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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클럽 운영자 양희송님의 글을 발췌했습니다. 


20100903 목회와신학 서평

 

 

“‘신앙의 로맨스지성의 스캔들이 되지 않으려면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양희송(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마크 놀은 27년간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대학인 휘튼(Wheaton College)에서 가르치다가 현재 노트르담 대학의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미국 복음주의 연구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학자이다. 그는 이 책은 상처 입은 연인이 보내는 편지(25)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미국에서는 복음주의자인 동시에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25)고 고백하며 책을 시작한다. 나는 이 문장을 오늘날 한국 개신교 안에서 동일한 열패감을 느끼는 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으로 읽는다.

 

2.

이 책은 일관되게 복음주의 지성에 어떤 스캔들이 일어났는가?란 질문을 반복심화하며 묻고 있다. 이 질문 자체가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 미국의 복음주의는 최고로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미의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 르네상스란 용어까지 써가며 양과 질의 측면 모두에서 복음주의운동이 기독교 신앙운동으로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대단한 기반을 확보했음을 한참 상찬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크 놀은 지성의 스캔들을 겪고 있다고, 기독교계 지식인으로서 심각한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실망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스캔들의 핵심이 복음주의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29)이라고 말한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현상적 대성공을 거두는 가운데, 지성을 경시하는 풍토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고, 현실이 이러한데도 전혀 위기의식마저 갖지 않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절망적이었다는 얘기다.

 

3.

그는 이런 지성적 스캔들이 문화적(cultural), 제도적(institutional), 신학적(theological)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복음주의 정신은 세상에 대한 진지하고 주의 깊은 성찰을 중시하는 문화를 배양하기 보다는 행동주의적(activist)이고, 대중주의적(populist)이고, 실용주의적(pragmatic)인 태도를 양산했고, 이로 인해 창조과학이나 묵시적 종말론 등의 단순화된 현실인식에 쉽게 함몰되었다는 것이다. 제도의 차원에서는 대중적 언론은 있을지 모르나, 진지한 학술지 하나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는 상태이며, 엄청난 수의 신학교나 기독교 대학들이 있으나, 그 깊이는 놀랄 정도로 얕으며, 정상급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와 연구기관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파악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무슨 의도적 반지성주의의 조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런 반지성주의는 복음주의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 최상의 선의와 최고의 노력을 바친 결과 만들어진 역설적 열매인 경우가 많았다. 마크 놀은 이런 방식으로 미국의 건국 이래 미국 역사 속에서 복음주의가 점점 지성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궤적을 규명해 내었다. 오랜 종교전쟁을 치른 종교이민자들로 시작한 미국 초기 역사는 신대륙에 기독교정신에 기반한 국가 하나를 만들어보자는 것으로 단순히 요약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미국의 복음주의는 부흥운동, 혁명, 계몽주의란 당대의 세계적 흐름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교섭하며 등장하였다고 지적한다.

마크 놀은 이를 세세히 정리해나가면서 부흥운동은 대중의 정서에 직접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리더십을 촉발하였고, 이것이 전통교회의 약화를 불러와 결국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즉각주의(immediatism)란 복음주의적 인간형의 등장을 초래했다고 보았다. 이는 복음주의가 지성적 성찰과 면밀한 검토보다는 당장 사람들의 헌신을 이끌어낼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대중운동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수정헌법 제1조의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의 자유는 확보하였으나, 교회간에는 회심자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종교시장적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는 미국 최고의 지성인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꼽히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적 유산이 어떻게 후대 복음주의자들의 반지성적 면모에 기여하게 되는지, 계몽주의의 유산과 적대적 거리감을 갖고 있던 복음주의가 어떻게 역설적으로 계몽주의를 내면화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도 면밀하게 분석해 놓았다.

 

4.

