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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15

조회 수 4813 추천 수 0 2013.05.28 18:22:05
 
현대신학의 흐름15
 
오늘은 제3장 계시와 세속 : 본회퍼 / 3'기독론의 구조'를 연재하겠습니다. 지난 번
까지는 본회퍼의 생애와 그의 신학을 평가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절 부터는 본회퍼 신학적 특징에 대해, 한계는 있지만 조금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머리가 좀 아픕니다.^^
 
 
3. 기독론의 구조
 
기독론은 본회퍼 신학의 근간입니다. 그가 남긴 그리스도론은 비록 많은 분량의
책은 아니지만 그의 '기독론 중심적' 신학의 특징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책에서 본회퍼는 전통적인 교리와 종교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거침없이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본회퍼 기독론의 세 가지 특징은 "그리스도의 현존", "현재와 초월의
변증법적 긴장", "중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은 직접적인 저술이 아니라 강의 노트를 편집한 것이고
비교적 적은 양이다
. 그렇다보니 본회퍼의 기독론에 대해 짜임새가 없다거나 비체계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
 
 
1) 그리스도의 현존
 
본회퍼의 관심은 항상 '현재'에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의 고민,
교회에 왜 교인들이 줄어드는지, 혹은 왜 신앙과 생활이 유리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의 설교가 무미건조한 형식과 개념 때문에 그들이 사는 상황과 너무 괴리가 생겨
그리스도의 말씀이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 되었고
......(교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나오나 우리의 설교가 그들이 예수에 이르는 길을 막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지 못한다
.......우리의 설교가 사실 지나치게 '교의적'이어서 교인들의 삶과 완전히
유리된 것은 아닐까
?
 
한국교회의 고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설교가 교의적이거나 딱딱한
예전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헐거워진 설교와 방종에 가까운 예전과 교회운영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본회퍼의 말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발 딛고 사는 사회나 역사와 무관한 성경이해가
우리에게 무의미하다는 뜻입니다.
 
[본회퍼에게 설교, 교리, 신앙은 항상 '현재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현재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그 교리와 설교는 공허한 것이다
.]
 
오해의 소지가 좀 있는 글이라서 저자는 각주에 이런 말을 합니다. '현재''현실'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위의 인용이 자칫 '상황윤리''실존주의 신학'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다룰 것입니다.
 
본회퍼의 현재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론에서는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나타납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론의 본론 제1부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한 자로서 현존하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론의 첫째 말은
바로 이 말이다
. '현존'(present)이라는 말은 시간적 장소적 개념, 즉 지금 여기(hic et nunc)라는
말로 이해되는 말이다
. 그래서 현존이라는 말은 인격자를 정의하는 부분이 된다.
 
본회퍼의 첫 관심은 어떻게 예수의 현존하심이 인격성 훼손 없이 가능한지에 대한 것
이라는군요. 승천하고 없는 예수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그의 힘이나 영향력이 남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격이 현존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의미 있고 가능한 단 하나의 질문은 "여기 우리와 함께 같은 시간에 현존하고 계신
 분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대답은 "- 인이신 한 분 인격적 존재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답이다. 나는 인간 예수가 동시에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지 아니하고는 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인간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 그들이 서로 격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요소를 분리시킬 수 없다
. 무시간적 영원 속에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
 
일반적으로 삼위일체적 논의는 역사적인 구체성을 상실하기 쉬운데, 본회퍼는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찾는 방법으로 이 위험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ㅠㅠ 그리고 마지막 인용문 "무시간적 영원 속에 있는......."은 본회퍼의 기독론적
강조점을 잘 보여주는 주장이라는군요. 즉 본회퍼에게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인간의 역사에 현존함으로 그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본회퍼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세 가지 양식으로 이해합니다. "말씀", "성례", "공동체"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 세 가지 양식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존재한다.
본회퍼가 말하는 말씀은 상호간의 대화성에 초점이 주어집니다. 대화는 혼자의 독백이
아니고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데요. 그의 말을 들어보죠.
 
