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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부활 (6)

조회 수 1733 추천 수 0 2014.04.17 02:14:10

내가 믿는 부활 (6)

 

<최영실> : 이화여대 대학원 신약성서학 박사, 미국 유니온 신학원, 전)한국여성신학회 회장,

                                현)성공회대 신약학 교수

 

누가에 따르면 “하느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눅 20:38) 즉 예수는 먼 미래에 있을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지금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 있다“는 현재적 부활을 선포한다. 그리고 죽은 이후에

어떤 존재로 다시 살아나는가의 문제에 집착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라고 증언함으로써, 죽음 이후의 다양한 부활 논쟁을 한 마디로 일축해버린다.

 

그러나 신약성서 안에는 부활에 대한 또 다른 표상과 증언들이 들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영원한 생명’

(요 5:24, 6;40),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마 5;20, 7;21, 18:3, 19;23), 하늘로의 ‘승천’(살전 4;16~17),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마 27:52)는 진술은 그리스도인들을 문자적이고 육체적인

부활 신앙에 머물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의 부활 사상은 구약 전통이 아닌 이집트

전통에서 온 것이고, 죽음 이후에 육은 소멸하지만 영은 부활한다는 사고는 그리스적 이원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는 마태의 진술은 후기 유대교의 부활 표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이러한 다양한 부활 표상을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결부시키며 현재적인 부활 사건으로 해석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기대되었던 그 부활 사건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

 

1. 마태는 유대교적 부활 표상과 연결시키며,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자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고 증언한다.

 

2. 초대교회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과 ‘화목 제물’로 해석하면서 예수의 사건을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구속사적 사건으로 증언했다.

 

3.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율법의 행위 없이 지금, 이미,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 은 ‘하느님의 의’의

   구원 사건으로 해석해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예수와 함께 죽 고,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부활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4. 요한복음의 저자는 부활 표상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말하는데, 그 영원한 생명 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역사의 예수가 바로 하느님을 나타내 보이는 참 빛이며, 영원한 생명수, 길, 진리, 부활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육의 몸으로 역사 현장에서 살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그 예수가

    바로 ‘부활’이며 ‘영원한 생명’이라고 증언한다.

 

그런데 과연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위한’ 구속사적인, 구원사적인 사건일까? 예수는 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을까?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결코 하나의 의미나 상징이 아니다. 예수는

구체적인 대상에 의해, 실제로는 로마 제국과 그 체제를 따르며 부를 누리던 예루살렘의 권력자와

종교지도자들의 모의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예수의 죽음은 유대 지배 권력자들과

로마 제국의 결탁에 의해 일어난 정치적 살인 사건이다.

 

바로 이 사건 이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죽임 당한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한 것이다. 왜 그들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그 예수를 만났고, 보았다고 증언하며, 예수가 부활했다고 증언하는 것일까? 예수의

부활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부활은 ‘스스로 일어난다’는 자동사가 아니라, 타동사인 ‘에게이로(일으키다)’를

사용하여 하느님이 예수를 ‘일으켜 세웠다’고 말한다.(행 3;15)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이 죽임의 세력인 제국의 질서와 지배 권력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며, 그 권력을 굴복시키고 승리한 사건임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거짓된 종교 권력자들의

거짓 교설과 교리를 깨뜨린 종교개혁이며, 로마제국의 거짓 평화를 폭로하고 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참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된 사건이다.

 

여성 신학자들은 바울 서신보다 훨씬 이전의 전승으로 간주되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 전승을 주목한다.

최초의 복음서로 알려진 마가복음의 수난 전승과 부활 전승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증인은

소위 열둘로 지칭되는 예수의 남자 제자들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를 위시하여 갈릴리로부터 예수를

섬기고 따른 여인들이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끝까지 지켜보고, 무덤을 찾아가서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듣고,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마가의 보도에 의하면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예수의 남자 제자들은 하나같이 무지하다.

그들은 예수가 가는 십자가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의 부활 소식도 믿지 않는다. 그리하여 예수의 머리에

기름 부은 이름 없는 여인이 예수로부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억될 것이라는 칭송을 들은 반면, 예수의

수제자로 자처하는 베드로는 예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예수의 십자가 길을 만류하다가 예수로부터 ‘사탄’이라는

꾸중을 들었을 뿐이다.

 

또한 제자들은 누가 큰가의 문제로 다투고, 야고보와 요한은 서로 예수의 좌우에 앉아 영광을 받으려 했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고,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에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예수를 목격했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듣고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전한 예수의 부활 소식도 믿지 않았다.

 

여성 신학자들은 공관 복음서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의 수난사화와 부활전승에서도 이 갈릴리 여성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이 여성들이 에수의 수난과 부활 사건의 주역으로

활동한 실제의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부활 목격자 명단에는

단 한 명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가부장화되고, 교권화되면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주역이었던 여인들의 역사를 배제시키고 왜곡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우리의 부활 논의는 역사 현장을 외면한 채 책상 앞에서의 신학적 논의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한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골몰하며 에수께 질문하던 베드로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우리의 부활 논의는 지금,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그 죽음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의 문제로 모아져야 한다. 그래야만 죽어가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하느님의 부활 사건이 이루어질 것이다.

 

<최혜영> : 서강대 대학원 신약성서신학 박사, 현)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

참석 후기  생략함.


[레벨:18]부스러기 은혜

2014.04.18 08:59:15

우쿵님!
부활에 대한 어줍잖은 교리에 갇혀있던 제게
망치에 얻어맞는듯한 말씀이었습니다
거듭 되풀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있던 신앙적 지식과 대치되는듯한
내용도 있어, 당혹스럽기도 하고, 무엇이 정답이란 말인가? ...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제 지식안에 갇혀 우물속에서 본 하늘만 봐왔던게 아닌가... 그래! 새롭게 접근해 가보자...
팔을 걷어 부치고 암중모색가운데 진리를 더듬어 가는 새로운 등정을 시작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귀한 글 올려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혹시 이 글 실린 인터넷 주소 알려주실수 있는지요?
가능하시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lgy3721@chol.com
profile

[레벨:23]우쿵

2014.04.18 10:44:00

부스러기은혜님,

이 글은 다른 곳에 실린 것이 아니고,

아래 글 #429에 소개된 사이.너머 총서1

"내가 믿는 부활"/ 대화문화아카데미, 2012의

책 내용을 제가 요약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전체를   7번으로 나누어 올렸으며, 마지막 글에는

21쪽의 전체 화일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을 보시려면 책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연로하신 신학자들이 남긴 솔직한 신앙고백은

저에게도 신앙의 길을 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신앙고백과 생각은

그 누구의 경우라도 자기 자신의 개인 창작이거나

확신일 수는 없는 것이라네요. 타인의 생각이나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지요.

특히 독서를 톨해서요

 

이를 가더머의 철학적 해석학 이론을 빌려 말하자면

인간은 '영향사적 의식'안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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