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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서 울 샘 터 교 회 주 보
2009년 1월11일, 주현절 후 첫째 주일
주소: 서울시 중구 남산동 2가 27-5 히말라야빌딩 지하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053-856-1227
오늘의 말씀
(사도행전 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위의 본문에는 네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볼로, 바울, 요한, 예수. 지금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 네 명과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들이 서로 경쟁적이었습니다. 그게 우리로서는 이상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초기 기독교에서 이런 경쟁이 어떻게 가능하냐 하고 말입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그 교회 신자들은 제 각각 파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가 그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가 처음부터 확고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토라와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가 상대적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와중에서 방향을 정확하게 잡은 이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의 신학적 투쟁의 결과로 예수님이 명실상부하게 그리스도로 올림을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의 한 대목이 바로 위의 본문인데, 그것은 성령과 세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주일공동예배순서
[개 회 예 전]
*예배를 여는 교독
<목사> 오! 그리스도시요, 주님의 현현으로 주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었고 우리가 온전한 구원을 얻었나이다. 우리를 도우셔서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빛을 나타낼 수 있게 하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회중> 오! 영광의 그리스도여, 주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겸손의 길을 보이셨나이다.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우리의 모든 사는 날 동안 겸손히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골 3:16)
*오늘의기도·····································································다같이
영원하신 하나님,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포하셨고,
성령으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자기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하시고,
담대히 그를 주와 구세주로 고백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가
이 세상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사랑의 손을 내밀어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전하게 하소서.
이 시간 우리의 영혼을 기울여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예배드리오니 이 예배를 받아주소서.
이제와 영원토록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으로 살아 계시고 다스리실,
만물의 통치자이고 구속자이시며,
부활의 승리자로 우리에게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찬송····························(찬양하라 하늘의 왕)······················다같이
*사죄기도········································································다같이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죄와 이 세상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도
우리는 완고한 세상의 힘에 휘둘리며 살았나이다.
우리가 얼마나 간단히 자기 합리화에 빠져드는지,
우리가 얼마나 빨리 자기 열망에 사로잡히는지
우리보다 주님이 더 잘 아시나이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과 비인간성 앞에서
저희가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사오니
우리의 영혼이 손상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시며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이 시간 저희에게 영적인 세례를 베푸시어,
용서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용서의 선포····································································목사
복된 소식을 들으십시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여러분,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신 평화에 온전히 거하십시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목사님과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31장)··································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생명과 진리의 주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시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여
말씀의 영에 이끌림을 받도록 도우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 되어
그 말씀만 드러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삶의 길이신 주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영생의 복된 약속을 붙들고
용감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구약·······························창세기 1:1-15·······················박승수 교우
성시교독·························121, 주현절(1)·······················목사와 회중
서신서···························사도행전 19:1-7·····················박승수 교우
복음서···························마가복음 1:4-11·····················박승수 교우
설교·······················성령과 세례에 대한 질문·············정용섭 목사
찬송·······························(130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헌금·········································································박승수 교우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한 주간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영육 간에 건강하고,
모든 일에 승리하기 바랍니다. 주의 평화가!>
[알리는 말씀]
* 운영위원 건- 본교회 준비위 체제는 1월 말로 끝나고 2월부터는 운영위 체제가 시작됩니다. 서울샘터교회는 모든 역량을 주일공동예배로 모아가고 있으니 운영위 활동도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 터이니 부탁을 받더라도 굳이 사양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용섭 목사가 18일 주일에 운영위원을 발표할 예정이고, 그 기준은 다비아 서울샘터교회 메뉴에 올린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예배 후 서울샘터교회 교우가 되고자 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교적부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1월25일 주일은 설 연휴 관계로 본 교회에서는 예배가 없습니다. 각자 형편에 따라서 다른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시거나 고향에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예배 처소 건- 25일 주일은 예배가 없는 관계로 18일이 이곳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됩니다. 지금 다른 장소가 거의 결정 단계에 있습니다. 18일 주일에는 결정된 장소를 알게 될 것입니다. 2월1일부터 새로운 곳에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 다비아 서울 오프에서 ‘겨울여행’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11일-13일, 장소는 보령과 전주입니다.
