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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십자가와 부활)

조회 수 2896 추천 수 0 2014.11.11 12:46:00

기독교를 말한다.(십자가와 부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는 일정한 로마 형 집행 수순에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렸다. 로마인은 어떤 경우에도 이런 방법으로 죽을 수 없게 되어 있는 십자가형은

주로 반로마 투쟁을 하던 국사범들에게 실행되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남자가 완전히 생명을

잃게 되는 시간이 대충 일주일 정도 걸리는 데 그 기간 동안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된다. 예수는 의외로 빨리 여섯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그 숨 막히는 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장면이

복음서에 묘사되어 있다. 예수의 옷을 취하기 위한 로마 군사들의 제비뽑기가 그것인데, 네 복음서

모두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27:35; 15:24; 23:34; 19:23) 한 쪽은 몸부림치며 죽음과

투쟁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여흥에 빠져 있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는데

십자가 발밑에 앉아있는 자들은 모든 것을 잃는 자의 작은 것마저 빼앗는다. 이것보다 더한

코미디가 있을 수 없다. 이게 바로 인류의 역사지만.

 

십자가상에 매달려 있던 여섯 시간 동안 예수는 소위 가상칠언을 남긴다. 각기 다른 국면에서

말씀하신 이 일곱 구절 중에서 특히 마태와 마가복음에 동시에 기록되어 있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우리에게 십자가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분명하게 전해준다 하겠다. 인류 구원을 완성시킬 그 원대하고

위대한 사역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가 하필이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심정을 토로했을까?

아무리 육신의 고통이 못 견딜 정도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존재 근거가 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으로부터 유기가 사실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그

신학적 의미를 찾아낼 수는 있다. 십자가 사건은 어느 누구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어떤 인간의

도움이 와 닿을 수 없는 완전한 절망의 상태, 그래서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한다. 예수는 실제로 모든 이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대정치가인 빌라도로부터, 유대의 분봉왕 헤롯에게서, 심지어는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제자들로부터.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구원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종교다.

화려한 교회 장식과 의식들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세계 안에도 여전히 이러한 버림받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의

불빛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 바로 교회가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교회 자체에 관한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심각하지도 않다. 또한 교회가 세상의 흉내를 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절망하는 그곳에 함께 있어 주는 일은 교회가 최후의 보루다. 물론 교회가 앞서 이 일을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이루실 것이다. 이게 바로 십자가 신학이다.

 

 

빈 무덤

 

우리가 복음서에서 예수의 부활 전승과 연관된 내용을 읽을 때마다 의아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제자들이 왜 예수의 부활을 예상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예수는 이미 몇 번이나 자신이 받아야

할 수난과 부활을 예고했는데도 제자들은 십자가형 앞에서 당황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은 아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빈 무덤에 대한 여자들의 증언에도, 부활한 예수의 현현을 경험한 사람의

증언에도, 그리고 제자들 스스로 무덤을 확인해보고도 그것이 부활을 가리킨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고 그 예고를 기억하지도

않았다는 게 확실하다. 왜 그랬을까? 조금 역사비평적으로 생각하면 부활 예고가 부활절 이후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적 전승일 수 있다. 복음서에 기록된 부활한 예수의 흔적이 예수의 부활을

사실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도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다만 제자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에

대한 경험을 산만하게 서술해 주고 있을 뿐이다.

 

예수의 부활, 그리고 우리가 장차 입게 될 부활의 세계는, 그 부활의 실체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이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기껏해야 다음과 같이 소극적으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부활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그런 사건과는 다르다고. 그들은

모두가 다시 죽을 몸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예수의 부활과는 전혀 다르다.

 

부활은 세계 이해의 논리에 근거한 불멸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죽은 자로부터의 보편적인 부활을

하나님이 종말에 일으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며 희망이다. 신학적 표현으로, 예수의 부활은

유대인의 묵시문학적 세계관에 기초된 궁극적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생명의

세계에 참여한다는 궁극적 희망이라고.

 

위의 신학적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하는 이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영생을 받는 것 아니냐? 부활해서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것 아니냐?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대답은 이와 같다.

 

(아무리 부활의 세계에 대한 희망이 강렬하다고 하더라도 부활한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는 요구는 신앙적인 게 못된다. 하나님이 종말에 이루게 될 그 생명의 세계를

우리가 어떤 그림으로 구체화 시킬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지금 우리가 최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세계라고 해봐야 이 지상적 삶의 확대이며 그것의 연속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온전하게 통치하게 될 세계를 우리 인간의 상상력 안에 끌어당겨

고정시키기보다는 하나님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훨씬 신앙적인 태도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열려져 있는 미래와 종말에 대한 희망에 기초해서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달린 자를

하나님으로 믿었고, 결국 그런 믿음으로 유대종교와 로마정치와 헬라문화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정신세계를 완성시켜 나갈 수 있었다.

 

 

Epilogue~~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행태를 보면(내가 경험한 사람들이 전체 중 일부이기를 바랄 뿐이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순사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진정성을 가지고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때론

겸손한 말투와 미소로 다가오지만 그 이면에는 지배자의 거만함이 서려있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심한 표현이지만 하나님 나라(?) 앞잡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씁쓸하지만 나의 판단은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일 거다.

큰 교회, 큰 교단, 큰 목사, 큰 스펙(교회전통)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큰 맹신. 모든 게 너무

확실하다. 하나님도 확실하고, 천국도 지옥도 확실하다. 심지어 천국 화장실 변기는 은으로

만들어졌다나 뭐래나~~

 

이들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예수의 외침이, 못 박힌 손과 발이 아파서 외치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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