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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8

조회 수 4978 추천 수 0 2013.04.13 14:28:28
 
현대신학의 흐름8
 
지난 번 바르트의 '생애와 변증법적 신학의 태동'에 이어 오늘은
2'바르트 신학의 개요'를 연재하겠습니다.
 
 
2. 바르트 신학의 개요
 
말 그대로 바르트 신학에 대한 '개요'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저자도 밝혔지만,
본 저서가 바르트 신학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현대신학의 흐름을 '계시와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신학자의 신학을 깊이 파고들 여유가 없는
것이죠. 간략하게 다루고 넘어갈 것입니다. 본 절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
하르낙과의 논쟁", "로마서 강해", "자연신학 논쟁", "안셀름 연구", "교회교의학" 이렇게
나눠져 있습니다. 따라가 보시죠.
 
 
1) 하르낙과의 논쟁
 
1922[로마서 강해] 2판의 출판과 함께 1923년 하르낙과의 공개 토론은 바르트의
초기 신학사상을 알게 해 주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먼저 하르낙과의 논쟁의 촉발과
그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920"성서적 질문, 통찰과 전망"(바르트 강의) =>
 
"학문적 신학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한 15개 질문"(하르낙의 반박) =>
 
"하르낙 교수에게 주는 15개 답변"(바르트 반박) =>
 
"바르트 교수에게 보내는 공개서한"(하르낙 재반박) =>
 
"하르낙 교수의 공개서한에 대한 답변"(바르트 재반박) =>
 
"바르트 교수에게 보낸 공개서한에 대한 후기"(하르낙 재재반박)
 
.
 
 
하르낙의 질문 15개가 중요한데 거기에 대한 언급은 없네요. 대신 15개 질문의
중요한 특징을 네 개 주제로 나눠서 바르트의 신학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르낙은 성서의 진리, 혹은 계시가 역사적 지식과 비판적 숙고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 성서에 드러난 계시와 내용들이 서로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비판적
연구가 필요하다
....."역사적 지식과 비판적 숙고 없이 어떻게 설교가 일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성서는 인간 정신의 기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믿음으로 알려진다." 입니다. 성서를 이해하는 데 역사적 지식과 비판적
사고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저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견해입니다.
 
[신앙과 각성은 다르다. 신앙은 설교에서 오고 설교는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따라서
"신학의 과제는 설교의 과제와 동일하다.(3) 여기서 바르트는 역사비평 방법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보인다
. 하지만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계시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바르트는 신 인식과 신앙적 체험의 차이를 분명히 하며,
신학의 과제와 설교학의 과제를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군요. 신학을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고 교회는 말씀 선포가 그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라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이성과 인간 경험에 대한 신학적 차이이다. 하르낙은 인간적 체험이
주관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물론
이 기준은 역사적인 지식이 될 수도 있다
.]
 
이성과 그에 의한 학문적 확신을 강조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바르트를 향해 "영지주의 심령술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 라고 공세적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한 바르트의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 종교적 전승이 비판적 이성과 반드시 충돌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을 영지주의적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한다
. ...... 그는 비판적
성찰 없이 신이라 부른 것과 인간의 진선미
(眞善美)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바르트는 인간의 이러한 신 경험은 인간에게 위기이며, 이 위기를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긍정이 나타난다는 것을 지적한다
.]
 
뭔 소리냐고요? ㅎㅎ^^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충 이런 말인 것 같습니다. 앞서
바르트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했는데요. 신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다는..... 이것이 인간에게는 위기이며 단절이라는 겁니다. 이 단절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긍정이 다가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대답은 빌립보서 4:7 '모든 이성보다 높은 신의 평화가....' 이 구절로 짧게
답했다는군요. 이성과 그리스도를 대립이나 조화로 보지 않고 세상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초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뜻이랍니다.
 
[셋째, 하르낙은 신과 인간의 대립을 지양하고 신의 사랑과 인간의 이웃 사랑을
결합한다
. 같은 관점에서 하르낙은 신과 세계가 대립되면 신을 향한 교육이
불가능할 것을 우려한다
.]
 
저자는 이런 하르낙의 입장을 약간 자연신학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네요. 바르트의
견해는 신과 인간의 사랑을 나란히 놓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신과 인간을 나란히
놓으려는 시도가 바로 신과 인간이 대립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의 존재유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르낙은 역사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는 그리스도는 몽상적인 그리스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
 
기독론에 대한 차이입니다. 바르트는 단호하게 "계시에 의한 그리스도 인식
외에는 그리스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저자는 이 부분에서 역사비평에 대해 꽤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라이마루스의 '예수 생애 운동'까지 예를 들면서 '자유주의 신학 = 역사비평학'
이라는 구도를 만드시려는 것 같네요.^^
 
 
2) 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는 나중에 한 번 더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는 바르트의 성서인식과
로마서 강해의 기본 사상이 된 강연 내용 중 한 부분을 올립니다.
 
["성서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인간적 사상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올바른 사상이다
. 성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를 알려 준다
.
어떻게 우리가 그에게 도달하는 길을 발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길을 찾으셨고 또 발견하셨는가
? 함이다.]
 
 
3) 안셀름 연구
 
1930년 안셀름 연구를 시작으로 바르트 사상에 결정적인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일찍이 바르트는 자펜빌 목회 시절부터 안셀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르낙과의 논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바르트는 연구의 대상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과 같은 범주에서
'합리성' 으로 인식되는 것에 동의하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르트의 고민이 생겨났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신앙은 정말 불합리한 것이며 이해를 거부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안셀름: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안셀름 연구서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학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본문을 올려야겠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인간에게 들려지는 메시지이다.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선포될 때 들려질 수 있는 합리적 성격을
내포한다
. ,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인격(person)과 들려지는 메시지의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다
. 따라서 메시지는 선포되고 인식될 수 있는 합리성을
가진다
. 이 합리성의 토대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말씀 스스로가 가지는 합리성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을 궁극적인 진리, '진리의 합리성'으로 보았다. 다른 모든
합리성은 진리의 합리성에 근거하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다
.]
 
결론적으로 인간 스스로가 신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는 없으나, 일단 하나님으로부터
진리가 계시되면 인간은 합리성을 가지고 신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중요한 말인데요.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막 욕할 것 같아요.^^
 
바르트는 여기서 '존재적 필연성'(ontic necessity)'인식의 필연성'
(noetic necessity)
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존재적 필연성' => 신앙의 대상이 다른 어떤 존재가 될 수 없는 불가능성을
의미
. 즉 신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 이 대상이 다른 것으로 계시될 수 없다는 뜻.
 
'인식의 필연성' => 인식의 대상을 다르게 인식할 수 없는 불가능성을 의미.
즉 계시에 의해 신에 대한 인식이 일어나면 그 대상에 대해 다른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뜻.
 
그러니까 사람이 신앙하는 대상으로부터 합리적 지식이 오고, 그 지식이 스스로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의 대상을 인식하도록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바르트는 존재적 필연성이 인식의 필연성 보다 선행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다음은 나머지 '4) 바르멘 신학선언과 자연신학 논쟁' '5)
교회교의학'을 연재하겠습니다.

profile

[레벨:18]天命

April 13, 2013

점점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냥 나가다가 되돌아오고,
나가다가 되돌아오고, 또 정신도 혼미해 오고 그러네요...^^
profile

[레벨:21]小木

April 14, 2013

어떡합니까~~^^ 앞으로 더 모호한 말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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