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을 위한 책갈피입니다. 나누고 싶은 책 내용이나 소개하고 싶은 글들은 이곳에 올려주세요~

‘예술을 공부하기 위한 애피타이저’라는 호칭이 어울릴 것 같은 책이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라는 조금은 낮 뜨거운 그린비출판사의 시리즈 명칭으로 출판된 책이다.
‘인생역전’의 의미가 다르기는 하지만 독자를 이렇게까지 낚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은 왠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인문학’이란 명칭 또한 ‘인문학’의 열풍과 무관하게 붙은 제목이 아니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가져다 준 해악(?) 또한 언급해야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리고 확인해 보니 개정증보판이 북드라망 출판사에서 나와 있다.
위의 글을 쓴 다음 사진을 첨부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출판사도 했던 것인지 여기에는 이런 시리즈의 명칭이 사라져서 출판되었다.
청소년 교재로 나와 더욱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채운 선생의 다른 책도 있기는 하다.
<느낀다는 것>이란 책이 그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기 위해서는 <호모 아르텍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얼마 전부터 미술을 하는 이들과 어울려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읽은 텍스트 중 하나이다.
미학의 이론에 질려 있는 예술가들에게 이론이란 개념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음과 그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이론은 어떤 것이고 이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말을 다시 말해보면 기존의 이론이란 것이 있고 이것을 비판하는 것들도 어떤 이론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이렇게 비판되고 있는 이론과 비판하고 있는 ‘이론’이 동일한 것인가를 묻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론의 일방적 폭력성에 대한 오해가 이 둘의 체계가 동일하게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전혀 다른 것들이라는 점에서 생겨난다는 점이다.
어쩌면 전자가 이성을 통해 사고를 규정하고 가공하여 논리를 구성하는 일이라면 후자는 그 가공이전의 선이성적이며 선 합리적인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감각의 논리>에서 다이어그램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아마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 한다면 전자는 구상이고 후자는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인 방법이 아니고 작업을 통해 구상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말할 수 없다.
추상표현주의의 액션페인팅조차도 익숙해져 있는 습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떤 것을 생성할 수 있을지는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무의식 속의 ‘아버지의 법’과 ‘에피스테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온전한 자유로움은 보장되지 못한다.
이런 점에 대해 <호모 아르텍스>는 삶 속에서 예술을 하는 방법을 이야기 해준다.
예술가에 대한 전형적 이미지를 지우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채운은 예술가가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하는 이가 예술가라고 이야기 한다.
이전까지의 예술이란 천재예술가에 대한 칭송이나 질투를 통해서 체념을 배우게 되며 예술을 그런 천재들이 만든 완전한 결과물로 이해하거나 그런 그들을 경탄하고 숭배할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야 말로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들일 뿐이다.
천재야 말로 악조건과 불운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운명을 원망하지 않는 이들이다.
‘다르게’사는 자들이다.
한계를 실험하고 돌파하는 자들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위해 얼마는 많은 모험과 실험을 거듭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반 고흐, 세잔, 드뷔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은 실험과 도전을 통해 천재가 된 이들이다.
조선중기의 시인이자 문장가인 ‘김득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그는 <독수기>라는 책에 만 번 이상씩 읽은 책들에 대해 거론하며 만 번을 읽지 않은 책은 거기에 넣지도 않았다. 지독한 그의 끈기와 포기하지 않음을 이야기 하는데 <백이전>이란 책은 1억1만3천번을 읽었다고 한다.
아마도 ‘김득신’이 1십1만3천 번을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백이전>은 백이숙제에 대한 이야기로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 이다.
한자음으로 그 내용을 아무리 빠르게 읽어도 90초 이상 걸리는 분량인데 하루 24시간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190년 이상이 걸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그는 그가 본 거의 모든 책을 만 번 이상 읽은 사람이다.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천재인 것이다.


