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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뿌리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교회를 믿음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믿음만으로 교회의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끼리도 싸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믿음이 아직 자기의 인격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믿음만 좋다면 모든 인간적인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런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너무 이상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이런 믿음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사도들이 직접 지도자로 활동하던 초기 기독교에도 다툼이 그치지 않았다는 데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 공통되는 부분은 확대해 나가고 다른 부분은 줄여나가는 게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닐는지요. 인간에게는 완전한 일치가 불가능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완전한 일치를 구하면 결국 실망만 하게 됩니다. 신자들에게 공통되는 부분은 당연히 믿음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믿음으로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위에서의 말씀처럼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만, 그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믿음 만능론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삶의 기술이라는 말과 연관해서 표현하면, 이것은 믿음의 기술입니다. 이런 기술이 있는 사람은 자기와 다른 형식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합니다. 그리고 차이를 줄여나갑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닐는지요.
주님, 우리가 믿음이 있다 하나 삶의 능력에서 무기력할 때가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 사이의 작은 차이도 극복하지 못합니다. 차이를 확대하고, 일치를 줄이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믿음의 능력에 사로잡히지 못했을 고백합니다. 서로 공유하는 믿음의 토대를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