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을 위한 책갈피입니다. 나누고 싶은 책 내용이나 소개하고 싶은 글들은 이곳에 올려주세요~
정기문 교수는 기독교 역사학자가 아닌데도 기독교 연구를 꾸준히 하는, 한국에서 매우 드문 학자입니다.
이번에 <역사적 예수>라는 책을 냈는데, 그간 연구성과를 모아놓았네요. 읽기도 쉽고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일부 소개합니다.
01 예수는 언제,어디서 태어나, 언제 죽었는가?
루카 복음서는 예수가 헤로데 대왕 시절에 태어났다고 했는데, 헤로데는 기원전 4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인구 조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예수 가족의 이동 경로가 <루카 복음서>와 완전히 다르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와 그의 가족은 베들레헴 -> 이집트 -> 나자렛으로 이동했는데, <루카복음서>에서 나자렛 -> 베들레헴->예루살렘 -> 나자렛으로 이동했다.
<야고보 원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출생 이야기에서 모순된 부분을 삭제하고 두 복음서의 설명을 적절히 혼합해 예수 출생을 매끄럽게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이때 예수의 부모가 원래 나자렛에 살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예수의 부모가 이집트로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삭제했다.
02 예수는 나자렛 사람인가?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태어났다고전하지만예수당대의사람은그렇게생각하지않았다.
<요한복음 1장 45-46절>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 '우리는 모세의 율법서와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어떤 뛰어난 사람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나타나엘은 공관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의 주요 제자로 나온다.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베들레헴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서에 예수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더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가 수많은 기적을 행하면서 족음을 전파하자 유대인들은 예수가 정말 메시아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한 사람이 예수가 메시아임이 틀림없다고 말하자, 반대하는 자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래아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때 예수의 제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는 제자를 비롯해 당대 사람들이 예수의 고향이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자렛이라고 여겼음을 보여준다.
03 예수는 언제 죽었는가?
유월절 횟수를 기준으로 본다면 공관복음서는 1년의 활동기간을, 요한복음서는 3년 이상의 활동기간을 설정한다.
요한복음서는 예수가 세상을 떠난 날을 유월절 준비일(니산월 14일)로 제시하는 반면, 공관복음서는 유월절 축제 첫 날(니산월 15일)로 기록한다.
2세기에 에페소 교회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교회는 <요한복음서>의 진술에 따라 유월절 전야, 즉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준수했다. 반면,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서방교회는 공관복음서를 따라 유월절 첫날, 즉 니산월 15일에 예수가 부활했다고 생각해 니산월 15일 이후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준수했다. 3세기에 유대력인 니산월을 완전히 버리고 춘분을 새로운 기준으로 계산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를 따르면, 춘분 이후 보름달이 뜨고 난 후 첫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 4세기 이후 대다수 기독교 신자들이 이 계산법을 수용해 현재까지 준수하고 있다.
04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가 죽기를 바랐는가?
성경에 따르면, 예수에게는 네 명의 형제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야고보, 요세(요셉), 유다, 시몬'이었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한 이후 고향을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는 목수와 마리아의 아들이며, 그의 형제는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이고 그의 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라고 했다. (막 6장3절)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수의 형제들이 그분께 말했다. '이곳 갈릴래아를 떠나 유대로 가서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이 하시는 일들을 보게 하십시오.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비밀리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려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사실, 예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요한복음서, 7장 2절-5절)
그런데 <사도행전>을 따르면, 예수가 부활해 승천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수립되었는데 최초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마르코의 다락방' 모임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이 참석했다. 이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인데 사도 바울이 개종한 후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을 때 '주의 형제 야고보'를 보았다고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창립 멤버였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예수의 사역을 도왔던 것일까?
또한 복음서에 예수의 가족이 예수를 도왔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기사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1945년 이집트에서 이른바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면서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외경 자료들이 이 견해를 뒷받침한다.
<야고보 제1계시록>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수난을 앞둔 예수와 대화를 나누었다. 예수는 자신의 수난에 대해 예고했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야고보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수난 이후에 만나기를 희망했다. 수난 이후 예수는 가우겔라산에서 기도하고 있던 야고보에게 나타나 그의 수난이 갖는 의미와 우주 생성, 그 운영에 대해 설명했다. 따라서 <야고보 제1계시록>을 따르면,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가 세상을 떠나기 이전에 이미 예수의 협력자였다.
041. 2세기 후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예수를 낳은 후에도 처녀막을 보존하던 성스러운 여인이 예수 출산 후 성관계를 맺어 다른 아이들을 낳았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따라서 기독교 신자는 예수의 형제들을 제거하려고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했다. 첫 번째 설명은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늙은 홀아비였다는 것이다. <야고보 원복음서>를 보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3세 때 예루살렘 성전에 바쳐진 거룩한 아이였다. 그녀가 12세가 되었을 때 성전의 사제는 그녀의 베필을 정하기 위해 전국의 홀아비를 불러모았다. 당시 늙은 홀아비였던 요셉은 영문도 모르는 채 사제가 부르므로 성전에 갔다가 마리아의 남편으로 낙점되었다.
이렇게
하여 2세기에 요셉은 홀아비로, 예수의 형제들은 의붓형제로 전락했다. 이런 설명은 이후 기독교 신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으며,
동방교회가 정식 교리로 채택했다. 따라서 오늘날도 이 교리를 신봉하는 신자들이 많다. 두 번째 설명은 '형제'라는 단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4세기의 교부로 불가타 성경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히에로니무스는 예수의 형제들을 소개하는 구절을 해설하면서
그들이 친형제가 아니라 사촌형제라고 주장했다.
'역사적 예수'라는 제목은 신학계에서도 아주 오래된 겁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라는 논문, 또는 저서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게 주류 신학계에서 다 받아들여지는 주장입니다.
훗날 미국을 중심으로 '예수 세미나' 운동이 벌어지면서 '역사적 예수' 문제가 다시 나왔습니다.
여기 다비아 사이트에 종종 책을 소개하는 '흰구름' 님이 거기에 정통한 신학자입니다.
'한국 기독교 연구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꾸준하게 그런 책을 번역 출판합니다.
존경할만한 신학자이십니다. 그 출판사 책을 저도 몇권 갖고 있습니다. 좋은 책도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성경을 근거로 '역사적 예수'를 찾는 노력은 크게 의미가 없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시인의 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거와 비슷합니다.
그게 시를 깊이 있께 이해하는 데에는 별로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즉 시 읽기에는 문학 비평이 필요하지 과학적, 사회 역사적 비평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다만 '역사적 예수'는 그리스도교의 관념화, 또는 영지주의화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 겁니다.
위에 소개된 책을 제가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그 책 자체에 관해서 말한 거 아니고
'역사적 예수' 운동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였답니다.
최근에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훌륭한 작업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꽤 소개되었지만, 전문 영역이어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문서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그 문서의
역사적 신빙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도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믿을만하지 않다고 판단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흥미롭게도, 엘로이즈가 신학적 질문을 하고 아벨라르가 답을 하는 서신이 있습니다.
여기서 엘로이즈는 빈무덤 기사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아벨라르는 거의 천재적 기지를 발휘하여 4복음서의 빈무덤 기사를 종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문서들의 불일치 문제가 해소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아벨라르의 해석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시대마다 문서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