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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하나님에 대한 물음)

 

 

하나님의 불변성

 

앞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인식론에서 기독교는 고정불변한 하나님 상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유대인들의 전승을 이어받아 오늘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새롭게 하나님을 인식해 나가고 있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반론이 가능해진다. 하나님은 절대 불변의 존재자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에

따라서 변하는가? 하나님을 인식론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면 하나님의 불변성이라는 전통적 이해에서

무언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분명히 전통적인 면에서 볼 때 절대적인 존재이며, 인간과 차원을 달리하는 유일신인 하나님은 고정불변

하는 실체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약간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 범주에

따라서 불변일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다. 종말에 이르기까지 전체 역사를 아우르는 차원에서는

불변이겠지만 역사 과정에서는 가변이라는 말이다. 일상적 예를 들자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불변이지만

자녀가 자라면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상은 늘 변한다. 이런 예가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인식간계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암시는 하고 있다.

 

하나님이 고정불변하다는 말을 기계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 분은 바람처럼 자유로우신

분이다. 그 어떤 것에도 구속이나 영향 받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일한다. 그렇게 하나님은 무한히

변화로우면서 불변하는 분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우선, 이에

대한 완전한 대답은 없다. 물리과학의 발전으로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붙잡았던, 실체론적 형이상학에

근거한 하나님 이해는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따라서 기독교 전통이 말하고 있는 근본을 오늘의 관점에서

되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여기서는 일단 우리의 현실과 교회생활과의 연관에서 적절할 뿐만 아니라

현대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신학자 본훼퍼의 비종교화 개념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도록 하자.

 

 

비종교적 해석

 

디트리히 본훼퍼는 먼저 성숙한 이 시대에 여전히 미숙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은 죽음 이후의 심판이 무서워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불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위협한다면 아무도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 집단을 오히려 무시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신자들에게 각인시킨 하나님 상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폭군이고, 다른 하나는 자동응답기

상이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무서워하듯이 하나님의 말을 잘 들으면 축복을 받고 듣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식의 가르침은 최소한 계몽된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또한 하나님은 신자들이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응답기 식으로 들어주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는 바알종교의 신이며, 자본주의의 신과 다를 게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초보적인 수준일지라도 인식의 계몽이 필요하다. 계몽은 삶에

대한 진지성이다. 계몽이 바로 구원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계몽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은총의 세계에

도달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이 요청된다. 오늘 날 기독교인의 이미지는 어떤가? 비현실적인 몽상가

이거나 종교 이기주의자, 아니면 청교도적 도덕주의자 쯤으로 비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서야 어디

세계 구원을 설파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본훼퍼는 성숙한 시대에 걸 맞는 기독교의 변화를,

기독교의 비종교화를 주장했다.

 

기독교의 비종교화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우선 종교화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종교란, 죽음이나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기복적인 관심 때문에 시작된다. 종교일반의 현상을

보면 타당한 말이다. 기독교에서도 믿고 죽어서 천당 가야지라거나 예수 잘 믿으면 건강해지고

사업도 잘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종교적 관심들이 피안적 도피주의와 세속적인 기대심을 교묘하게

착종시키고 있다. 인간의 종교심리를 충족시키는 종교현상을 종교화라 할 수 있겠다.

 

본훼퍼의 비종교화 개념에서 볼 때 기독교는 바로 이 세상, 차안, 구체적 인간 삶, 그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구원을 선포해야 한다. ‘신 없이 신 앞에라는 말로 압축되는 그의 비종교화 개념은

기독교가 계몽 이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예언자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그 답은

이 세상성(Weltlichkeit)이다. 지난날에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법도 초월적이고 신비적이어서 기도를

많이 한다거나 어떤 초월적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그것을 읽는다.

본훼퍼나 칼 바르트 이후로 세속화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생태신학 등 여러

갈래의 신학운동이 이 세상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신학이 이 세상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중세기 이전처럼 교회가 세속 질서에 대한 어떤 기득권을

회복하자는 게 아니라 성속 이원론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세상은 악하고 타락했고, 그래서

 멸망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거룩한 영이 함께 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래서 구원이 임해야할

대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교회만 거룩하고 세상은 속된 게 아니라, 교회도 속될

수 있고 반대로 세상이 거룩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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