한편, 신생국가였던 미국을 개신교 기반에 세우기를 원했던 광범위한 소망의 결과 미국이 채택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노선은 곧 신앙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쉽게 동일시되었다. , 공화주의적 정치체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계몽주의적 사회문화 등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기독교적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적으로 정당화되는 내면화 과정을 밟아 정착되었다. 그 결과 복음주의적 대중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체제를 너무나 자명한 기독교 체제로 인식하였기에 지성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생소하거나 불필요한 작업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미국인들이 종종 외부인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비판적 태도나 부정적 평가에 낯설어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제는 고스란히 기독교로 소급되거나, 성서적으로 환원가능한 것이라 여기는 관행이 엄청나게 거대한 저변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모든 흐름은 19세기 후반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대두로 이어진다. 마크 놀은 앞 세대의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과 더불어 미국의 근본주의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자로 이 시기를 대표 짓는 이슈들과 인물들을 검토해나가면서 복음주의의 형편을 앞뒤로 잘 분석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원숭이 재판으로 알려진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의 추이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재판이 단순히 신앙과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시의 대중주의(populism) 전통의 유력정치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결합하게 되었고, 그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함의와 파장은 어떤 것이었는지 제대로 소개받을 수 있다. 아울러 성서무오론의 등장 배경과 논쟁구도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재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분석은 적실하고, 문체는 통렬하다. 지 성의 문제는 단순히 경건한 신앙에 추가로 요청되는 장식품이 아니란 것이다. 지성이란 자신들이 믿는 바에 대한 심화된 자기 이해와 세계 이해,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된 삶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할 신앙적 과제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는 결코 신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십자가가 스캔들이 되는 것은 지성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위 인간들이 지성이라 일컬어온 것들을 상대화시키고, 무장해제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 후반부 장들에서는 비로소 미국 복음주의에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드리운 반지성주의의 흐름을 넘어서려는 희망의 몸짓들이 소개된다. 근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이 등장한 것, 주류 교회들 내에서 소통 가능한 학자들의 등장, 화란개혁주의자 등 이민교회 공동체의 기여, 저명한 학자와 저술가들에 의한 영국 복음주의권의 지원 등을 통해 지성적 노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복음주의자들의 학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성찰적 움직임이 대두되면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 걷혀질 가능성을 보았다.

 

5.

15년 전의 분석이 오늘날의 미국 복음주의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마크 놀은 이번 새 번역판을 위해 2009년 말에 한국어판 서문을 썼다. 그는 거기에서,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은 즉각적 행동과 결단을 강조하는 즉각주의(immediatism) 경향이 강하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보다는 지지자의 수를 늘려 상황에 주도권을 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현실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보다는 이를 영적으로 환원하는 이원론에 쉽게 동조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지성 양성 프로그램보다는 전도나 구호 프로그램에 재정지원 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고, 또한 종말론적 공상에는 쉽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한편, 정치화된 신앙(politicized faith)의 손쉬운 먹이감이 되어서 냉정한 정책판단보다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언행에 선동되어 왔다는 것이다. 여전히 문화예술 영역의 성취는 보잘것없고, 과학의 영역에서는 창조과학을 최선으로 여기는 지적 자살에 가까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았다.

 다만, 그는 과거 본문에서 희망적 사례로 제시했던 내용을 한국판 서문에서 좀더 명료하게 정리하여 7가지를 긍정적 징후로 꼽았다.

첫째, 가톨릭과 복음주의 사이의 교류가 활성화 됨으로써 상호 자극과 지원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 둘째, 기독교 학문연구를 위한 기금의 조성과 그 열매(퓨 재단 기금). 셋째, 기독교 철학 분과의 두드러진 약진. 넷째, 복음주의 대학들의 학문연구에 대한 강조와 투자 노력. 다섯째, 미국과학협의회, 바이오로고스재단 등 창조과학 논쟁을 넘어선 기독교와 과학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 형성. 여섯째, 미국의 일반 대학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감이 확보된 것. 일곱번째, 기독교 출판의 질적 수준 및 지적 역량 강화 등이 그것이다.

마크 놀의 요약은 현재 미국 복음주의에 대한 개략적 평가로 매우 유용하다. 물론, 궁금증은 남는다. 그가 미국의 복음주의 대중들이 부시 정부의 선거캠페인에 동원되었던 일이나, 최근 오바마 정부의 등장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기 어렵다. 그가 창조과학에 대해 명료하게 비판하면서 그 이후 대대적으로 등장한 지적설계 운동 같은 것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등도 궁금한 채로 남는다.

 

6.

결국 이 책을 한글로 읽어갈 사람들에게 절실한 질문은 한국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가 되고 만다. 일 차적으로 이 책의 분석틀과 소재를 한국 복음주의에 포개어 놓고 검토할 수 있는 부분이 꽤 많이 있다. 연구기관의 부재나 신학교의 학문적 폐쇄성 내지는 퇴행성은 쉽게 도출될 수 있다. 좀더 긴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한국의 복음주의 대중들에게 형성된 어떤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분석해내는 일이다. 나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뉴스는 단지 도덕재무장운동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실상 지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한국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넘어설 로드맵을 찾고 있다. 마크 놀의 책은 이런 근본적 모색을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정교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한국에 복음주의 지성의 르네상스는 적어도 이 책이 말하는 비판적 논점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기여를 꼽아보라면, 아마도 다들 복음주의 지성의 로맨스라고 여겨주고, 덮어주던 어떤 행태를 향해, 그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라고 눈 부릅뜨고, 하나하나 따져주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복음주의운동을 탄생시킨 바로 그 동력 자체에 비판적 검토를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거대한 성공이 곧 거대한 실패의 원인됨을 명료하게 지적해준 것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정도의 과감한 시도가 아니면 갱신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의 지적 패기와 명료한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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