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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17

조회 수 5101 추천 수 0 2013.06.11 19:29:26
현대신학의 흐름17
 
오늘은 본회퍼 신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5'비종교화'를 연재하겠습니다. 위대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점 하나 있다면 아마도 '고민'(고뇌)일 것입니다. 신학자의 관점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재에 대한 고민이죠. 이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부단한 공부와
사유의 결과로 위대한 신학이 탄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회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고민은 세속화된 세상에서 교회, 신앙, 우리의 고백, 윤리, 그리스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는 데 있었다고 합니다.
 
[성인된 세상에서 이제 신은 어디에 있는가? 현대인의 자율에 의해 밀려난 신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하나의 세상에 대해 두 다른
해석
, 곧 세상적 해석과 종교적 해석의 분열 현상을 계속 강요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본회퍼에게는 기독교의 비종교적 해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따라가 보겠습니다.
 
 
1) 현대세계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
 
본회퍼의 비종교화의 의도와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세계의 변화에 대해
기독교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게 우선입니다. 본회퍼의 표현대로 하자면
"기독교의 재고품 조사"(A Stocktaking of Christianity)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위기에 처한
기독교의 현주소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앞서 바르트나 그 이전 부분을 다루면서
나름 기독교가 대응(변증)했던 모습이 있었습니다만,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고
배웠습니다. 이 부분을 본회퍼의 견해,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취약 부분에 신을 두려는 시도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제 더 이상 신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지자 교회는 인간의 한계에
부닥치며 드러나는 약한 부분에서 신을 증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통,
좌절, 죄의식, 질병, 죽음 등이죠.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시도는 현대세계의 자율성과
세계관을 그냥 유지한 채 하나님을 그 틈새에 두려는 시도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본회퍼는 어떻게 보았을까요?
 
[본회퍼는 교회의 이러한 변증적 시도를 비판한다. 그는 인간의 취약 부분에 교묘히
신을 두려는 시도를 목회적 속임수라고 보았다
. 이런 목회자는 사람의 삶에서 약점과
한계를 끄집어내기 위해 뒷조사를 하고 냄새를 맡고 다니는 행위와 같다
......본회퍼는
인간을 약함의 기초위에 두고 죄인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 예수는 먼저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았고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 예수는 오히려
인간을 죄로부터 불러냈다
.]
 
이러한 기독교의 시도에 대한 본회퍼의 다른 표현으로는 "반쪽짜리 하나님" 이라고도
하는데요. 본회퍼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은 온전한 하나님,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 이 역사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이지. 인간의 취약 부분에 기생(냄새나는 목회자들의 행위)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본회퍼의 은혜와 죄에 대한 신학적
사고입니다. 예수의 선포가 죄에 대한 인식보다 선행하는 것. 즉 은혜가 행위에 앞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둘째, 기독교가 시도한 변증은 하나님을 '해결의 신'으로 본 것이다.
 
현대사회는 고대사회에 비해 안정된 복지와 사회구조를 갖고 비교적 잘 유지돼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풍족하게 그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죠. 항상 소외계층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풍족하다가도 궁핍해 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때 신은 인간이 곤궁을 피해 나가는 해결자로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은 현재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본회퍼는 이런 신을 '기계장치의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인간의 사적(私的)이고 내면적인 영역에 두려는 시도이다.
 
이건 말 그대로 입니다. 성인된 세계가 하나님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게 되자, 교회는 신을 개인적인 영역에 위치시키려 한 것이죠. 결국 기독교는
공적인 영역에서 자리를 잃은 신을 개인의 내적인 경험의 차원에 위치시키려 시도한
것입니다. 본회퍼의 말을 들어보시죠.
 
"세상과 인간 삶의 공적인 영역에서부터 하나님을 배제한 결과 '개인적'이고, '내면적'이고,
'
사적'인 영역에서 계속 신을 확보하려고 꾀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아직 사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곳에 있어서는 쉽사리 신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본회퍼는 이러한 시도의 근저에, 인간을 영과 육으로 분리해서 이해하려는 잘못된
인간론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본회퍼는 그의 창조와 타락에서 인간의 창조를
해석하면서 인간을 통전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영과 육이 따로 있어서 어느 순간에 인간이 영을 '가지는'(has) 것이 아니고,
인간 자체가 영이며 육 '이다'(is)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서 영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창조주인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실존을 이탈하는 자이다
."
 
본회퍼는 영과 육을 구별하지도 않았고, 차별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내면과 영에 있다는 생각도 거부했습니다. 나아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보고 신을 여기에 두려는 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살펴본 기독교의 모든 변증적 시도는 정당하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위의 세 가지 변증에 대해 본회퍼는 "첫째로 무의미하고, 둘째로 저열하고, 셋째로 비기독교적"
이라고 일축합니다. 본회퍼의 세 미디 말을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무의미하다" = 이미 성인된 세계를 과거 중세로 돌이킬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율성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현재에 도달했기
때문에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속화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저열하다" = 인간의 약점과 삶의 모순, 인간의 죄의식을 들춰내고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본회퍼는 이런 목회자를 비열하고 가장 악질적인 대중 저널리스트와 같다고 비판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이런 말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비기독교적이다" = 이 의미는 그리스도를 인간의 어떤 '종교성'으로 왜곡시킨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본회퍼는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종교적
감정과 그리스도의 계시를 엄격히 구별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신을
끌어들이는 행위를 '종교적'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와 모든 종교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의 종교성은 인간이 곤궁에
빠졌을 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힘에 호소하도록 인간을 가르친다
. 이 하나님은 기계장치의
신이다
. 성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무력과 고난을 가르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교회의 이러한 잘못된 시도는 기독교의 신뢰성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성서의 계시를 인간의 종교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이야기합니다.
 
