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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길

조회 수 2076 추천 수 0 2010.02.13 10:46:05

슬프게도 비전(秘傳)은 존재한다. 슬프다 함은 비전의 존재가 평등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가르침이 은밀하게 전수되는 까닭은 차별이라기보다는 배려이다. 많은 경우 은밀한 전수의 이유는 공공연한 전수의 부작용 때문이다. 영성의 추구에는 일정한 대가가 요구된다. 그리고 비전은 그러한 대가를 치룰 의사가 확증된 이에게만 전달되어야 옳다. 대가를 치루지 않고 비전을 전수받는다면, 나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그의 자아를 확장시키고 만다. 설혹 영성에 대한 재능이 있더라도 그 꽃을 피워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적절치 못한 시기에 입수한 정보는 영혼의 건강을 망친다는 뜻이다.

 

물론 비전들 간에도 급수(級數)의 차이가 있다. 낮은 급의 비전은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자격이 충분하지 못한 이가 입수하더라도 대체로 그 부작용이 크지 않다. 물론 급이 높은 비전은 구하기도 어렵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곁에 있어도 스쳐지나갈 뿐이다. 운 나쁘게도(?) 적절하게 준비되지 못한 자가 이를 입수하게 되면, 마치 아이가 불을 만지는 것처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혹은 놀랍게도) 기독교 안에도 비전은 있다. 물론 여전히 대중에게 닫혀있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이미 우리 주변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다시 말하지만, 이는 인쇄기술과 디지털 기술에 기초한다). 그런데 왜 비전이 공개되는 데도 비전일 수 있는 것인가? 준비되지 못한 이들은 그 이면을 들여다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비전이 비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은 그 자체로 훈련을 요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존재의 성숙과 관련된다. 물론 존재를 넘어서는 직관으로도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 수는 없으므로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미 말했듯이 행위에 선행하는 것은 존재다. 그리고 존재는 무엇보다도 자아에 대한 연단을 통해 성숙된다. 흔히들 자아를 연단하기 위해서는 광야를 거쳐야 한다고들 한다. 고난을 통해 성장한다는 뜻이다(No Cross, No Crown). 그러나 고난 자체로 성숙하고, 자아가 연마되지는 않는다. 사고나 사업의 실패로 인해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대부분 교회의 골칫거리가 된다. 거칠고 혼탁한 그들의 자아는 사역 현장을 교란시키고, 오염시킨다.

 

이것은 제자의 문제를 넘어 스승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성의 기법을 논하는 강사들의 말을 듣고, 표정을 보는 가운데 그들의 자아가 어느 곳에 자리하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좋은 식재료를 찾아 몸의 건강을 챙기듯이 좋은 스승을 만나 영적 건강을 챙겨야 한다.

메세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메신저이다. 브룩스는 말했다. 설교는 인격을 통해 전달되는 진리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물론 재능이 있다면, 메시지만 듣더라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스승은 메세지 이전에 자신의 인격 자체를 통해서 가르침을 전달해준다. 평범한 선생은 입으로만 말하고, 진정한 스승은   입으로도 말한다.

 

기독교 안팎에서 영성을 논하는 많은 이들의 자아가 팽창되어 있다. 이들의 영성 논의는 헛된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유명한 교사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자아가 부풀어가고 있다면, 그들의 실행과 교육은 영성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 스승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비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전을 전해주는 스승이다. 스승은 비전을 전하기 전에 비전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데에 전념한다. 물론 우리의 그릇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즐겁지 않다. 무예의 스승은 제자의 몸을 단련시키는 데에 수년을 소비한다. 물긷는데 삼년이요, 장작패며 삼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몸에다 기술이 들어가는 것이다. 설혹 기술이 부족해도 그 몸 자체로 무기가 된다.

 

무술에서의 몸에 해당하는 것이 영성에서의 자아이다. 몸을 만들듯이 자아를 비워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아를 상대화시켜야 한다. 영적 스승은 제자의 자세만 보고서도, 자아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스승이 주목하는 것은 자세에 배인 자아의 양태이다. 자아가 얼마나 팽창했는지, 그리고 자아가 얼마나 중심에 들어서 있는 지를 살펴본다. 자아가 바른 상태가 아니라면, 비전의 전수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요,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걸기가 된다.

 

 

                                                                                                                                      비전과 영성 (이원석)

 

 


[레벨:10]차성훈

2010.02.13 13:24:48

출처를 더 자세하게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근데 여기 '이원석'씨가 제가 아는 그 분인가요? 틸리히 신학 하시는?;

[레벨:12]라크리매

2010.02.13 21:59:57

네.. 맞아요 아시는 분인가요?

카이로스 회원이고 블로그진에 연재글을 올리고 계시죠

이글은 연재글을 발췌해서 올린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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