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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개 키아요.개주소!

조회 수 3885 추천 수 0 2011.05.21 15:05:33

노동자의 삶에 노동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쓴 <길은 복잡하지 않다>(철수와 영희,2009)는 현대중공업에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자리잡기전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 현대중공업에서는 대부분 특전사나 해병대 출신의 경비들이 바리깡을 들고 정문에 서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머리를 검사했습니다. 기준도 없었습니다. 그저 경비들 보기에 단정하냐,아니냐가 중요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고속도로를 내버렸습니다. 경비들은 머리검사 뿐만 아니라 복장검사, 출퇴근 체크, 출입증 확인, 퇴근시 몸수색 등을 실시하며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습니다. 대부분 한 가족의 부모(원작에는 가장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빠=가장이라는 논리가 싫어서 부모라고 했음./발췌자 주)인 노동자들은 이런 불합리한 폭력앞에서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회사는 늘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강조했지만,그 가족은 욕설과 폭행에 의해 움직이는 불량가족이었습니다. 대학교를 나온 이십대 기사가 오십대 노동자를 함부로 대해도, 관리자 식당에만 에어콘을 틀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선풍기만 돌려도, 노동자들은 찍소리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다가 자기 목소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이 결성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1987년 노동조합이 처음 생기고 나서 4년이 지나자 300%차등지급이던 상여금은 600%일괄지급으로 바뀌었습니다. 임금도 두 배 이상 올랐고, 각종 단체협약의 인상분까지 합하면 회사가 지급해야 할 임금은 1987년에 비해 거의 열 배가 늘어났습니다. 해마다 파업투쟁을 했으니까 일한 날은 이전보다 줄어들었습니다. 과거에 노동자들 사이에 이상한 상여금 경쟁을 붙여가며 공짜로 착취하던 것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손해는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입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투쟁을 할 때마다 곧 회사가 망할 것처럼 떠들던 보수언론의 주장이 옳다면 회사는 망해도 열 번은 망했어야 합니다. 그런데다 해마다 흑자가 났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그만큼 착취당했다는 것, 회사가 늘 피우던 엄살은 거짓이었다는 것, 우리는 정말 바보였다는 것


민 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장이 전하는 1986년 한진중공업의 풍경도 이갑용 전 위원장의 회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처음 벌였던 투쟁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개밥보다 못한 도시락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도시락 거부 투쟁 둘쨋날 관리자들은 도시락 뚜껑도 안 연 사람, 한 젓가락 먹은 사람, 두 젓가락을 먹은 사람을 일일이 감시하며(-_-)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용기있는 어느 노동자가 과장 앞에 도시락을 탁! 놓으며 "집에 개 키아요.개 주소!!!"라고 말하자 과장 앞에는 순식간에 도시락이 산을 이루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단결투쟁하자 사흘만에 게시판에 사장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상여금을 100%지급하겟다는 것과 연말까지 식당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어용노조가 일방적으로 지급을 유보해서 몇 년동안 노동자들이 구경도 못했던 상여급이었고, 사십년 넘게 지어달라고 애원하고 고충처리 엽서 수 만장을 써도 지어주지 않던 식당이었습니다. 관리자들의 말투도 존댓말로 바뀌었습니다. 화이바(금속,건설노동자들이 안전을 위해 쓰는 플라스틱 모자.파업투쟁때에는 용역을 통한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소중한 무기가 된다./발췌자 주)를 삐딱히 쓰고 작업복 단추를 푼 채 더이상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도 얻게 되었습니다. 단결이 가져온 자유였습니다. <불편해도 괜찮아>: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는 언제 나올까?/김두식 지음 p.18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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