 
2) 비종교화의 목적과 타당성
 
저자는 본회퍼의 '비종교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본회퍼는 당시 기독교가 받아들이기 힘든 혁명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가 즐겨
사용한 용어들
, 즉 무종교의 시대,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 신 없이 신 앞에, 마치 하나님 없는
것 같이
, 성인된 세상, 세상적 그리스도교 등과 같은 용어는 대부분 비종교화와 연관된
용어들이다
.......본회퍼는 '종교'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당시 기독교와 서구 문화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 본회퍼의 종교에 대한 비판은 당시 기독교와 서구문화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보아야 한다
. 즉 그의 종교비판은 성서의 계시를 종교로 만든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전락시킨 서구문화에 대한 비판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
 
여기서 간단히 본회퍼가 비종교화를 시도할 때 염두에 둔 종교에 대한 특징 다섯 가지를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종교는 부분적이다. = 종교는 인간 삶의 취약 부분이나 특정한 부분에 작용한다.
둘째, 종교는 인간의 필요에 종속된다. = 기계장치의 신, 해결사의 신
셋째, 종교는 내면적이고 사적(私的)인 성격으로 규정된다. = 공적인 면에서의 타당성 상실
넷째, 종교는 본질적으로 이원론적이다. = 그리스도가 주인인 하나의 세계
다섯째, 종교는 인간의 삶과 역사를 떠나 있다. = 그리스도의 현존은 구체적인 삶과 역사
속이다. 그러나 종교의 신은 역사를 떠나 있으며, 인간의 고난과 역사의 고통을 외면한다.
 
본회퍼의 비종교화는 종교가 가지는 부정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많이들 오해하는
것처럼 기독교의 예배, 기도, 혹은 계시를 비종교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본회퍼가
'종교 없는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라고 할 때 예배나 영성 없는 기독교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본회퍼는 감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예배를 인도했고 처형의 순간에도
기도로서 자신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비종교화의 목적
 
본회퍼의 말을 직접 읽는 게 낫겠습니다.
 
[기독교가 무엇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것인 신학적인 말이건, 신앙적인 말이건
말에 의해서 논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 마찬가지로 내면성과 양심의 시대 즉 일반적인
종교의 시대도 지나갔다
. 우리들은 완전히 무종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가 비종교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현대세계가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무종교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본회퍼는 종교는 복음을
감싸고 있는 의복, 표현형식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잠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 시대의 종교 혹은 종교성이 복음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종교를 비종교화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현대세계는 의복정도 바꿔서 되는 시대가 아니라, 아예 그것 자체도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내밀한 장소에 논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와 인간의 성인성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 인간을 그의
세속성으로 인해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장 강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대결시키는
것이고
, 모든 목회자들의 술책을 포기하고 정신 치료법이나 실존철학을 신의 개척자로
보지 않는 일이다
......그러면 이제 성서적 개념의 세속적 해석에 관해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본회퍼는 기독교를 잘못된 종교라는 형식에 두는 것보다 비종교화를 할 때 성서의
하나님이 노출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비종교화를 통해 하나님이 현대세계의
'무종교인'들에게도 신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죠. 그의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와
성서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성인된 세계, 무신성의 시대에 그리스도,
예배와 기도의 의미를 고민하는 가운데 태어난 것입니다.
 
[본회퍼의 비종교화의 과제는 무종교 시대에 하나님을 이 역사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은 세속화 시대에 기독교를 의미 있게 해석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 본회퍼는 비종교화를 통해 기독교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믿었다. 그는
비종교화를 통해 종교적 영역과 세상의 구별을 극복하려 했다
. 성숙한 세상 속에서
종교라는 작은 영역에 신을 두려는 것이 아니고
, 세상과 종교의 이원화를 극복함으로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되도록 시도했다
.......그는 시대에 맞는 종교라는 ''
바꾸어 보려고 한 것이 아니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이제 '종교'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에 왔다고 본 것이다
.]
 
* 참고
본회퍼의 비종교화는 불트만의 비신화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트만은 성서 속에
나오는 세계관과 신화적 표현을 '재해석' 하려 했다. 하지만, 본회퍼의 비종교화는 불트만의
실존적 해석보다 훨씬 더 과격한 것으로서, 성의 영역과 속의 영역 사이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이다. 본회퍼는 이 방법만이 현대세계에서 신을 의미 있게 논할 수 있다고 보았다.
본회퍼는 불트만이 시도하는 비신화화로는 기독교가 직면한 현대세계에서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타당성
 
본회퍼는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하나의
세계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본회퍼에게 성과 속의 구별을 없애고 세상을 하나의 세계로
보는 것은 타당한 일이 되겠죠. 그는 종교가 아니라 삶이, 즉 삶 자체가 신을 만나는
매개가 된다고 믿었으며, 신을 만나는 장()이 교회라는 종교적 영역이 아니라 역사라는
 구체적 영역이라고 믿었습니다.
 
 
상당히 긴 분량이었습니다. 다음은 6'신 없이 신 앞에'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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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天命

June 12, 2013

(마지막 부분)
본회퍼 그는 종교가 아니라 삶이, 즉 삶 자체가 신을 만나는 매개가 된다고 믿었으며,
신을 만나는 장(場)이 교회라는 종교적 영역이 아니라 역사라는 구체적 영역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현실에서의 일관된 치열한 삶이 이러한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군요 !
"나를 따르라"에서도 이 동일한 사상이 묻어날 것이 확실시됩니다.
본회퍼가 죽은 39에 나는 기독교 세례를 받았습니다만,
나는 뭐하느라 70이 넘도록 살았는지 은근히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살았기에 본회퍼를 만났고 판넨베르크, 다비아, 샘터를
운명적으로 만난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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