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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기독교의 윤리적 지평)

 

 

인간 본질로서의 성

 

성윤리에 대한 기독교인의 입장도 역시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청교도적인

금욕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고대 엣세네파, 중세 수도원, 그리고 정신적인 가치에 치중한

신비주의 전통에 기초해서 육체적인 즐거움을 탐하는 것은 죄라고 생각한다. 이런 금욕적

전통은 기독교만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소위 고등종교라 일컬어지는 종교들의 일반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교나 이슬람교는 기독교보다 훨씬 금욕적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일정부분 유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인간은 자신의 식욕과 성욕을 억제함으로써 영적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금욕적

생활 태도가 인간의 인간됨을 유지시켜 왔으며, 많은 예술과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절제와 금욕은 인류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상당수의 문명이 패망하게 된 원인이 무절제

하게 먹고, 소비하고, 성적 쾌락을 탐닉한 데 있다는 게 역사가들의 진단이다.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가 일반적이었으며, 폼페이나 로마의 검투문화와 매춘, 귀족들의 무절제한 연회,

그리고 매춘을 부업으로 했던 그리스 신전의 여사제들. 이런 게 바로 인간 문명이다.

 

종교는 이러한 세속의 쾌락적 열정에 맞서 철저한 금욕과 고행을 실행함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했다. 기독교 역시 로마제국의 고착화 된 성욕 중심적, 남근 중심적 윤리관과 맞서

투쟁함으로써 인류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실제로 초대교회 당시 남자들의 무분별한

성도착적 행실에 실망해서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기독교를 선택한 로마 귀족 여성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독교의 금욕적 성윤리는 가나안 문화를 극복한 유대교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종교의 금욕적인 가르침이 아무리 강력하게 선포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성욕은 조금도 억제되지 않았다. 과거보다 지금이 더 지나치지도 않고, 그 반대도 역시

아니다. 이 사실에 시사하는 바는 성은 인간의 본질이고, 빼도 박도 못 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은 성윤리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만 하는 걸까? 성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컨대 여성들은 짧은 치마나 배꼽티를

입어서는 안 된다거나, 혼전순결을 지켜야한다는 식의 기준을 설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동성애는

정상적인 성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죄라거나 피임을 통한 산아제한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반하기

때문에 죄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낙태는 어떤 경우에도 불가하다거나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에만 가능하다거나 아니면 태아가 2개월째까지는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신학적, 생리적, 사회적 담론들이

종합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은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실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욕과 쾌락

 

기독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쾌락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금욕적인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쾌락적 요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쾌락이 자신과 남을

파괴하는 쪽으로 작용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폭력, 성매수, 도박, 마약, 지나친 사치,

반사회적 및 반인간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쾌락 등은 우리의 생명을 파괴한다. 그러나 모든

쾌락이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쾌락과 금욕을 이원론적으로 대립시켜서 판단할 수 없다.

 

쾌락 자체는 가치론적으로 평가될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인간적 특성이다.

사실 쾌락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기도 하다. 생명이 충만해지는 순간에

얻어지는 생명체의 즐거움이다. 따라서 이 쾌락에 대한 감각이 없거나 무디다면 아무리 고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정상은 아니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성충동을 어떤 상황에서도 억제하지

못해서 사회적으로 폭력적인 결과를 일으키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불감증도 분명히 질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극단적인 면에서 볼 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즉 최소한 종족 보존을 위해서

불감증보다는 성폭력이 희망적이다. 성서시대에도 일반적이었던 근친상간, 수간, 불륜, 매매춘 등을

비롯한 모든 파괴적이고 왜곡된 성이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인간종이 생존해 보려는 쾌락 지향성을 드러내주는 현상이었다. 따라서 그런 행위들을 무조건

근절시켜야만할,(그렇게 될 리도 없지만) 악의 뿌리라기보다는 생명지향적으로 교정되어야 할

인간 현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23백 년 전 에피큐로스가 인생의 목적은 쾌락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쾌락지향적이다. 종교 생활도 역시 영적인 즐거움, 행복, 쾌락이 아닌가. 목사, 신부, 승려들도

그런 쾌락이 없으면 그 일을 수행해 나가기 힘들다. 예술활동, 문학활동, 사회사업과 봉사, 정치,

교육, 스포츠도 역시 그것을 통해서 쾌락을 얻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한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신 감각적 쾌락을 소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인생을 우울하게 생각하고

감각적 즐거움을 죄악시하고,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 때문에 매사에 부담을 느끼고 산다면

불행한 일이다. 참된 쾌락은 반드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며 돈이 많이 들어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하다. 그저 삶의 태도를 바꾸기만 하면 된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도

하나님이 기르고 입히시는데 사람들이야 두말할 것 있겠느냐고 말씀하셨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일에 열심이었던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왠지 심각할 것만 같은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했다. 새로운 눈으로(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삶은 즐거움이고 그 삶은 우리에게 쾌락을 준다. 이 깨달음이 곧 영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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