 현실적으로 돈이 있어야만 신앙생활 하기가 용이한 세상이 된 것일까. 지금의 교회들의 이런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이
탄식을 하고 계신 건 아닐런지.
나아가 지금의 교회들이 옹호하고 있는 현대의 자본주의체제 하의 세상 모습이 과연 신앙적인 기준에서의 정당성에 문제가 없는 것일까하는 것과, 적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어야만 할 교회가, 물질적인 모습의 세상을 앞서 찬미하고 그에 완전히 혼혈되어 구분할 수 없게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인데, 지금 과연 교회들이 이에 합당한 모습인지.
지금의 이러한 모습의 교회들에, 과연 구원 문제가 아무런 문제점도 없이 처음부터 이미 확보된 모습 그대로 안전하게 담보되어 있는 것일까.
계속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간다면 이는 신앙적 직무 유기가 아닐런지.
교회에서, (예수님 제자도 아니고 단지 신학교를 나와 시험에 합격했을 뿐인) 목사님이라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분들 모두가 우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관한 문제는 근래의 목사님들의 설교가 너무 세속적인 내용들이고 또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에 치우쳐 있으며-심지어 성경 해석을 아전인수격으로
왜곡시키기 까지-마치 유명 세속 강사의 강의내용 그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차이라면 단지 강단의 목사님들은 성경구절을 가끔 언급하고
있다는 것일 뿐.)
신앙적인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데, 정말로 (모든)목사님들이 우리의 가르침에 관한 절대적인 소양과 능력과 순수성이 있는 것일까.
예수님과, 나중에 무서운 박해를 받고 모두 순교당한 것으로 알려진 11명 직계사도들의 참 고난과 그 뜻을 지금의 성직자들이 진정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을까.
(중대형 교회 목사님들은 실직 우려도 없이 대부분 잘사는 편인데. 그 유명한 바울은 텐트 만드는 일로 연명하면서 선교했는데)
지금 널리 불려지고 있는 모든 교회음악들은 합당한 것인가. 쓰레기더미와 같기만 한 CCM과 가스펠(이에 일부의 찬송가곡 포함)을 예배당에서 아무 분별없이
거침없이 불러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이를 방조하는 교계 및 교회 지도부는 과연 신앙적 기준이 있는 사람들인가. 교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저
사람만 구름떼처럼 모여들고(마치 쇼무대처럼) 헌금만 많이 걷히면 그걸 교회적 성공(부흥)이라고 보는 것인가.(왓치만 니는 로마 교회가 타락하게 된 역사적
동기 중 하나를 당시 교회 내에 믿지 않는 대중들이 너무나 많았었던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지요. 그게 선이든 악이든 역사는 돌고 도는 법...)
"예배" 의미가 무엇일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참 禮拜를 드리게 되는 것일까. 카톨릭적이어야 할까, 정교회적이어야 할까, 성공회적이어야 할까,
구세군의 모습이어야 할까, 아니면 전통 개신교적이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소위 "열린예배"라는 형식이어야 할까.
(* 이에 관한 잠정적인 결론은 "예배"란 바로, 신앙의 주체인 다수가 함께 모여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을 함께 흠모하고, 그 가르침을 배우고, 그를 찬미/
찬양하고, 그에 기도하고, 자신들의 신앙적인 의견을 서로 교제하고, 간증하고, 이런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인 만색인 것이 세상의 원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간다면, 예배의 디테일한 모든 모습까지를 정형화할 수는 없겠으나, 어떻든 그 목적과 뜻과 형식이 이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카톨릭과 정교회는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이를 두고 '구약시대의 유대교로 회귀한 모습이다' 라고 파악한 견해도 있지요-지금의
개신교 예배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예수는 안계시고 사람들만 있는 것이어서 모두가 제대로 된 게 없는 실정이지요. 엇그제 티비를 보다 보니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어떤 대목에 이렇게 언급하더군요. "0000은, 마치 교회에 나가도 들을 만한 게 별로 없는 요즈음의 목사들의 설교와 같아 보인다"라고
말입니다. 이런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못되는 것이지만 우리 신자들끼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짚고 그 대안을 찾아야만 할 때가 이미
지나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네덜란드 기독교계 인사가 한국을 방문하고 교회의 실상들을 조사하여 결론으로 언급한 말은, "(한때 신자율이 무려 8-90%에 육박했던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불과 머지 않아 유럽에서처럼 교회들이 텅텅비는 시대가 올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점차 사회와 차이를 찾지 못하는 교회내 대중들이 보트피플처럼 교회를 이탈하는 불행한 일이 오게되는 것일까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다가 정체성을 잃고만 교회를 누가 궂이 힘들여 찾아올까요? 차라리 일요 골프장 등의 사교모임에나 나갈 것입니다.
신앙적인 문제들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해결과제(우리의 짊어질 "십자가"),
앞으로 정목사님 그리고 여러분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일날 교회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