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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bniz,s Third Letter, Being an Answer to Clarke,s Second Reply
p14. 
라이프니츠의 세 번째 서한: 클라크의 두 번째 답변에 대한 응답

  1. 일반적인 용법에 따르면, 수학적 원리는 순수 수학—즉, 수(數), 도형, 산술, 기하학 등—에만 적용된다. 반면 형이상학적 원리는 원인과 결과와 같은 보다 보편적인 개념들을 다룬다.

  1. 상대방은 나의 핵심 원리, 즉 "어떠한 것도 충분한 이유(ratio sufficiens) 없이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특정한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나, 실제로는 부정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이 원리의 엄밀한 함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그는 나의 논증을 반박하려는 예시를 제시하는데, 이는 실체적·절대적 공간을 주장하는 일부 근대 영국 학자들의 '우상'(idolum)에 정확히 부합한다. 여기서 '우상'이란 신학적 차원이 아닌 베이컨 총재가 규정한 철학적 의미—즉, '종족의 우상'(idola tribus)이나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에서 사용된 개념이다.


  1. 이 학자들은 공간이 실재적이며 절대적인 존재(substantia absoluta)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중대한 난관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존재는 필연적으로 영원성과 무한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는 공간을 신 그 자체이거나 신의 속성인 '무한성'(immensitas)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간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신과 동일시될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1. 나의 입장을 명확히 하자면, 나는 공간을 시간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관계적 개념(ens relativum)으로 본다. 즉, 공간은 공존(共在)의 질서(ordo coexistentiae)이며, 시간은 계기(繼起)의 질서(ordo successionis)이다. 공간은 가능성의 차원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질서를 나타내며, 이때 구체적 존재 방식은 고려하지 않는다. 다수의 사물이 동시에 인식될 때, 우리는 이 질서를 명확히 지각하게 된다.


  1. 공간을 실체나 절대적 존재로 보는 주장을 논박하는 데는 다수의 증명이 존재하나, 여기서는 상대방이 제시한 논의를 계기로 하나의 명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겠다. 만약 공간이 절대적 존재라면, 충분한 이유 없이 발생하는 사태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나의 공리(公理)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를 증명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은 절대적으로 동질적(同質的)이며, 그 안에 배치된 사물이 없다면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은 어떠한 측면에서도 차이가 없다. 따라서 (공간이 사물 간 질서 외에 독자적 실재성을 가진다고 가정할 때) 신이 동일한 상대적 위치를 유지한 채 사물을 특정한 공간 배열로 배치한 이유—예컨대 동서(東西)를 반전시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반면 공간이 단순한 질서 또는 관계적 개념이며, 사물 없이는 배치 가능성(mere possibilitas)에 불과하다면, 현재의 상태와 동서가 반전된 가상의 상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 차이는 오직 공간의 독립적 실재성을 가정한 우리의 공상(空想)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두 상태는 완전히 식별 불가능(indiscernibile)하므로, 어느 한쪽을 선호할 합리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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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5.06.24 20:38:55

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는군요.

이런 방식의 논리학과 해석학을 젊었을 때 충분히 습득해야만 

현대 철학을 이해하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겠지요.

어쨌든 재미있는 글이네요.

[레벨:5]배성민

2025.06.25 11:54:28

지금까지는 천천히 따라 읽는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클라크가 조금 넓게 답변을 했다면, 라이프니츠는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공간관을 지적하며 논의를 좁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의 공간관에 따르면, 사후 세계가 있다면, 사후 세계에도 사물이 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공간은 사물 간 질서 외에 독자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사후 세계의 공간이 있다면, 사후 세계에도 사물이 있어야 됩니다. ㅎㅎ 물론 그 사물의 성격이 현재 우리의 공간에 있는 사물과 같은지도 흥미로운 쟁점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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