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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자유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갈 2:1-11)
지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서 벌어진 이단 논쟁을 설명하는 중입니다. 이단논쟁이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진리논쟁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이단논쟁, 진리논쟁을 통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선봉에 바울이 자리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크게 다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한 부분이 다릅니다. 그것이 이단의 특성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갈라디아 교우들의 자유를 엿보고 종으로 삼으려 했다고 말합니다.(4절) 그리스도교는 자유를 핵심으로 합니다. 그 어떤 종교적 전통으로부터도 근본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그 전통은 율법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파송받은 사람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했습니다. 바울이 볼 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입니다. 율법은 매력적인 종교 규범입니다. 그것을 수행하면 뭔가 하나님께 가까이 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강조하는 십일조와 성수주일을 생각해보십시오. 매력적인 규범입니다. 바울은 그런 율법적인 태도를 철저하게 배격했습니다. 그가 그냥 기분에 치우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평생 율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율법적인 업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뤄보려는 신앙에서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받는 복음의 자유에 이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