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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서 울 샘 터 교 회 주 보
2008년 12월28일, 성탄절 후 첫째 주일
주소: 서울 중구 남산동2가 27-5(히말라야빌딩 지하)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053-856-1227
오늘의 말씀
(갈라디아서 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바울은 종과 자녀를 대비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선포합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위치이지만 자녀는 주인의 사랑을 받는 위치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전자는 율법이고 후자는 복음입니다. 물론 율법 자체가 잘못이라는 건 아닙니다. 율법 없이는 그 어떤 공동체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율법이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율법주의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안의 율법주의와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예루살렘을 거점으로 하는 주류 기독교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할례와 토라 없이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설교를 부정했습니다. 이들로 인해서 갈라디아 교우들의 신앙이 크게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은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라고 말입니다.
주일공동예배순서
[개 회 예 전]
*예배를 여는 교독
<목사>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회중>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골 3:16)
*오늘의기도·····································································다같이
전능하신 하나님,
인간 본성의 존엄을 놀랍도록 귀하게 창조하셨으며,
죄로 파괴된 본성을 더욱 놀랍도록 회복하셨나이다.
당신은 성육신하신 말씀의 새 빛으로
우리를 비추셨나이다.
이 빛이 우리 마음속에서 타올라
우리 삶을 온전히 비추기 원하나이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주 앞에 설 수 있게 하시고
세상 가운데서 그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하소서.
이 시간 우리의 영혼을 기울여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예배드리오니
이 예배를 받아주소서.
이제와 영원토록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으로 살아 계시고 다스리실,
만물의 통치자이며 구속자이시며,
부활의 승리자로 우리에게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찬송····························(찬양하라 하늘의 왕)······················다같이
*사죄기도········································································다같이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죄와 이 세상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고한 세상의 주장에 휘둘린 채
서로를 적대하고 분리되어 살았나이다.
우리가 자기 합리화에 얼마나 쉽게 빠지며
우리가 세상의 힘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우리 자신보다 주님이 더 잘 아시나이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간절히 비오니
이 난폭한 세월에 우리의 영혼이 손상당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에게 영적인 세례를 베푸시어,
용서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용서의 선포····································································목사
복된 소식을 들으십시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여러분이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신 평화에 온전히 거하십시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목사님과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26장)··································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생명과 진리의 주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시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여
말씀의 영에 이끌림을 받도록 도우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 되어
그 말씀만 드러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삶의 길이신 주님,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오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영생의 복된 약속을 붙들고
용감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구약·······························이사야 61:10-62:3··················김용성 교우
성시교독·························64, 시편 145편······················목사와 회중
서신서···························갈라디아서 4:1-7····················김용성 교우
복음서···························누가복음 2:22-40····················김용성 교우
설교······························종이냐, 자녀냐·····················정용섭 목사
찬송·······························(407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헌금·········································································김용성 교우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알리는 말씀]
* 서울샘터교회 집사 임명은 교우 명단이 확보 되는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운영위원이 선정되는 내년 1월 말 쯤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 저희 교회에서는 송구영신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습니다. 원하는 분들은 원하는 곳에서 예배에 참여하십시오.
* 새로운 예배 처소를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내년 1월 마지막 주일까지 현재의 예배 처소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으니, 좋은 의견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 서울샘터교회는 ‘주일예배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곳에서 좋은 예전 예배를 경험한 분들이 있으면 정 목사에게 정보를 주십시오. 현재 저희의 예배 순서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니, 필요한대로 고쳐나갈 것입니다.
* 오늘은 2008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내년 첫 주일에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나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 오늘 예배 후에 대구성서아카데미 서울오프와 서울샘터교회 교우들이 공동으로 2008년 송년 모임을 갖겠습니다. 이 행사로 성경공부와 즉문즉답 시간은 없습니다.
* 지난 주일(12월21일) 헌금- 303,000원
* 다음 주일(2009년 1월4일) 예배위원- 정유선 교우
[마가복음묵상]
성탄의 신비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좌우편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고 이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능력이 있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그 문장을 정확하게 읽으면 권한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 자리가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또는 그 자리는 그것에 적합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여기서 예수님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제한하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이런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즉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하나님으로 믿는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의 현실로 내려오셨습니다. 초월적인 능력을 포기하고 인간의 제한된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는 그렇게 무능력한 존재로 이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그가 철저하게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바로 그가 우리의 구세주이며, 재림주이며, 하나님이십니다.