* 지난주일(1월4일) 헌금- 332,000원
* 다음주일(1월18일) 예배위원- 오종희 교우
[마가복음묵상]
길가에 앉아서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10:46)
거지 맹인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길에 앉아 있고, 예수님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통점은 길입니다.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제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따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난 갈릴리 호수도 넓은 의미에서 길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만난 세관도 역시 길입니다. 그 이외의 제자들과 크고 작은 추종자들도 모두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바로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길에서 살았으며, 초기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 예수님을 길로 경험했습니다. “나는 길이다.”(요 14:6) 길의 특징은 사람들이 한 곳에 계속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시 쉬거나 말을 하기 위해서 멈추기는 하지만 마냥 머무르지는 않고 곧 떠납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한 곳에 안주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나그네 길이라는 사실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길은 좀 색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인생살이를 성취하는 과정을 인생의 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독교인들은 자기 밖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생명의 사건에 참여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다시 바디매오로 돌아가서, 그는 길에서 길이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조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길에 나서지 않는 한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길의 영성입니다. 교회 생활이 자칫하면 이런 길의 영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교회의 조직과 체제에 길들여지는 건 아닐는지요.(다비아 ‘큐티’에서)
2009년 1월11일, 주현절 후 첫째 주일
주소: 서울시 중구 남산동 2가 27-5 히말라야빌딩 지하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053-856-1227
오늘의 말씀
(사도행전 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위의 본문에는 네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볼로, 바울, 요한, 예수. 지금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 네 명과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들이 서로 경쟁적이었습니다. 그게 우리로서는 이상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초기 기독교에서 이런 경쟁이 어떻게 가능하냐 하고 말입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그 교회 신자들은 제 각각 파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가 그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가 처음부터 확고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토라와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가 상대적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와중에서 방향을 정확하게 잡은 이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의 신학적 투쟁의 결과로 예수님이 명실상부하게 그리스도로 올림을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의 한 대목이 바로 위의 본문인데, 그것은 성령과 세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주일공동예배순서
[개 회 예 전]
*예배를 여는 교독
<목사> 오! 그리스도시요, 주님의 현현으로 주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었고 우리가 온전한 구원을 얻었나이다. 우리를 도우셔서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빛을 나타낼 수 있게 하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회중> 오! 영광의 그리스도여, 주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겸손의 길을 보이셨나이다.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우리의 모든 사는 날 동안 겸손히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골 3:16)
*오늘의기도·····································································다같이
영원하신 하나님,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포하셨고,
성령으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자기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하시고,
담대히 그를 주와 구세주로 고백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가
이 세상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사랑의 손을 내밀어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전하게 하소서.
이 시간 우리의 영혼을 기울여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예배드리오니 이 예배를 받아주소서.
이제와 영원토록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으로 살아 계시고 다스리실,
만물의 통치자이고 구속자이시며,
부활의 승리자로 우리에게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찬송····························(찬양하라 하늘의 왕)······················다같이
*사죄기도········································································다같이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죄와 이 세상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도
우리는 완고한 세상의 힘에 휘둘리며 살았나이다.
우리가 얼마나 간단히 자기 합리화에 빠져드는지,
우리가 얼마나 빨리 자기 열망에 사로잡히는지
우리보다 주님이 더 잘 아시나이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과 비인간성 앞에서
저희가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사오니
우리의 영혼이 손상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시며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이 시간 저희에게 영적인 세례를 베푸시어,
용서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용서의 선포····································································목사
복된 소식을 들으십시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여러분,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신 평화에 온전히 거하십시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목사님과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31장)··································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생명과 진리의 주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시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여
말씀의 영에 이끌림을 받도록 도우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 되어
그 말씀만 드러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삶의 길이신 주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영생의 복된 약속을 붙들고
용감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구약·······························창세기 1:1-15·······················박승수 교우
성시교독·························121, 주현절(1)·······················목사와 회중
서신서···························사도행전 19:1-7·····················박승수 교우
복음서···························마가복음 1:4-11·····················박승수 교우
설교·······················성령과 세례에 대한 질문·············정용섭 목사
찬송·······························(130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헌금·········································································박승수 교우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한 주간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영육 간에 건강하고,
모든 일에 승리하기 바랍니다. 주의 평화가!>
[알리는 말씀]
* 운영위원 건- 본교회 준비위 체제는 1월 말로 끝나고 2월부터는 운영위 체제가 시작됩니다. 서울샘터교회는 모든 역량을 주일공동예배로 모아가고 있으니 운영위 활동도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 터이니 부탁을 받더라도 굳이 사양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용섭 목사가 18일 주일에 운영위원을 발표할 예정이고, 그 기준은 다비아 서울샘터교회 메뉴에 올린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예배 후 서울샘터교회 교우가 되고자 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교적부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1월25일 주일은 설 연휴 관계로 본 교회에서는 예배가 없습니다. 각자 형편에 따라서 다른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시거나 고향에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예배 처소 건- 25일 주일은 예배가 없는 관계로 18일이 이곳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됩니다. 지금 다른 장소가 거의 결정 단계에 있습니다. 18일 주일에는 결정된 장소를 알게 될 것입니다. 2월1일부터 새로운 곳에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 다비아 서울 오프에서 ‘겨울여행’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11일-13일, 장소는 보령과 전주입니다.
* 지난주일(1월4일) 헌금- 332,000원
* 다음주일(1월18일) 예배위원- 오종희 교우
[마가복음묵상]
길가에 앉아서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10:46)
거지 맹인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길에 앉아 있고, 예수님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통점은 길입니다.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제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따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난 갈릴리 호수도 넓은 의미에서 길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만난 세관도 역시 길입니다. 그 이외의 제자들과 크고 작은 추종자들도 모두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바로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길에서 살았으며, 초기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 예수님을 길로 경험했습니다. “나는 길이다.”(요 14:6) 길의 특징은 사람들이 한 곳에 계속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시 쉬거나 말을 하기 위해서 멈추기는 하지만 마냥 머무르지는 않고 곧 떠납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한 곳에 안주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나그네 길이라는 사실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길은 좀 색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인생살이를 성취하는 과정을 인생의 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독교인들은 자기 밖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생명의 사건에 참여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다시 바디매오로 돌아가서, 그는 길에서 길이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조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길에 나서지 않는 한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길의 영성입니다. 교회 생활이 자칫하면 이런 길의 영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교회의 조직과 체제에 길들여지는 건 아닐는지요.(다비아 ‘큐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