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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한겨레 신문>에 리영희 선생님 부고 기사가 떴습니다. 간경화로 병상생활을 해오시다가 향년 81세로 소천하셨습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리 선생님은 70년대 <전환시대의 논리>(이하 전논)로 군사독재를 지탱하던 반공논리의 허상을 드러냈습니다. 당대의 대표적 금서였고 학생운동권의 교과서였다는 이 책을 지금 보면 어떤 내용이 지배권력에게 그토록 위협적이었는지 판단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리 선생님이 다른 매체에서 이미 발표한 논문과 칼럼들을 모아 놓은 <전논>은 주장이나 비판보다 중국을 필두로 한 당대 동아시아의 정세 분석에 그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저작의 의미와 파급력은 시대에 대한 저자의 전위적 인식론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는 냉전이라는 세계체제가 실상 선택적 정보에 의해 관리되는 일종의 통치이념임을 암시하면서, 한반도 너머로 시야를 돌리면 인간해방의 의지가 꿈틀거리는 전환시대가 도래함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를 증거하기 위해 철저한 사실과 과학적 분석을 동원해야 했겠지요. 이 같은 저자의 의지는 <전논>의 속편격으로 나온 칼럼집 <우상과 이성>의 제목에서 드러나기도 합니다.
저는 <전논>의 지적 세례가 필요했던 세대는 아닙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시기는 어쩌면 리 선생님이 고대하던 바 "<전논>의 인세수입이 0원이 되는, 그리하여 사회 계몽가로서 자신의 역할이 완전히 소진되기를 바랐던" 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의 바람과는 달리 70년대의 금서는 "우리시대의 고전"이 되어 여전히 서점 사회과학 코너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90년대의 무지랭이 청년은 리영희 선생님을 통해 글쓰기의 엄숙함과 아름다움을 깨달았습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어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고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리영희, <우상과 이성> 서문에서, 1977)
그의 영전 앞에 치장하고 과시하려는 저의 가증스런 글쓰기를 내려놓습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일명 공돌이라 불리며 부끄럽게도 너무나 좁은 관심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금서에서 시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한 것도
유**님이 젊은 시절 감동받았던 책으로 소개된 열 여섯 쪽의 내용에서 수개월전 처음 접했습니다.
이렇게 소개했지요
/ 지하대학과 사상의 은사 / 벌거벗은 임금님을 발견하다 / 지식은 맑은 영혼과 더불어야 한다. /
단 열 여섯 쪽의 간접 감동이었음에도 그 울림이 작지 않았습니다.
저도 리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