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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12-1

조회 수 4013 추천 수 0 2013.05.10 20:36:29
 
현대신학의 흐름12-1
 
오늘은 지난 번 '1)말씀 인식 가능성'에 이어 '2)인간의 책임성'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2) 인간의 책임성
 
저자는 '인간의 책임성'이라는 약간 모호한 개념의 주제를 논하기보다는 바르트
신학에서 이해하는 인간이해를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 어느 정도 인간에 대한
통찰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책임성'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 Ⅲ/2에서 "피조물"이라는 제목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한 권 전체를 인간론으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바르트에게 피조물이란 일차적으로 인간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된다는 신학적 이유 때문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다른 피조물 위에 두어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으로 보는 것 아니라는군요. 그래서
바르트는 인간을 독립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해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인간의 존재론(ontology)을 분명히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는 피조론에서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곧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는
인간의 존재론이다
." ......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계시된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은 신학적 지식의 대상이 된다
. 우리는 이 점 때문에
인간을 우주의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해야 한다
."]
 
먼저 바르트가 추구하는 인간론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바르트는 인간론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별해서 보았습니다.
 
* 관념적 인간형 = 얼마의 가설과 직관에 토대를 둔 유형 / 거부
* 과학적 인간형 = 인간이 심리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대상으로 치부되는 유형 / 거부
* 신학적 인간형 = 말씀의 빛에서 조명된 인간 / 수용
 
그러므로 바르트가 추구하는 인간론은 일반적인 인간론이 아니라 말씀 속에 있는
인간 즉 "신학적 인간론"입니다. 바르트가 추구하는 신학적 인간론은 성서가
보여주는 참인간(real man)에 대한 이론입니다. 인간성 회복을 찾는 과제로서
바르트는 성서를 통해 참인간을 위한 두 개의 근거를 제시 합니다.
 
인간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이다. 인간은 타락되고 죄 속에
있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다
.......인간이 죄에 속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한 상태를 의미하지만
, 비록 거역한 인간이라 해도 여전히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약을 파기하지는 못한다
.
 
참인간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이다......우리는 먼저 인간을 알고 나서
그 지식을 통해 예수를 아는 것이 아니라
, 인간 예수를 통해 참인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르트는 예수를 참인간의 모형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를 참인간을 위한 토대와 근거로 보려는 것입니다. 이 참인간을
위한 두 근거를 중심으로 참인간을 위한 여섯 가지 기준을 만듭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 예수에게서 보여 진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

인간 예수와 계시의 현존의 관계를 보면, 예수는 모든 사람의 구원의 역사이다.
인간은 구원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규정된다.

인간 예수의 삶은 그의 자유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된다.

인간 예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존재했다.

인간 예수는 전적으로 구원자 하나님이 역사 속에 활동하신 것처럼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 참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부름에 따라 응답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관점에서 이해된다
.

인간 예수는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을 위해 섬김의
 모습을 보인다
.
 
이어서 바르트는 이 여섯 가지의 기준을 토대로 대표적(일반적)인 인간론의
유형에 접근하여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첫째, 자연주의적 인간론
다른 피조물들 사이에서 인간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음. 형식적 독특성 외에
인간 본질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음.
/
참인간의 기준 중 하나도 충족하지 못함. 부정적 평가.
 
둘째, 관념론적(윤리적) 인간론
인간의 의지, 목적, 자유, 윤리적 영역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때문에 개인의
지식적 영역을 벗어나지 못함. 자연주의적 인간론과 유사함.
/
참인간의 기준 중 '신과의 관계', '하나님의 영광', '섬김과 봉사' 등의 기준에
어긋남. 철학자 피히테의 인간론을 예로 듦.
 
셋째, 실존주의적 인간론
실존주의는 인간의 한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초월적 측면을
가지지만, 이 초월이 인간을 떠나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문제를 가진다.
인간의 한계에 대해 분석은 하나 극복이 불가능.
/
야스퍼스의 인간이해를 예로 듦.
 
넷째, 유신론적 인간론
기독교 전승 속이나 유신론적 철학에서 나타나는 인간론으로서 인간의
합리성과 책임성이 강조되면서 역사적 결단과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여김.
인간의 잠재성(potentiality)은 보여주지만 인간의 현실성(actuality)은 제공하지 못함
/ 참인간의 기준과 상당부분 일치. 브루너의 반역 속의 인간을 예로 듦.
"유신론적 인간론은 초월적 존재는 인정하나 초월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전제하지 않는다
. 또 자신의 선택의 자유 안에서 인간의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 신과 이웃을 향한 순종을 위한 자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르트의 참인간을 위한 여섯 가지의 기준에 의해 비판된 인간론들입니다.
첫 세 유형에 나타난 공통적인 문제는 신과의 관계가 패쇄 된 인간론이고,
마지막 유신론적 인간론은 신과 인간의 역사에서의 개방성은 인정되나, 신의
초월적 계시가 무시되는 인간론으로 평가했습니다.
 
이제 여섯 가지 기준 위에서 참인간이 가지는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이 참인간이다. 바르트는 직접적으로
철저히 예수의 인간성에서 출발한다
. 따라서 참인간이 된다는 것은 예수에게
나타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가 누구이든 예수와 함께 있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이다
."]
 
