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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부활 (5)

조회 수 1614 추천 수 0 2014.04.17 01:57:33

내가 믿는 부활신앙 (5) <박상증, 서광선>

 

<박상증> : 서울대, 미국 프린스튼 신학교, 에머리 대학 박사, 전)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총무,

                                현)아름다운재단 이사장

 

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예수의 부활은

'그는 살아 계시고 주님이다'라는 선언이다. 즉 부활은 하느님께서 그를 죽게 한 이 세상의 권력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하느님의 영원한 주권을 바로 세우신 사건이다. 둘째 십자가와 부활은 근본적인

정치적 의식의 변화를 말한다.

 

이 정치적 의식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종려주일)의 모습에서 그 징조를 볼 수 있다. 유월절 첫날

로마 군대의 웅장하고 위협적인 행렬과, 예수와 함께 나타난 촌사람들의 행렬을 상상해보라. 이것은

우연한 사건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제국에 대한 대안적인 정치적 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분명히 이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이 열망하던 왕국의 재현을 예수에게 기대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주간 동안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왕국 혹은 또 다른 제국의 꿈이 하느님의

주권 아래에서 펼쳐질 하느님 나라의 정치적 비전이라는 혁명적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토론

 

<이찬수> 지금 부활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 몸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진다 고 상상하시는지?

<박상증> 영원이라 하는 것은 크로노스가 아니라 현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내가 현재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영원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 그것은 언젠가 끝난다. 그럼 거기서부터 영원이 아니지 않나.

                 영원은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느님의 세계와 섭리에 우리가 현재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 같이하고 계시다는 걸

                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찬수> 하느님이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라고 할 때, 하느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상증> 중요한 것은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 계신 예수를 만났고,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이 부활 이후에 형성되는 교회운동이다.                                                   

                 그 경험, 그 실존적인 경험이 우리의 전통이고 우리의 삶이 아닌가.

 

<이길용> 부활은 믿는 것인가, 살아가는 것인가? 다른 말로 부활은 믿음의 대상인가, 살아가는 방법인가?

<박상증> 핵심은 부활을 우리가 어떻게 체험하고 있느냐, 예수의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살아계신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만나느냐, 이것은 우리의 실존적인 체험의

                 영역이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부활을 체험하며, 부활이, 생명이 죽음의 힘을 이기고 나아가는

                 역사에 우리가 어떻게  동참하고 있느냐 하는 구체적인 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서광선> :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밴더빌트 대학 종교철학 박사,

                                전)이화여대 교목, 대학원장, WCC 신학교육위원회 실행위원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니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심정이다. ‘죽음에 관한 언어’, 즉 죽음의 언어는

오늘 우리가 경험할 수 있고 실험할 수 있는 사실을 말하는 언어가 아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실증 불가능하다고 해서 무의미하다고 단정하기엔 죽음의 언어들은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마태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이야기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이야기에서 보듯이, 죽음의 언어,

사후세계에 대한 비유 이야기와 부활의 언어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성격이 저 세상에서의 심판과

삶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교훈이 들어 있는 윤리의 언어인 동시에 종교의 언어이다. 최후의 심판을

받으려면 인간이 죽어서 땅에 묻혀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죽음은

우리 삶의 끝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또한 죽음은 부활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에 죽음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이고, 부활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기 때문에 부활의 언어는 자유의 언어이다. 즉 죽음과 부활의 교훈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라는 것이다.

 

죽음과 부활은 동일 선상에 놓여 있지만, 죽음과 부활은 대립하는 개념이다. 죽음 없이 부활 없고,

부활 없는 죽음은 너무도 허망하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부정이고 부활은 삶의 긍정이다.

부활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고, 부활은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부활은 죽음을

죽이는 것이다. 부활은 죽음과 투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은 다음에 자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천당과 지옥이

죽은 다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고, 일어나야 하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즉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세력과 싸워 이기고 승리하는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과 믿음이고, 자유이며 사랑이다. 결국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는 저승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승의, 오늘의 삶의 이야기이다.

 

토론

 

<김경재> 그리스도교에서는 죽음을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깊은 창조 질서 속에서 죽음이 가지는 귀중한 역할을 너무나 많이 놓쳐왔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세력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떳떳하고 정당하게 살았으면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내맡겨버리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전개되는 죽음 이후의 삶은 각 개인의 공동체의 문화적.역사적.

                  종교적 전통의 맥락에서 희망의 내러티브의 각본이 달라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서광선> 그런데 장례식에 가서 사랑하는 이의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하고 속 상해하는

                 사람들에게 “죽음과 부활은 은유입니다.”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한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할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말하며 함께 운다. “삶이 중요하지 죽음이 중요하냐.”

                 이런 말을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최인식> ‘나는 죽는데, 그리고 부활하는 것은 확실한데 과연 어떠한 부활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질문과

                  과연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고, 또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부탁한다.

<서광선> 부활의 언어는 신학적인 언어이고 희망과 믿음의 언어이기 때문에 고백으로 들어야 하고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내 욕심을 죽이고 나 자신과

                 투쟁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부활이 중요한 만큼, 아니 이 세상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 그것을 삶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살림,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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