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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명절날마다 TV에서 단골로 보여주던 <머털도사> 기억하시나요?
<임꺽정>으로 유명한 이두호 화백님의 어린이 만화였는데, 요즘 EBS 에서 연속극 형식으로 새로 만들어 방영중입니다.
물론 제 아이들은, 아니, 애들 핑계대고 저는 열혈시청중에 있습니다.
한편이 끝날 때마다 엔딩뮤직비디오가 나오는데, 저 요즘 완전 꽂혀있습니다.
자기 전에 꼭 한번 보고듣고 자고, 애들한테 꼭 노래 익혀서 불러달라고 부탁해놓았습니다.
위 그림은 그 엔딩 뮤직비디오 중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예, 예, 저 유치뽕 맞습니다, 맞고요, 어쩝니까, 태생이 이런거 좋아도 너무 좋은 것을.
심지어 작년에는 <개구리 왕눈이>도 새로 한번 쭉 다시 봤습니다.
그림을 좀 보십시오.
백열전구가 없다는 것만 빼면, 제가 어릴적 외갓집에서 본 그 부엌 그대로 입니다.
시멘트, 벽지, 타일이 아닌 돌과 흙과 나무로 만들어졌고 장작불과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다입니다.
저는 어릴적 산에 가서 솔방울을 따다 불을 땠었습니다.
다행히 그게 삶이 아닌 놀이였으니 저는 그저 재미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주인공 머털이는 엄마 아빠 없이 누덕도사 손에 큰 열살 조금 넘은 아이입니다.
한창 엄마아빠에게 투정부릴 그 아이가 장작불을 후후 불어대며 벌써 10년째 무쇠솥에 밥을 짓고 있습니다.
그의 표정은 공사장에서 쉴 틈없이 10시간을 일한 인부들 만큼이나 힘들고 지쳐보입니다.
그는 밥을 짓느라 엎드린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짊어질 삶의 무게를 못이기고 주저앉을 것 같은 것을 간신히 참아내는 것 같아보입니다.
마치 그가 지금 밥을 짓고 있는 부엌만큼이나 어두컴컴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부엌이 그리 어두컴컴하지만은 않습니다.
퍽 환하지는 않지만 조그만 창을 통하여 빛이 들어와 식기와 밥상과 솥과 벽을 비추고 있습니다.
딱 밥짓고 상차릴만큼, 알량한 정도의 빛만 들어오는 군요.
앗!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훨씬 더 큰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 문을 통해서 더 환한 빛이 들어와줌직도 한데 그래봐야 겨우 머털의 앞도 아닌 등 쪽이나 비출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 문으로는 더 큰 하늘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있는 이는 10년째 나무하고 밥하고 물기르기를 시키고 있는 누덕도사입니다.
10년간 도술이라고는 고작 머리털 세우는것 하나 가르쳐주고 말입니다.
난 이 도사가 지금 위풍당당하게 똑바로 엄격하게 서서 머털이가 밥 제대로 하나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우뚱하니 문 옆으로 비껴서서 머털이를 보고 있는 바로 이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그 자세는 묘하게도 머털을 바라보는 스승의 애정과 인내와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합니다.
더 나아가 이 도사는 결국 머털을 자기와 같은 훌륭하고 덕망있는 도사가 되게 하고야 말것이라는 강한 신뢰가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어두운 부엌의 작은 창이 머털이 하루하루를 이기고 수련해나갈 일용할 빛을 내어주었다면,
도사가 열어젖힌 큰 문을 통해 들어온 머털 등 뒤의 빛은, 아니 문을 연 그 도사 자신은 바로 머털이의 미래입니다.
그것도 도사의 의지와 사랑으로 반드시 완성하고야말 머털이의 미래인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머털이를 그 어둡고 고단한 삶으로부터 끌어당기고 있는 머털이의 미래로서
도사는 문을 열고 사랑의 시선으로 기우뚱하게 그를 단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머털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밥을 짓고 있고
그의 호흡을 받은 불과 무쇠솥은 뚜껑 틈새로 김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그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점점 도사로서 완성되어가며 고양되어 가는 머털의 내면의 향기로 보입니다.
밥이 잘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더 머털도사 한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