몰트만의 명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바로 그 사실을 신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곧 하나님의 처형입니다. 예수의 무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무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자리한 그 낮은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낮은 곳이 바로 가장 높은 곳이 되었으며, 무능력이 바로 최고의 능력이 되었다는 역사의 신비를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탄절을 바로 앞두고 있습니다. 그 날은 바로 성육신의 신비가 이 세상에 발생한 날입니다. 말구유는 십자가의 실패와 부활의 승리가 준비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런 역설이 우리의 삶에서 참된 능력입니다. 성탄의 신비가 여러분 모두에게! (다비아 ‘큐티’에서)
2008년 12월28일, 성탄절 후 첫째 주일
주소: 서울 중구 남산동2가 27-5(히말라야빌딩 지하)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053-856-1227
오늘의 말씀
(갈라디아서 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바울은 종과 자녀를 대비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선포합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위치이지만 자녀는 주인의 사랑을 받는 위치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전자는 율법이고 후자는 복음입니다. 물론 율법 자체가 잘못이라는 건 아닙니다. 율법 없이는 그 어떤 공동체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율법이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율법주의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안의 율법주의와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예루살렘을 거점으로 하는 주류 기독교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할례와 토라 없이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설교를 부정했습니다. 이들로 인해서 갈라디아 교우들의 신앙이 크게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은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라고 말입니다.
주일공동예배순서
[개 회 예 전]
*예배를 여는 교독
<목사>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회중>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골 3:16)
*오늘의기도·····································································다같이
전능하신 하나님,
인간 본성의 존엄을 놀랍도록 귀하게 창조하셨으며,
죄로 파괴된 본성을 더욱 놀랍도록 회복하셨나이다.
당신은 성육신하신 말씀의 새 빛으로
우리를 비추셨나이다.
이 빛이 우리 마음속에서 타올라
우리 삶을 온전히 비추기 원하나이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주 앞에 설 수 있게 하시고
세상 가운데서 그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하소서.
이 시간 우리의 영혼을 기울여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예배드리오니
이 예배를 받아주소서.
이제와 영원토록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으로 살아 계시고 다스리실,
만물의 통치자이며 구속자이시며,
부활의 승리자로 우리에게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찬송····························(찬양하라 하늘의 왕)······················다같이
*사죄기도········································································다같이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죄와 이 세상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고한 세상의 주장에 휘둘린 채
서로를 적대하고 분리되어 살았나이다.
우리가 자기 합리화에 얼마나 쉽게 빠지며
우리가 세상의 힘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우리 자신보다 주님이 더 잘 아시나이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간절히 비오니
이 난폭한 세월에 우리의 영혼이 손상당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에게 영적인 세례를 베푸시어,
용서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용서의 선포····································································목사
복된 소식을 들으십시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여러분이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신 평화에 온전히 거하십시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목사님과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26장)··································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생명과 진리의 주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시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여
말씀의 영에 이끌림을 받도록 도우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 되어
그 말씀만 드러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삶의 길이신 주님,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오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영생의 복된 약속을 붙들고
용감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구약·······························이사야 61:10-62:3··················김용성 교우
성시교독·························64, 시편 145편······················목사와 회중
서신서···························갈라디아서 4:1-7····················김용성 교우
복음서···························누가복음 2:22-40····················김용성 교우
설교······························종이냐, 자녀냐·····················정용섭 목사
찬송·······························(407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헌금·········································································김용성 교우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알리는 말씀]
* 서울샘터교회 집사 임명은 교우 명단이 확보 되는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운영위원이 선정되는 내년 1월 말 쯤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 저희 교회에서는 송구영신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습니다. 원하는 분들은 원하는 곳에서 예배에 참여하십시오.
* 새로운 예배 처소를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내년 1월 마지막 주일까지 현재의 예배 처소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으니, 좋은 의견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 서울샘터교회는 ‘주일예배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곳에서 좋은 예전 예배를 경험한 분들이 있으면 정 목사에게 정보를 주십시오. 현재 저희의 예배 순서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니, 필요한대로 고쳐나갈 것입니다.
* 오늘은 2008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내년 첫 주일에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나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 오늘 예배 후에 대구성서아카데미 서울오프와 서울샘터교회 교우들이 공동으로 2008년 송년 모임을 갖겠습니다. 이 행사로 성경공부와 즉문즉답 시간은 없습니다.
* 지난 주일(12월21일) 헌금- 303,000원
* 다음 주일(2009년 1월4일) 예배위원- 정유선 교우
[마가복음묵상]
성탄의 신비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좌우편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고 이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능력이 있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그 문장을 정확하게 읽으면 권한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 자리가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또는 그 자리는 그것에 적합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여기서 예수님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제한하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이런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즉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하나님으로 믿는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의 현실로 내려오셨습니다. 초월적인 능력을 포기하고 인간의 제한된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는 그렇게 무능력한 존재로 이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그가 철저하게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바로 그가 우리의 구세주이며, 재림주이며, 하나님이십니다.
몰트만의 명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바로 그 사실을 신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곧 하나님의 처형입니다. 예수의 무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무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자리한 그 낮은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낮은 곳이 바로 가장 높은 곳이 되었으며, 무능력이 바로 최고의 능력이 되었다는 역사의 신비를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탄절을 바로 앞두고 있습니다. 그 날은 바로 성육신의 신비가 이 세상에 발생한 날입니다. 말구유는 십자가의 실패와 부활의 승리가 준비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런 역설이 우리의 삶에서 참된 능력입니다. 성탄의 신비가 여러분 모두에게! (다비아 ‘큐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