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21:15-26)3월27일
                                
예루살렘 입성
가이사리아에서 며칠 묵은 바울 일행은 가이사리아의 신자 몇 사람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 길은 100km 정도의 여정이다. 가이사리아 신자들이 바울과 동행한 이유는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서 묵어야 할 장소를 안내해 주는 데 있었다. 그들은 바울 일행을 키프로스 사람 므나손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누가는 이런 사실을 아무런 해석 없이 15,16절에서 보도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먼 데까지 바울을 데려다 줄 정도로 가이사리아 신자들의 성품이 꽤 괜찮았다거나, 또는 예루살렘에서 숙소를 구하는 일이 아주 어려웠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약간만 돌리면 여기서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즉 곧 등장하는 야고보나 다른 사도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는 가장 큰 목적은 곧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전달이다. 바울의 일행 중에서는 멀리 아카이아와 마케도니아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곧 모금 전달책임자들이었다. 이런 사실이 명백하다면 예루살렘 교회는 거 교회적으로 이들을 환영해야만 했다. 그런데 누가는 바울 일행의 숙식 문제를 도와준 이들은 그들이 아니라 가이사리아 신자들이었다고 전하고 있을 뿐이지, 예루살렘 교회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바울이 일행이 신세를 지게 된 곳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키프로스 사람 므나손의 집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본문은 므나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1) 므나손은 가이사리아 공동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 2) 그는 오래된 신자였다. 3) 그는 키프로스 사람이었다. 가이사리아 공동체의 대표자가 필립보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므나손도 역시 헬라파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그가 바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역시 바울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누가는 17절에서 예루살렘 신자들이 바울 일행을 따뜻하게 영접했다고 묘사했다. 이런 묘사는 주로 므나손 집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것이었든지, 아니면 일종의 덕담이라고 보는 게 옳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바울에게 일어난 사건의 진행을 보면 예루살렘 신자들이 바울을 별로 따뜻하게 맞아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별히 마땅히 솔선해서 바울을 보호해주었어야 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별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건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의 관계가 아주 미묘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바울의 활동 보고
어쨌든지 바울은 이제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를 찾아갔다. 야고보가 바로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베드로가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이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어긋난다. 이에 대해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어떻게 대답할는지 궁금하다. 야고보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공동체의 원로들이 모두 모인 그곳에서 바울은 인사를 한 다음에 자기의 활동을 보고했다. 19절 말씀은 이렇다. “바울로는 그들에게 인사한 다음 자기의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해 놓으신 일들을 낱낱이 보고하였다.” 누가는 지금 바울이 행한 아시아와 유럽의 선교에 대해서 매우 간략하게 서술한다. 바울이 필립보, 데살로니카, 고린도 등등, 선교 성과가 특별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에 참여한 이방인 공동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을만한데도 누가가 이에 대해 별 말이 없다는 건 의외이다. 특별히 예루살렘 모금 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관한 사도행전의 속사정을 언급하기 전에 저자인 누가가 처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좋겠다. 누가는 초대 교회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을 객관적으로 알리려는 게 아니라 일정한 집필 목적에 따라서 그 이야기를 편집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누가 앞에는 바울을 중심으로 한 ‘여행일지’가 있으며, 또한 직간접적인 몇 가지 구전들이 있다. 이러한 몇몇 정보에 근거해서 누가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누가 당시에 큰 세력을 형성한 헬라 기독교가 사도의 정통성에 위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어받고 있다는 점을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 변증하고 있는 중이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와 원로들에게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 그들에게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 혹은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누가는 잘 몰랐으며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집필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요소들은 과감하게 생략했을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호금 문제가 그것이다.
누가가 여기서 구호금 문제를 드러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이방인 사도인 바울과 주로 유대인 선교에 치중한 예루살렘 지도자들 사이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에서는 당연히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유대인과 율법 문제에서는 입장 차이가 적지 않았다. 우리가 바울의 입장에서만 바라본다면 이 문제는 별로 심각하지 않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이미 바울이 설명했듯이 기독교인들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예루살렘 사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울의 이런 주장은 너무 과격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을 드나들고 있었으며, 유대교의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율법의 실효성을 여전히 버릴 수 없었다. 유대교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이들에게 바울은 이단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같은 형제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예루살렘 원로들의 태도
누가는 바울의 보고를 간략하게 처리한 다음에,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대답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짚었다. 예루살렘 원로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들에게 바울에 관한 나쁜 소문이 들릴지 모른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 소문은 바울이 율법을 배척하고 할례를 부정한다는 것이었다. 누가는 이런 대목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지만, 이런 건 듣기에 따라서 아주 민망한 발언이다.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으면 앞으로 협력해서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을 텐데,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어려운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그들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당신이 여기 온 것을 틀림 알게 될 터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22절). 만약 예루살렘 신자들이 바울을 오해하고 있다면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그들을 설득하는 게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신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가 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대답하고 있다. 우리가 이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바울에 관한 나쁜 소문으로 인해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힘들어 한다는 말은 곧 사도를 중심으로 한 원로들의 생각을 그대로 전하는 것일지 모른다. 바울 때문에 자신들의 유대인 전도가 끝장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또는 바울 때문에 유대교로부터 박해가 확대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게 그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가 당면한, 그래서 그 공동체가 해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초기 기독교 역사의 이면일지 모른다.
어쨌든지 그들은 바울에게 이런 대안을 제시했다. 예루살렘 신자 중에서 하나님에게 맹세한 나실인 4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정결예식을 행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정결예식을 행할 수 있도록 바울이 옆에서 돕는다면 모세의 율법을 무시한다는 바울에 관한 소문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궁여지책일지 모른다. 그들이 바울과 유대인들 사이에 놓인 오해를 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 비판적으로 본다면 바울을 자신들의 교권 밑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 무엇이 진실인지 오늘 우리가 알 도리는 없다. 바울이 이들이 제안대로 정결예식을 행했다는 본문의 보도를 그대로 따른다면 바울이 이 제안을 흔쾌하게 받아들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

뜨거운 감자, 구호금
바울이 야고보와 예루살렘 원로들 앞에서 왜 구호금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누가가 왜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앞서의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예루살렘 원로들이 바울의 보고를 받고 보인 태도에서 대답을 위한 어느 정도의 실마리는 주어졌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구호금 문제가 아니라 훨씬 근본적인 문제에 당면해 있기 때문에 바울이 설령 구호금 문제를 거론했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가도 지금 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바울의 편지에 의하면 바울은 예루살렘 원로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누가는 이런 사실을 감추어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긴 하지만 그게 뜻대로 만은 안 된 것 같다. 바울이 체포당하고 심문당하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원로들이 바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게 바로 그 증거이다. 바울이 생명을 담보하면서 복음의 열매를 거둔 이방인 공동체가 십시일반으로 모은 구호금에 대해서 예루살렘 원로들이 시큰둥하게 여겼다면, 누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만 했을까?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울에게나 예루살렘 원로들에게나, 한참 후에 그 상황을 해명해야 할 누가에게나 똑같이 뜨거운 감자였다.
우리는 지금 그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사도행전은 바울을 변호하는 동시에 헬라파 기독교를 변증하고 있으며, 바울의 편지들은 당연히 자신의 입장만을 강조할 뿐이지, 실제로 예루살렘 공동체 입장에서 사건을 보도하는 문서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복음서까지도 예루살렘 공동체라기보다는 이방인 공동체 문서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기독교가 원래 나사렛 예수의 복음이 시작되었던 예루살렘 원시 공동체와 다르다거나 크게 변질되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한정적인 자료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전승된 자료에 근거해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꾸준하게 해석해나가는 게 최선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