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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
뜻하지 않게 압도적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행복과 불행,
그 시초에는
갑자기 찾아드는 더위나 서리같이,
거의 그 구별을 짓기 어렵다.
하늘 저편에서 던져진
운석과도 같이,
그것은 번쩍이며 위협하면서
우리들의 머리 위에 궤도를 그린다.
그것의 내습을 받은 자는
매일의 퇴색한 생활의 폐허를 앞에 두고
그저 놀라고 당황할 뿐,
힘차고 장엄하게,
파괴적으로 제압적으로,
행복과 불행은,
원컨 원치 않건,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화려하게 도래하여,
그것과 만난 자를,
진실과 헌신을 가지고,
장식하고 감싼다.
행복은 외구(畏懼)로 넘치고,
불행은 감미로 넘친다.
그것은 영원의 저편으로부터,
나누어지지 않은 채 연이어 나를 찾아온다.
둘이 다 힘차고 두렵게.
원근의 사람들이 달려와서,
혹은 시기하고 혹은 두려워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서운 것을 들여다본다.
그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이,
혼란에 떨어져서 수습할 수 없는,
이 지상의 극(劇)에,
축복과 거절을 동시에 주면서,
자기의 모습을 나타낸다.
행복이란 무엇이고, 불행이란 무엇인가?
행복과 불행은 시간에 의해서 둘로 갈라진다.
수수께끼와 같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건이,
갑갑함과 고통스러움의 연속으로 변할 때,
대낮의 천천히 지나가는 시간이,
비로소 불행의 정체를 나타낼 때,
많은 사람들은
낡아빠진 불행의 단조로움에 지쳐서,
절망과 권태를 품고 살아간다.
그때야말로 신실의 때,
어머니의 때, 사랑하는 자의 때,
친구의 때, 그리고 형제의 때,
신실이 모든 불행을 광명으로 가득 채우고,
그것을 조용히,
부드러운, 이 세상 것이 아닌 빛 속에 감싼다.
1944년 6월 21일 "친구에게 보낸 서신"<옥중서간>
** 샘터식구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옮겨봤습니다.
주일 예배시간 다 되서 이 시 발견했어요.
근디 은빛은 역시 빠르네요. 그냥 한 눈에 내용을 뻥 꿰뚫고 !
지둔지사는 예배 드리고 와서 천천히 음미해야 겠어요. ^^^
대신 오늘 아침 찾은 시 하나 먼저 달지요.
기러기 가족
이 상 국
― 아버지 송지호(松池湖)에서 좀 쉬었다 가요.
― 시베리아는 멀다.
―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 찾아보니, 松池湖는 강원도 고성에 있는 자연호수이데요.
추기: 이 시를 읽고 "쿡"하고 웃음이 나오면서도, 어떤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이상한 사람입니다 ! ^^^
불행은 이만하면 됐고 행복이나 압도적으로 좀 찾아와 줬으면 하는 일인.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