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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거창하다. 하지만 우리 삶에 실제적으로 와 닿는 문제이기도 하다.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대(大)학자이든
시골 촌부이든 누구나 자기가 믿는 신의 현존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고,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고민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신이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이 우리 삶에 실제로 현존하느냐
하는 문제다. 어쩌면 두 물음이 섞여 있을 수도 있고..... 이 물음에 어떤 학자가 잘 설명해 놓은 부분이 있어 같이
나누고, 사유해 보려 한다. 하나는 ‘신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이다. 간단히 말해서 논리와 경험으로 신 존재와 현존을 증명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첫 번째로 신 존재에 대한 합리적 증명부분을 보도록 하자.
복잡한 신학적 이야기는 가능한 생략하겠다. 나는 신학자의 발뒤꿈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그 근거까지 제시한 인물로는 캔터베리 대주고 ‘안셀무스’와 중세 신학의
거목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철학자 ‘데카르트’이다. 이들은 순전히 개념과 사고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주장하는 분들이다. 이들의 주장을 읽어보니 대충 비슷하다. 후대에 갈수록 표현이 세련되어져가는 것만
다를 뿐. 대표적으로 안셀무스의 한 구절만 뽑아보면 이렇다. “신은 정의상 그 이상 완전한 존재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완전한 존재다.” 순전히 개념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 중에 18세기 영국의 자연신학자이자 성공회 부주교였던 윌리엄 페일리라는 분이 그 유명한
‘페일리의 시계 유추 논증’을 유발한다. ‘지적 설계론’으로 잘 알려져 있고, 현재 창조과학회의 뿌리라 할 수 있는데,
이 논증 역시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다섯 번째의 길’ 그러니까 신으로부터 모든 피조물들이 쇠사슬과 같이 연결되어
있어 신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질서가 주어졌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만든 이론인데, 정통기독교와 나중에
다윈의 진화론을 계기로 자연과학계에서도 폐기 처분되었다.(아퀴나스는 아님)
잠깐 옆으로 빠졌다. 아무튼 개념과 사고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여러 사람이 이의를 제기
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임마누엘 칸트’다. 안셀무스나 아퀴나스의 주장에 대해 예화를 통해 반박 한
것인데 이렇다. “상인이 그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자기의 현금 잔고에 동그라미를 몇 개 더 그려 넣어도 재산이 불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명쾌하다. 칸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경험적 확증과 경험적 반증이 모두 불가능한 즉 인간
이성을 뛰어 넘어 하는 사유는 가상이고 거친 폭풍과 파도가 이는 무한한 바다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칸트의
말을 더 보충하면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인간의 이성은 경험세계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한계 지어졌는데, 그 이상의 무한한 대상까지 확장하면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가
이겼을까? 중세에는 안셀무스와 아퀴나스가 이겼지만, 근대에는 칸트가 이기고 있다.
신 존재에 대한 합리적 증명 부분의 결론을 내자면, 진리는 타당할 뿐 아니라 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어야 하고 경험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은 두 번째로
‘신 존재를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