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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바위
19 그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주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능력 있는 용사에게는 돕는 힘을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함 받은 자를 높였으되 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21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22 원수가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며 악한 자가 그를 곤고하게 못하리로다 23 내가 그의 앞에서 그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려니와 24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 25 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 위에 놓으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놓으리니 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28 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29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시 89:19-29)
시편 89편은 구원자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26절은 하나님을 ‘구원의 바위’라고 노래합니다. 바위는 시편에 흔히 나오는 메타포입니다. 고대인들에게 바위는 가장 분명한 토대였습니다. 고대인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바위는 변함이 없고 견실한 어떤 것에 은유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바위라는 말은 하나님이 구원의 가장 분명한 토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믿기는 하겠지만 실제의 삶에서 그대로 경험하기를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방식으로만 세상을 경험합니다. 이 세상의 방식은 경쟁입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토대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됩니다. 교회에서도 예수를 잘 믿으면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기독교 신앙의 세속화입니다. 구원의 바위라는 말이 삶과 일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그중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유입니다. 영적인 자유라고 해도 좋습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자유를 경험하는 게 아닙니다. 참된 자유는 영적인 안식으로부터만 가능합니다. 대답은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다면 안식을 얻습니다.
주님, 당신이 바로 ‘구원의 바위’임을 믿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것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돈, 건강, 가족도 우리를 온전하게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숨을 쉬지 못하듯이 세상의 그 누구요,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안식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구원의 바위임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