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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주일 공동공부 교재를 미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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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생명의 신비와 신앙

 

지구 안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 생명체는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많다. 조류 박사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새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곤충 박사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곤충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세균 박사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세균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깊은 바다 속에 서식하는 어류는 또한 얼마나 많은가. 땅 속의 미생물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비의 종류도 많고, 벌의 종류도 많고, 뱀의 종류도 많다.

 

도대체 왜 이 세상에는 그렇게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걸까? 우리가 미처 알 수도 없는 그 많은 생명체가 이 땅에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말이다. 그저 인간과 나무와 몇몇 짐승, 그리고 몇 가지 물고기만 있어도 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 생명체들을 고유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몇몇 먹이사슬로 그 관계를 조금 읽을 수는 있다. 개구리가 파리를 잡아먹고,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고, 산돼지가 뱀을 먹고, 하는 이런 유기적 관계 말이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는 채소가 있고, 가장 위에는 사자, 호랑이, 그리고 그 위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인간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으로 먹이사슬이 완전히 해명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세균에게 잡아먹힌다. 우리의 시체를 박테리아가 처리한다는 말이다. 결국 지구의 먹이사슬에서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이런 먹이사슬로만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 서로 공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유기적인 관계가 그 안에서 작동한다. 그게 생명체의 신비이다. 도저히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 중심의 세계만을 최선으로 생각하지만 마이크로의 세계는 인간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이다. 작은 물방울이 나뭇잎을 적시기도하고 땅속뿌리를 통해서 나무의 몸통을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그 물은 태양, 탄소와 함께 탄소동화작용을 일으킨다. 탄소동화작용은 지구의 생명을 살리는 가장 밑바닥의 화학작용이다. 만약 식물이 탄소동화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생명계는 파괴되고 만다. 그렇다면 결국 지구의 생명은 물이 식물의 몸을 타고 올라가는 그 마이크로의 물리작용에 근거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세관 작용은 일종의 마술과 같다. 물과 나무가 빚어내는 마술이다. 그 마술에 의해서 지구는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놀라운 생명 현상을 구약 기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야훼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산 염소를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은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욥기서 기자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알고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아는 것만큼 모르는 게 많아질 뿐이지 모르는 게 근본적으로 정복되는 게 아니다. 근원자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무지에서 깨어날 가능성은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바로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있다. 던져진 존재는 이 세계를 바로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인식론적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재림을 이 세상의 완성으로 보고, 그때에 모든 인식도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의 재림으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 말고 궁극적 생명을 알 수 있는 길이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아무리 신비롭고 불가해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에 이 땅에서의 삶과 그 이후까지에 이르는 우리의 전체 운명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다.

 

기독교 신앙은 창조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종말에 이르는 우주론적 역사를 예수의 부활 사건에 근거해서 해석하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키워드, 즉 창조와 종말과 부활의 공통점은 생명이다. 생명의 시작이 부활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런 기독교 신앙의 패러다임을 실질적으로 이해하려면 결국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질문은 생명의 정체를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뜻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생명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조금 더 신앙적으로는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것이 바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대답들은 생명 전체가 아니라 부분에 해당될 뿐이다. 이런 부분적인 대답의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생명 전체, 또는 생명 현실에 연루된 사태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 사태의 가장 명백한 분야는 크게 말해서 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 현상에 관한 연구를 말한다. 21세기에는 아마 유전공학을 필두로 해서 이런 생물학 분야가 비약적인 발전을 보일 것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생명에 조금 더 접근하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가 상식적인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지구에서 벌어지는 생명 현상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식물을 제외하고 동물만 보더라도 단세포 생명체로부터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생명체가 살고 있다.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생명이라고 할 때 공동되는 점이 몇 개 있다. 하나는 DNA를 기초로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 복제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관심은 여기서 자기 복제이다. 앞으로 지능과 감성을 소유한 로봇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그 한계는 자기 복제에 놓일 것이다. 앞으로 자연과학이 그런 한계까지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단정적으로 말할 게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생명체는 완전히 새로운 종의 자리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믿는 우리는 유와 무의 경계 설정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생명 이해와도 직결된다. 그동안 우리가 고수하던 생명과 비생명의 선입관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생명 문제를 접근하는 과정에서 인간 중심으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쉬프트이다. 기독교인은 바로 그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로부터 살려내신 그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profile

天命

December 25, 2012

예습할 교재 미리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을 선물로 주신 성탄절

그 의미를 깊이 음미하며 기뻐하는 하루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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