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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기독교의 윤리적 지평)

 

 

가치판단

 

우리가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답변은 매우 분명하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이 가치

판단이 다르기는 하지만, 인류가 가치판단을 통해서 고급한 정신문명 세계를 열어왔다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가 이렇게 윤리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이유는 그 행위가 다른 사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윤리는 인간관계다.

 

과거에 비해서 현대는 훨씬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윤리 문제도 훨씬 복잡하게

변했다. 인간 삶에서 윤리 분야가 확대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교육, 노동, 법 등 사회생활 전반이

윤리적 문제와 연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행위에 대한 가치론적인 판단이라는 게 간단하지가

않다. 일반적으로는 그 시대가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그런 기준에서 행동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 개체가 그런 보편적 가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그런 보편적 가치가 사실은 윤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보편적인 윤리라고 한다면 사랑, 평화, 정의, 자유 같은 것인데 이 문제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라고 하더라도 지역 간, 국가 간에 충돌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기독교 윤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믿는 우리의 행위가 과연

얼마나 기독교적인가, 또한 얼마나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그렇게 간단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우리는 종교적인(영적인)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윤리와 충돌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그리고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하겠다.

 

 

존재와 행위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사사건건 충돌했기 때문에 종교적이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 비열한 사람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매우 윤리적인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민중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과 심각하게

대립했던 이유는 아마도 세계관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윤리는 율법이

말하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 정해진다기보다는, 또는 인간의 외면적 행위에 근거한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리새인들의 윤리적, 종교적 기준과 지평을 달리했다.

예수가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겉모양인 행위보다는 내면이라 할 존재의 변화와 연관된

세계다. 예수는 이런 관점에서 죄인들의 겸손을 의인들의 교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다고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유대인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구제와 봉사를 대단히 중요한 과업으로 여겼으며, 지금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비록 그것이 선하게 보여도 그 자체로서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양면적 성격을 보인다. 만약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건 위선일 뿐이고, 참된 사랑 가운데서, 즉 그 행위에 존재론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면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존재론적인 면에서 본다면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라 할 수 있으며 행위론적인

면에서 본다면 기독교인다운 윤리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나무와 열매비유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론적 변화와 그에 걸 맞는 행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적 관계를 맺고 있다. 나무가

우선 좋아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존재론적 시각이 우선하기도 하며, 열매를 보고서

나무의 좋고 나쁨을 안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관점이 중요하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그 행위를 규정하며, 기독교인의 행위는 그 믿음을 평가하게 한다고.

존재론적으로는 믿음이 우선하고, 인식론적으로는 행위가 우선하는 셈이다. 이 두 측면은 어떤

하나가 상위에 속하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적관계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이 두 차원이 상호조화 되는 게 아니라 안타깝게도 양극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쪽에서는 오직 믿음생활만 강조함으로써 윤리적 실천이 빈약하다. 종교행위에는 열정적이지만

도덕적으로 사는 데는 별로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오직 실천만 강조하다가

하나님과의 실존적 관계를 상실해서 영적 에너지 부족증에 걸리기도 한다. 민주화나 노동현장에만

뛰어다니다가, 혹은 사회봉사에만 치중하다가 사회적 국면이 바뀌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감각을

찾지 못하는 경우다.

 

 

개인과 사회

 

인간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가 악하면 역시 그런 악한 질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윤리문제를 생각할 때 결정적인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곧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윤리적 한계를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개인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고결한 윤리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정신 자체가 부도덕하면 결국 개인도 역시 부도덕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관점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로마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패전국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일을 정의로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것을 바탕으로 로마인들은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지만, 얼마나 많은 나라가,

가족이, 개인이 파괴되었는가. 그런 점에서 로마인들은 부도덕한 이들이다. 아메리카를 무력으로

접수한 백인들도 마찬가지다.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과 강제 이주된 흑인노예들에게 행한 그들의

행위를 도덕적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성서 말씀에 매우 민감한 이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시대정신 앞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 인간의 윤리적 판단과 행동의 기초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지 알 수 있다.

 

한 개체가 시대정신을 뚫고 나가기에는 너무나 무력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떤 절대윤리를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 도대체 인간에게 윤리라는 것이 어울리는 말이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적 허무주의가 바로 기독교 윤리의 토대는 결코 아니다. 비록 도덕주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도덕적 행위는 구약과 신약이 제시해주고 있는 신앙적 태도와 직결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가 순전한 관념과 추상이 아니라 성만찬적 사귐과 나눔이며, 정의로운 사회 실현을

통해 구체화되어야할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한다면 윤리는 기독교 신앙의 영속적

지평이다. 기독교적 윤리의 준거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을 하나하나 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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