관념으로서의 말씀이 혼자서 존재할 수 있음에 반하여 대화로서의 말씀은 두 인격자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대화는 무시간적인 것이 아니고 역사 안에서 일어난다......
대화로서의 말씀의 본질은 하나의 공동체를 요구한다......진리는 그 자체 속에서 자체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 두 인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것이다. 진리는
공동체 속에서만 생겨난다
.
 
말씀으로서 그리스도는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인격적 만남이라는 상호성을 통해서
구체화 된다는군요. 그러니까 관념과 사변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성례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
본회퍼는 성찬을 하나의 상징이나 의식으로 보지 않고 말씀을 통해 성화되는 격렬한
행위로 보았습니다. 즉 성례 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은 말씀이며,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가 대리하지 않고 친히 현존하신다는 뜻입니다.
 
셋째,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성례에 현존하는 것처럼 공동체 안에 현존한다는 의미 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가 공동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로고스가 시간과 공간 속에 뻗어 들어와 공동체로
존재하게 되었고 또 공동체 안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회퍼는 공동체를 역사
속에서 승천과 재림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의 단 하나의 형태로 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공동체는 계시의 말씀을 받는 그릇 정도가 아니고 공동체 자체가 계시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죠.
 
말씀, 성례, 공동체로써 구체적 역사 속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본회퍼는 교리 속의 예수, 사변적인 예수, 구체적인 삶의 정황과 역사를 떠난 예수에게는
관심이 없다
. 본회퍼의 관심은 기독론에서도 구체적인 정황 속에 있는 나에게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현재성'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2) 변증법적 긴장 속의 그리스도 : pro me & extra nos
 
[본회퍼는 그의 기독론을 철저히 그리스도가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 그는 그리스도는 철저히 나를 위한 그리스도(pro me)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회퍼가 철저히 추구하고 의미를 찾는 나를 위한 그리스도는 나의
실존 속에 함몰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 나를 위한 그리스도는 동시에 '우리를 넘어서는'
(extra nos)
그리스도이다. 본회퍼의 기독론의 두 번째 특징은 나를 위한 그리스도와
우리를 넘어서는 그리스도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에 있다
.]
 
'변증법적' 이라는 말이 자칫 언어유희처럼 들릴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어렵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합니다.^^
 
본회퍼에게 그리스도는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만나집니다.(그의 기독론에서 예수를
만나는 장으로서 '역사''구체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본회퍼는 신을 인간의 내면이든 종교의 영역이든 인위적인
특정한 영역에 두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주인으로 이 세상에 계신다."는 의미입니다.(본회퍼에게 그리스도는
일상생활이라는 역사적 현장 속에서 만나져야 하는 자라는 뜻이다.)
 
전형적인 실존주의 신학처럼 보여 집니다. 실재로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긴장해야 합니다. 그 어려운 변증법적 설명이 이제부터 들어갑니다.
 
[그러나 본회퍼의 기독론은 실존주의적으로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회퍼의 기독론에서
나를 위한 그리스도는 우리를 넘어서
(extra nos)는 그리스도에 의해 변증법적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 이 점에서 본회퍼의 신학은 실존적이고 내재적인 범주를 넘어선다.]
 
그의 말을 들어보죠.
 
그리스도인이 살고 죽는 것은 자신 속에 있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 그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정된다
. 종교 개혁가들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 "우리의 의()'남의 의'(alien righteousness), 말하자면 '우리 밖에서'
(extra nos)
온 의이다......그는 자기 밖을 향해서, 그에게 들려오는 말씀을 향해 서 있다."......
만약 그대의 구원과 의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결코 자신을 가리킬 수 없다.
 
본회퍼에게 '그리스도인'은 구원과 의를 자신의 결단에 의해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나를 위한(pro me) 그리스도라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요소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리 밖의(extra nos) 초월적 요소가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죠. -_-;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본회퍼 기독론의 반복적인 주제는 "오늘 예수는 누구인가? 라는
현재에 대한 질문이지만, 답변은 현재에서 오지 않고, 현재를 넘어서는 곳에서 온다. 입니다.
 