세잔의 그림에서 기억의 힘이 아닌 망각의 힘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한 망각의 힘에 대한이야기로 세잔의 그림을 설명하는 것이다. 기억의 습속을 지우는 망각의 힘. 망각은 힘이 될 수 도 있다.망각력과 기억증.
작가들 앞에는 흰 캔버스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화가가 순백의 표면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이야기 한 바로 그 의미이다.
수많은 이미지들이 이미 화가의 머릿속에 우글거린다.
이때 우리들은 망각이 힘이 된다.
하지만 망각이란 모든 것을 지우고 순백의 표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망각이란 잊혀 지지 않는 기억위에 새로운 기억을 덮어 쓰는 것이다.
이 때 만이 오래된 것은 지워지고 새로운 것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예술은 사회가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예술은 사회가 유용하다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반문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술의 윤리적 체제’, 즉 사회적 유용성에 따라 예술이 식별되는 체제에 대한 랑시에르의 비판을 의미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서 붓에 의해 뭉개지거나 지워진 자리들은 힘이 지나간 자리를 보여준다.
베이컨은 얼굴이 아닌 머리를 그리는 화가이다.
기관은 있지만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머리, ‘기관 없는 신체’를 표현한다.
그것을 유기적으로 자리 잡게 놔두지 않는 것, 즉 얼굴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힘들의 작용이다.
예술은 바로 이런 힘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은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과 만나고 말을 걸고,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변화시키는 행위이다.
피그말리온 처럼 자신이 사랑할 대상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행위가 바로 예술인 것이다.
사랑이란 소유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사랑이란 상대방이 방출하는 모든 기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라고 사랑을 정의한다.
예술이란 세상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이다.


구경되는 장소.
그것은 예술을 대상화 하는 공간일 뿐이다.
동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구경하는 것이 반(反)동물적인 것처럼 예술품을 한 곳에 모아놓고 감상하는 것은 반(反)예술적일 수도 있다.
왕실의 보물 저장고가 미술관의 기원이고 이들의 취향을 반영하던 미술품들이 모든 미술의 규범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걸작이 미술관에 모셔진 것이 아니라 미술관에 있는 게 걸작의 기준이 된 셈이다.
동물에 대해 느끼는 우월감이나 미술관의 작품들에 대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경탄이 있지만, 구경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다. 구경된 것은 대단해도 금세 잊혀 진다.

해프닝(happening)으로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파괴의 의미와 소리를 들려주는 플럭서스, 온몸을 캔버스로 만들어 다른 신체로 변화하는 원시부족, 관습과 명령에 무력하게 길들여진 나약한 신체가 아니라 다른 이의 욕망과 접속하면서 나날이 건강해지는 신체-되기.
대추리의 최병수, 한스 하케라, 그린 게릴라, 서로의 특이성으로 만나는 소림축구단, 이주노동자들의 밴드 스탑크랙다운.
우리들은 지렁이의 삶속에서 진정한 웰빙을 만날 수 있다.
버려진 것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지렁이의 삶이야말로 윤리적인 삶이다.
의식하지 않고 의도하지는 않으며 목적을 가지지 않는 무위자연한 행위.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윤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닫힌 세계 속에 살다가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순간, 그 순간 삶은 예술이 된다.
그것은 거미의 삶과도 같다.
눈도 없고 지각능력도 기억력도 없지만 온몸으로 진동을 감각하며 진원지를 향해 몸을 던진다.
법칙의 질서정연한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진동과 속도, 기호들로 이루어진 불확실하고 모호한 세계가 거미와 예술가의 세계이다.
자신이 감지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만큼이 자신의 세계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공명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계는 넓어진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이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무덤덤한지, 무엇을 만나면 기쁘고 무엇을 만나면 슬픈지, 어떤 일을 하면 능력이 커지고, 어떤 일을 하면 작아지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지에 대해 아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일보다 중요하다.

교도소 속에서도 구속으로 벗어난 삶을 산 조지 잭슨, 예술은 지금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동물과 소통의 능력을 선물해준 탬플 그랜딘의 자폐증은 오히려 그을 다른 종 까지 소통케 하는 소통의 능력자로 만들어 주었다.
어쩌면 같은 종(種)하고 밖에는 대화하지 못하는 인간들이야 말로 진짜 자폐증 환자일 것이다.


예술을 다 잊어도 좋다.
예술 작품도, 예술가도, 예술이라는 말까지도.
중요한 건 지금까지 만난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건네주었던 지혜와 메시지들이다.
각자의 예술을 꿈꾸자, 아니 어쩌면 꿈을 깨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트릭스의 세상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이 예술의 출발이지도 모르겠다.


profile

[레벨:29]유니스

2014.06.16 11:40:32

떡진머리님, 서평 잘 읽었어요.

의미심장한 내용이 잔뜩이네요.

거진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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