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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
설상가상, 출구까지 제대로 찾지 못해 시간이 더 걸렸다.
비오는 광화문 거리를 뛰는 듯 걸어 예배당에 도착하니 뒷줄은 다 찼다.
하는 수 없이 어기적 어기적 앞자리로.
앉고 나니 괜히 멋쩍다.
준비 없이 드리는 예배는 늘 그렇듯
어디선가 나타난 실체없는 요정들이(요정이라 하고 싶다)
정신줄을 이리저리 마구 섞어 놓아 도통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 결혼하려면 돈이 중요하구나..
그래도 그렇지 아직 결혼도 안 한 여자가 남편을 '그 인간'이라 칭하는 건
뭐랄까...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처럼 맥이 빠진달까..
아무튼 아니라 본다.
결혼을 앞두고 한 턱 내겠다는 친구를 만났다.
요즘 전세가 품귀라서 아직 집도 못 구했다는 푸념...
돈 없으면 결혼은 할 게 못 된다는 푸념...
더 늙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질책...
뭐 그런 얘기들이 오갔다.
그러던지 말던지.
동석한 한 친구는 잠시 후 이 근처에서 소개팅을 해야하는데 예배는 드리고 싶다 했다.
삼일 교회에서 큰 은혜를 받고 있다는 그 친구에게 우리 교회를 권했다.
가겠다고 했다.
잘 한 걸까?
흠... 그 친구, 옆자리에 앉아 계속 하품을 하고 있다.
시계를 들여다 보다 주보를 이리저리 넘겨본다.
푸훗.. 그래.. 전병욱 목사님 스타일과는 멀어도 너무 멀지, 우리 교회.
어엇. 어느새 설교가 중반을 지났다.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자리가 꽉 찬 거야?
뒤를 슬쩍 돌아보니 정병선 목사님.. 어엇? 정병선 목사님이시다.
찰라였지만 제법 건강해지신 것 같다. 다행이다.
오늘 설교는 박은숙의 집중 안 되기 베스트 쓰리에는 들겠군.
옆자리 친구는 하품하기 병이 걸렸나?
축제라... 축제... 매일 매일이 축제였을 큰 아들.. 그걸 놓쳤다..?
제길.. 알 게 뭐야.. 일 하느라 죽을 맛이었을지.
우리는 모두 잃었던 생명을 다시 찾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냐...?
음.. 진부하군, 진부해.
예배가 끝났다.
옆자리 친구, 나 지루해서 죽을 뻔..이라고 얼굴에 써있다.
크흐흐흐.. 웃음이 나온다.
급하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런던보이 신완식 목사님을 뵈었다.
어! 미남! 내 스타일..............
"목사님, 미남이세요"
아, 이 죽일 놈의 아줌마 멘트.
"아~ 박은숙 집.사.님"
후다닥 나왔다.
나는야 처녀 집사 박은숙 집사라네~~
(글이 점점 의도대로 고상하게 써지지 않는다)
"우리 교회 어때?"
"..................."
"...........?"
"저기.... 이.....단... 뭐 그런 거 아니지?"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나온다.
푸하하하하하하...
빗발도 굵어지고,
웃음 소리도 굵어지고.
"나는 말야.. 전병욱 목사님처럼 힘들 때 위로가 되고 나를 막 다그치고 뭐랄까 파워가 있는 게 좋아.
그리고 예화 같은 것도 많이 들어서 아주 재미있게 설교하는 게 좋더라구"
"우리 교회 설교는 어땠는데?"
"뭐.. 좀 힘도 없어 보이고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쏼라쏼라~~~"
(정 목사님 건강을 생각해서 자체 검열하고 있는 중)
집에 와 잠시 쉰 뒤 후배 (예비) 부부를 만났다.
인사를 하겠다나?
오늘 처녀 집사 염장 지르기 공식 지정일인가?
아~~~ 싫다.
싫어 죽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트레이닝 바람으로 나갔다.
미리 준비한 선물을 들고.
H백화점 로고가 잘 보이게 안겨줬다.
(이 놈의 유치한 속물 근성)
얘기를 나누며 보니 두 사람의 눈 속에 탱글탱글 사랑이 맺혀있다.
제길. 뭐냐.
주변 공기가 이 자리를 빨리 떠야 한다고 내게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래 떠나주마.
집에 오는 길.
커다란 세제를 구입한 뒤
짐꾼처럼 어깨에 척 걸쳐서 갖고 왔다.
아무 것이나 사왔다고 최여사 잔소리를 한다.
되는 게 없다.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거울을 본다.
방으로 들어서는데 낮에 과식한 탓인지 아직도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 생뚱맞게 눈물이 울컥.
사순절인데 너무 많이 먹었다.
생각은 없어지고 본능만 남았나.
진리와 마주할 때 느슨하게 반응하는 게 싫다.
잃었던 생명을 다시 찾은 우리.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와 닿지 않는다.
슬프다.
그치만 뭐.
대충하고 이만 자야겠다.
내일의 축제를 위해서.
ㅇㅎㅎ,
박은숙 처녀 집사님의 글을 읽다가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답니다.
결혼하면 신랑과 재미 있게 살 것 같소이다.
이제 박 집사의 입에서
신앙의 진수를 담은 단어들이 막 쏟아지기 시작하네요.
진리와 마주할 때 느슨하게 반응... 음,
포만감과 사순절을 연결해서
자기를 성찰한다는 게, 음, 많이 컸소이다.
제길 알게 뭐야, 진부해, 와 닿지 않아,
그런 식은 반어법이걸랑요.
자, 오늘밤은
잠의 축제로,
내일은 다시 깨어있음의 축제로 가봅시다.
아, 예배에 늦게 와서
앞 자리에 함께 앉은 그 친구,
기억이 나요.
반가웠다고 안부 전해주세요.
강대상 정리하고 나니 사라진 은빛과 친구분.
눈 도장도 못찍어 아쉬워 했었는데...
은빛님 글의 매력은
솔찍 단백함이 아닐런지요.
물론 유머감각이야 말할것도 없지만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하염없이 비가 오는 오늘도 축제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