[본회퍼의 기독론에서 'pro me'()'extra nos'()의 그리스도를 통해 오히려 ''
그리스도를 따라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것
()으로 나타난다.]
 
저자도 복잡하다고 계속 언급하기 때문에 우습지만 간단하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인간의 실존적 질문(당신은 나에게 누구시오?) =>
그리스도의 반문(너는 누구냐?) =>
그리스도의 반문에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절감하고 좌절한다. =>
자신의 한계(현실)를 직시한 인간은 결국 초월적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간다. =>
자신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간다. =>
그리스도는 나에게 결단을 요청하고 내가 서 있는 구체적인 장소(역사)에서 자신에 대해 고백하기를 요청한다. =>
우리는 이 요청을 피할 수 없다. =>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 구체적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된다.
 
머리가 아파오네요.^^ 다음은 3) '중심이신 그리스도'는 호외로 올리겠습니다.

profile

[레벨:18]天命

May 29, 2013

읽을 때는 무언가 그런 것 같다가도
막상 놓고 보면 뭘 말하는 건지, 정말 띠-ㅇㅇ 해 옵니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안 갈 수도 없고...

그동안 현대신학을 자꾸 기피해 가면서 편한 길만 가려다 보니
우리에게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 같습니다.
profile

[레벨:21]小木

May 31, 2013

옳으신 말씀입니다. 특히나 저는 더 그렇습니다. ^^
profile

[레벨:4]아하브

May 31, 2013

 마지막 줄은 외람되지만 저의 신앙 여정과 조금 유사한 것 같네요... 다만 저는

자신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간다. =>
그리스도는 나에게 결단을 요청하고 내가 서 있는 구체적인 장소(역사)에서 자신에 대해 고백하기를 요청한다. =>

이 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profile

[레벨:21]小木

May 31, 2013

 외람 되다뇨~~^^ 
하나님의 섭리 가은데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사는 것이 그 분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ㅎㅎ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극히 보통 사람이라 좋습니다. 
profile

[레벨:33]우디

June 05, 2013

본박사님과 판박사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건가요?


<본>===============================================================================
    위 내용 중에 아래 다시 적은 내용을 다른데서 본 기억이 어렴풋!
<본>-------------------------------------------------------------------------------

    "무시간적 영원 속에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
  
                                              
    본회퍼에게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인간의 역사에 현존함으로 그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본>===============================================================================

 


<판>===============================================================================
    5월19일자 주보에 인쇄된 <사도신경해설 제55강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2)>
    에 아래의 내용이 있었군요.
<판>-------------------------------------------------------------------------------

                                                
...
쏼라쏼라1............................
                                                 

    "이런 주장은 영원(eternity)을,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하나님을 무시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시간 속에서 발생하거나 혹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영원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된다."
                                                 

    * 무시간적으로(zeitlos)라는 말은 성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헬라적인 개념이다.
    판넨베르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영원을 이렇게 무시간적, 비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의 영원은 현재의 시간에 의존적이며 현재의 시간은 하나님의
    영원을 선취하고 있다.
                                                 
    ...쏼라쏼라2.............................
                                                 

    "영원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부합하지 않는다."                                                 
    ...쏼라쏼라3.............................
                                                 

    "이와 달리 기독교는 이 시간적 역사가 하나님에게도 결정적으로 의미 있다는 신앙에 근거한다.
    따라서 시간과 영원의 결탁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이 세계의 미래에 의존적이라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판>===============================================================================
 

 

 

profile

[레벨:21]小木

June 07, 2013

 네~ 저도 비슷하게 이해 했습니다 ~^^ 초월과 내재의 변증법적 긴장감.... 이게 어렵단 말이죠~~ㅠㅠ
profile

[레벨:18]天命

June 06, 2013

역시 칼같이 명석한 우디님의 안목, 
멍청하니 읽기만 했던 머리에 한 줄기 빛을 던지는 듯합니다. 

시간적 역사가 하나님에게도 결정적으로 의미 있다고 본
본회퍼의 신앙이 그의 순교로 나타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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