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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기독교의 윤리적 지평)

 

 

청빈과 소유

 

물물교환의 편리를 위해서 생겨난 돈이 이제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생산한 물건보다 훨씬

높은 자리를 확보하였다. 특히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인류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그 중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원초적인, 혹은

비극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속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 활동도 역시 돈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실정이니까 돈의 위력을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종교는 이러한 재물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영적인 능력에 의존하려는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도 근본적으로는 물질적 청빈에 기초하고 있다. 성서의 여러 곳에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고, 교회 역사에서

성자라 불리는 위인들은 한 결 같이 재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물질을 적대시하고 순전히 정신적인 것만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걸까?

기독교인은 재물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포기하고 살아야만 하는가? 현실 세계에서는 그럴

수도 없으려니와 성서가 그렇게 말하지도 않는다. 성서는 부자를 감싸고돌지 않지만 무조건

부정하다고 매도하지도 않으며,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지는 않지만 그 가난을 예찬하지도

않는다. 성서는 재물에 대해서 어떤 선입관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재물은 사물일 뿐이며 그것을 다루는 인간만이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고, 예수님도 무소유나 청빈 예찬론자는 아니었다.

삶 자체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분의 활동 범위나 가르침의 소재들은 늘

결혼식, 노동시장, 농사, 목축 등, 인간의 일상사와 깊이 연관되어있다.

 

몰락해 버린 현실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자본주의까지 비판받아야만 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평화와 정의의 질서라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경쟁과 자본제라는 자체 논리에 근거해서만

인간 사회를 견인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본주의에서 하나님 나라 윤리를 지향해야

할 우리 기독교인의 투쟁은 참으로 고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력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주인비유는 이 지향성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경쟁력대로가 아니라 생존의 필요에 따라 일당이 지급되는 경제 질서가 바로 하나님 나라 윤리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잣대로 본다면 이런 주인은 당장에 기업을 말아먹을 무능한 사업가일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현실에 묶여 있는 기독교는 이 자본주의에 영적인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이 작업은 곧 물질의 영성화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정의를 곧추 세우는 일이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듯이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이러한 정의가 숨 쉴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기세로 이 사회 안에 경제정의를 구현시켜

나가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자본제적 가치체제와 전면전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품논리,

자본 메시아니즘과의 싸움을 가볍게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것들은

결국 인간을 구원할 능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12:15)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믿는다면 기독교인들부터 오늘의 물신적

광기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겠다.

 

 

유기론적 생명윤리

 

마지막으로 기독교 윤리의 거대담론으로서 유기론적 생명윤리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자.

기독교 신앙으로 사는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이 태도는 단순히 종교적 질서에 순응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체의 선과 행복으로부터 시작해서 공동체, 국가, 세계, 모든 동식물과의

유기적 지평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 길 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선이라 하더라도 다른

쪽에서는 악일 수 있고, 이쪽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저쪽에서는 죽이는 일일 수도

있는 게 지구생명의 이치이기 때문에 그 유기적 관계를 전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기업을 밀어내고 유럽시장을 석권한다면 우리에게는 행복한 일인지

모르지만 중국인들에게는 불행이다. 잘 생각해 보자.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의 한 사람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과 미국인 한 사람이 소비하는 양을 비교해 보면 미국인들이 기초하고

있는 삶 자체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구적 차원에서 파키스탄 사람들이

훨씬 윤리적이다.

 

궁극적으로 볼 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이 과연 윤리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의문스럽다. 인간을 제외하고 이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생태계의 메커니즘을 끊어내면서까지 자기 종족을 늘리거나 생산하고 소비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취미생활로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생산을 위해서 생태계의 숨을 끊어 버린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다. 인간만 이 땅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그 어떤 것도 배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윤리는 다른 게 아니라 인간의 인간다움을 살려내는 일인 동시에 모든 생명체의 생명다움을

유기적으로 일궈내는 작업이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은 이 일에 신앙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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