보통 여기서 아멘! 하면 끝날 수 있는데, 저자는 또 다른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아마도 이런 게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참인간의 중요한 특징인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르트는 "말씀 속에 있는 인간"으로 정의 내립니다.
 
[.....이제 우리는 참인간에 대해 첫 정의를 내린다. 인간 본질의 실체에 대해
질문 받는다면
, ''이라는 단어는 전적으로 '부름을 받은'의 의미이다. 여기서
인간을 직시한다는 것은 우리의 본질을 보는 것이고
, 그 본질을 총체 안에서
보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내가 누구에게 속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 내가 누구 같으냐고 묻는 것도 아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 혹은 말씀의
빛에 비추어 나 자신을 이해한다면
, 나는 말씀에 의해 부름을 받았고, 그리고
나는 이 말씀 속에 있다고 대답해야만 한다
.]
 
"말씀 속에 있는 인간"이 언뜻 추상적이고 정적인 개념처럼 들리지만, 바르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인간'이며 이 부름은 한 번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계속
일어나는 연속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에게서 나타났듯이 인간의 영역
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입니다.
 
오늘은 규정할게 많습니다.^^ 저자는 말씀 속에 있는 참인간을 몇 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 속에 나타나는 은혜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며, 이 은혜의 선택을 통해 하나님은 그 피조의 세계로 뚫고 들어간다.
말씀 속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와 함께하는 인간이다.
 
둘째, 말씀 속에 있는 인간은 단순히 말씀이라는 개념 속에 머물지 않는다.
말씀은 단순히 어떤 것을 서술(indicative)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행할 바를 명령(imperative)한다.
 
셋째, 말씀 속에 있는 인간은 감사(gratitude)하는 존재이다. 감사하는 인간이란
말씀에 대한 인간의 응답성을 말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감사'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인간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이 감사이기 때문이라는군요.
 
[참인간은 은혜의 부름과 그 말씀의 명하심을 감사라는 응답으로 행한다.
인간은 감사를 통해 하나님과 새로운 개방성으로 들어간다. 이 참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인간이고
, 그는 이제 하나님의 계약의 파트너로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자이다
.]
 
"참인간은 하나님의 계약 - 파트너로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하고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역사
(history),
하나님이 활동하는 이 역사에 참여하도록 그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참인간은 이
일반 역사의 계약의 파트너이다
. 하나님은 참인간을 그의 계약 - 파트너
(covenant - partner)로 창조했다.
 
요약하면 참인간은 구체적으로 = 은혜와 명령, 감사와 연대, 역사참여 입니다.
 
이렇게 해서 바르트의 신학 속에서 인간이해를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저자의 요약입니다.
 
[말씀 속에 있는 인간은 참인간으로서의 책임성을 가지며 그 책임성은 바로
"말씀에 대한 책임성"이며, 이 책임성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책임성이다
. 이는 참인간의 감사의 응답이며 그는 이웃과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관계로 들어간다
. 말씀 속의 참인간은 하나님과 이 역사에 대한 계약 - 파트너로서의
책임성을 가진다
.]
 
많이 지루하셨죠? 저자도 지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바르트는 "계약의 파트너"로서 역사 속으로 나아간 참인간을 '결단 속에 있는 인간'
이라고 묘사합니다. 이와 연관해서 교회 교의학』 Ⅲ/2에서 "영과 육으로 된 인간"
"
시간 속의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통전적 특징들을 다루고 있다는군요.
인간의 책임성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생략할 수 없었습니다. 세 가지 측면으로
확장되는 인간의 책임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참인간은 자기 자신과 새로운 관계로 들어간다. 바르트는 인간을
"통전적 인간"(whole man)으로 봅니다.
[그는 인간을 영과 육의 결합체나 단순한 합일체로 보지 않는다. 완전한 통전체,
분리될 수 없는 육적인 영(embodied soul)이며 영적인 육(besouled body)으로
규정한다
. 이 통전적 인간은 성령과 함께하면서 새롭게 이해되고 규정되는
존재이다
.....참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관계 규정으로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고 자신에 대한 책임성을 가진다
.]
 
둘째, 참인간은 타자와의 관계로 나아간다. 인간 예수가 타자를 위한 존재라는
것이 인간 본질의 형식을 보여 준다고 바르트는 주장합니다.
[예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고립된 인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죄악 속의 인간은
고립 속에서
'인간'이 되고자 애쓰지만, 오히려 이웃과의 단절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말씀의 빛을 통해 새롭게 자아결정(self-determination)
하게 된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만남 속으로 존재의 의미가 확장된다
. 여기서
참인간의 이웃과 동료 인간에 대한 책임성이 부과된다
.]
 
셋째, 참인간은 시간 속으로 존재의 의미를 확장한다.
[시간은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시간이며, 시간의 주인인 예수는 시간 속에서
언제나 동시대인으로 존재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예수의 시간 안에서
미래를 가진다
. 예수의 미래가 인간의 시간에 의미를 준다. 참인간은 시간
속에서 존재하며
, 시간 안에서 예수의 미래를 향한다. 참인간은 이 시간,
역사에 대한 책임성 안에서 스스로를 이해한다
. 이 역사는 인간만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의 미래 안에 있는 역사이다
. 이런 의미에서 역사에 대한 책임성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책임성을 의미한다
.]
 
 
이제 제3장 계시와 세속: 본회퍼를 연재할 것입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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