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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11

조회 수 4296 추천 수 0 2013.05.02 15:21:48
 
현대신학의 흐름11
 
오늘은 제2장 계시의 주체 : 바르트 / 네 번째 절인 '자연신학 논쟁과 은혜의 우선성'
연재하겠습니다. 바르트는 오랜 친구이자 신학적 동지였던 '에밀 브루너'1934
격렬한 신학논쟁을 하게 됩니다. 저자에 의하면 둘 사이의 신학적 차이가 1929년 이후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34년에 브루너가 자연과 은혜(Nature and Grace)라는
글을 발표한 후 같은 해에 바르트는 곧바로 아니오! : 에밀 브루너에 대한 답변
이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글로 반박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는데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4. 자연신학 논쟁과 은혜의 우선성
 
1) 자연신학 논쟁
 
브루너와 바르트의 논쟁은 표면적으로 여섯 개의 항목으로 진행 됐습니다. 여섯 개의
항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상대의 생각을 반박하는 형식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다섯 개의 주제로 압축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대한 논쟁
 
브루너는 하나님의 형상을 형식적(formal)인 것과 물질적(material)인 것으로 나눕니다.
[인간에게 물질적인 형상은 사라졌고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형식적인
형상은 죄인이든 아니든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으며
, 이로 인해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다
.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이 형식적 형상 때문이며,
죄를 짓더라도 이 형식적 형상은 파괴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바르트의 반박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르트는
인간에게 형식적 형상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스스로 주체적이고 책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바르트가 말하는 주체적이고 책임적인 측면은 당연히 구원과 연관해서 하는 말이다.
바르트는 인간이 스스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과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로 여타의
피조물과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
 
* 브루너도 인간의 전적타락, 오직 은혜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주장하는 형식적 형상이 미해결로 남는데요
. 저자는 만약 '형식적인 형상'을 인간의
주체성과 책임성이라는 차원에서 수용한다면 브루너와 바르트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거의 없어진다고 합니다
.
 
두 번째 : 예수 외에 다른 '계시'가 있는가?
 
브루너는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모든 피조물에서 창조자의 영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느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고, 이 세상의 창조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자기 현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계시도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로 나눕니다. 물론 일반계시는 구원에 이를
만큼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요.
 
이에 대한 바르트의 반박입니다.
[만약 피조물을 통한 계시도 하나님의 계시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이
계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지 반문한다
. 어떤 계시는 희미해서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게 하고
, 어떤 계시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게 하는, 곧 계시를
이렇게 단계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성령을 통하지 않는 자연을 통해 인식한 신이 성서가 증언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는지 반문한다
.]
 
* 두 종류의 계시에 대한 문제입니다. 브루너의 이 주장은 단순히 자연인이
피조세계를 통해 신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눈이 열린 자 만이 일반계시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므로
자연신학적 주장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고
, 바르트의 주장과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세 번째 : '보존의 은혜'에 대한 논의.
 
브루너는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타락한 피조물에게도 은혜를 베푼다고 보았습니다.
죄가 있어도 피조세계를 유지시키는 은혜를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preserving grace)
라고 지칭합니다. 물론 만물에 신성이 내재한다는 범신론과는 다른 것이며, 이것을
보편은혜(general grace) 보고 이 보편은혜를 구원의 은혜와 구별함으로 만유구원론에
빠지는 것도 피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바르트의 반박
[바르트는 타락한 피조세계도 하나님이 돌보고 함께 하신다는 생각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르트는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가 그리스도 없이 행해지는
은혜라는 것에 반대한다
. 바르트는 이 피조세계가 당장 하나님의 진노에 떨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을 독립된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로 보는 것이 아니고
,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심판 이전에 우리를 위해
중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얻은 것이다
."]
 
 
네 번째 : 역사적, 사회적 삶에서 나타난 '규례'(ordinances)에 대한 논의.
 
보존의 은혜 논쟁의 연장으로서, 브루너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결혼이나 국가에
대한 규례들이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에 속한다고 봅니다. 역사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규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주어졌다고 보고 인간의 본성과 연관시켜, 이것을
창조주의 자연적인 규례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대한 바르트의 반박
[바르트는 브루너의 주장인 "규례가 일반계시로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다."
생각을 아주 위험하게 보았다
..... 규례는 인간의 본능과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보존의 규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 없이 계시를 행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
 
* 브루너의 말입니다. "이들 규례(보존의 은혜와 규례)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졌으며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그 중요한
점은 오직 신앙 안에서만 규례의 중요성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 따라서
신앙 안에서만 규례를 제정하신 분의 의지에 따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니까 규례가 하나님과 분리해 자체적인 힘을 가지지 않고, 신앙의 눈으로 볼 때만
의미가 있는, 계시라기보다는 섭리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입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예민하게 논쟁되었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의 주장이
심각한 차이가 없다는군요.
 
 
다섯 번째 : '접촉점'(point of contact) 논쟁.
 
이 주제는 브루너와 바르트의 논쟁 중 가장 대중적인 관심을 끈 논쟁이며, 신학적으로
 상당히 미묘한 문제를 여러 개 포함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브루너는 인간이 돌이나
나무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령을 받을 수 있다면, 인간에게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접촉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브루너에게 이 접촉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형식적'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브루너는 인간은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브루너가 말하는 수용능력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신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 브루너가 말하는 인간의
수용능력은 인간이 말씀을 받아들이거나 수용하는 주체적인 능력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할 수 있다는 형식적인 가능성이다
.]
 
이에 대한 바르트의 반박
[바르트는 브루너의 주장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리스도의 은혜 이전에 인간이
어떤 형태로건 계시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그렇다면 계시와 인간 사이의 만남, 즉 접촉점은 없어도 되는가? 이 점에 대해 바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 "성령은 어떤 접촉점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창조하신다
. 단지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 그가 인간과 '접촉한' 사실을 회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데
, 이때 회상은 사실상 기적에 대한 회상이다."]
 
브루너는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형식적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고, 이 형상은 말씀이 들려올 수 있는 통로로서 수용능력을 의미하지만, 바르트는
인간은 계시를 수용할 어떤 능력도 가지지 못하며, 말씀의 수용도 오직 은혜로 인해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 문제는 '접촉점'에 대한 논쟁인데요.
[브루너는 접촉점을 말씀이 올 때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수용능력으로 보았다.
이 수용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달리 말씀을 받을 수 있다.]
 
바르트도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부분을 지적하는 것인데요.
 
[브루너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이 은혜보다 먼저라고 생각한다.
브루너의 말을 통해 바르트와의 차이가 분명해질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들려질 수 있는 가능성이란 인간의 책임성
(responsibility)이 전제 조건이
된다
. 하나님께서 말을 건네실 수 있는 사람만이 책임성을 가질 수 있다......인간이
스스로의 죄를 안다는 것은 거룩한 은혜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
 
브루너는 말씀을 듣고 인식하기 위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능력이 '전제조건'
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은혜의 말씀이 먼저가 아니고 인간의
죄에 대한 인식이 먼저인 것이죠. 인간의 책임성과 죄에 대한 각성을 은혜의
전제조건으로 본다는 것은 율법이 먼저라는 신학적 인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입니다만 이게 바르트 신학과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부분입니다. 바로 '은혜의 우선성' 여부에 대한 차이입니다.
바르트는 철저히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먼저이고, 은혜가 와야 자기의 죄성을 알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은혜의 우선성에 대해서는 다음에 바로 짧게 연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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