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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은 자신을 빼앗긴[자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신과 항상 이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자신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런 논변으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인간 존재의 (특성이) 있다. 인간은 <자신 바깥에>, 정확히 신 곁에 있지 않고는 자신 곁에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 자체는 자신 바깥에 있는 존재이다. 설령 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을 지라도 그러하다.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고는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말하는 존재다. 그래서 들으면서 세계로 들어가고, 말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이 사실은 인간이 박탈당한 존재임을 가리키며, 이는 쉽게 무시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행위가 없어도 자기 자신을 이미 박탈당한 존재이다. 다시 말해, [우리 존재 안에서 이미] 신과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언가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 편에서 신과 (우리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와 우리 자신에게로 나가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려 한다면, [다시 말해,] 인간이 살기를 원한다면, 인간은 (말을 들음으로써/듣는 행위를 통해) 신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 (이사야 55장, 3절) 신의 법Gesetz을 들음으로써, 모든 관계의 근원에 관여할 수 있다. 생명은 모든 관계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신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은 신과 맺은 관계와 자신에게 기대되는 모든 다른 관계에 맞게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그 관계에 맞게 살아가는 이는 의롭다. 그래서 제사장에게도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의로운 자는 살 것이다.(생명을 얻을 것이다.) (에스겔 18장 5-9절, 느헤미야9장29절, 하박국2장4절, 레위기18장5절 :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한 사람이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 정의롭다(의롭다)는 평가를 받지 못할 때,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할 때, 이는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사태를 단지 부정적으로 다시 기술한 것이다. ( 역주 :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는 자는 살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결국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혜를 반대하는 길을 가는 자에 대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이 역시 (생명) 논리의 이면일 뿐이다. ( 지혜로운 자는 살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죽게 된다. : 역주) 이 주장에 대해 (나중에) 다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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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대면한 생명
사람이 신을 찾고, 그의 말씀을 듣으며, 지혜의 길을 가더라도, 죽음은 도래한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경건한 자도 결국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사람의 개인은 결국 죽는다. (시편 89장,48절) 이스라엘 역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신앙인(믿는 자)가 체험하는 가장 비통한 시련이었다. 희망을 잃은 설교자는 이 시련을 가장 날카롭게 기술했다.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전도서 2장26절) [ 지혜자도 어리석은 자와 똑같이 죽는다. 그래서 삶은 나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다. : 독일어 ; 역주]
하지만 [전도서의] 설교자의 절망이 유사한 시련/(이의제기)로 반드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인에게는 이런 시련으로부터 능력kraft이 점점 성장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지금 신과 맺은 관계는 삶과 죽음이란 선택지를 결국 능가한다고 칭송할 수 있는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지상의 생명은 최상의 선이지만, 이 선도 신과 맺은 관계에 의해 한번 더 능가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인의 신앙을 이렇게 변형하여 기술하는 본문은 구약성서에 드물게 나타난다. ( 역주: 변형되어 기술한다는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인은 일반적으로 지상의 삶을 최상의 선으로 여기지만, 신과 맺은 관계가 이를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상을 전달하는 본문은 구약성서에 흔하지는 않다.) “당신의 은총이 생명보다 낫다”는 (앞에서 언급한) 구절도 이런 사상에 속한다. 아마 시편142장5절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기도하는 자는 자신의 신Gott을 “나의 분깃”이라고 부른다. ( “주는 나의 피난처이시요. 생존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시142:5) 분깃이란 “살아있는 자가 소유한 땅의 일부”라는 뜻이다.: 역주)
융엘의 글은 한편의 고급스러운 설교 같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