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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격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19절) 바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신학자이며, 영성가입니다. 그런 정도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기의 한계를 다 극복했을 법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이런 고백을 우리의 수준으로 평가절하하면 곤란합니다. 전문가에게는 작은 흠도 더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보석을 구별하는 능력도 천차만별입니다. 우리는 그냥 지나가는 것도 전문가는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영성의 전문가인 바울의 눈에 자기의 내면세계에서 작동되는 문제들이 크게 부각된 것입니다. 그의 내면세계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중인격입니다. 요즘 심리학에서는 다중인격을 말합니다. 여러 인격이 한 인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누가 진짜 자기일까요? 선의 의지인가요, 악의 의지인가요? 모두가 진짜 자기입니다. 각각이 따로 자기가 아니라 모두가 통합적으로 자기입니다. 이중적으로, 다중적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인격입니다. ‘자기’라는 실체는 먼 후일 언젠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때 확인이 되겠지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완전한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잠정적으로라도 ‘나’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길에서요.
주님, 내가 누구입니까? 아니 나에게서 나타는 여러 의지와 인격은 도대체 나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원하는 것을 행하지 못하고, 원하는 않은 것을 행할 때가 많은데,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해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인격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