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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세계 교회의 역사)

 

 

솔라 스크립투라 성서인가, 교회인가?

 

마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을 규정하는 잣대를 오직 성서’(Sola Scriptura)로 한정한 반면에

카톨릭은 성서만이 아니라 교회도 역시 그 기준이 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오늘도

역시 그대로 적용된다. 오직 성서인가, 아니면 성서와 교회인가. 이것이 개신교와 카톨릭의 신앙적

본질과 형태를 구별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먼저 카톨릭의 입장을 살펴보자.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의 규범을 경전인 성서만이 아니라 교회까지

포함시킨다. 개신교 신자들이 그렇게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고 있는 성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카톨릭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주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이 문제는 심각해진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 성서가 먼저 있었나, 아니면 교회가 먼저 있었나?” 4세기

후반에 정경화 작업을 마쳤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분명히 성서보다는 교회가 우월한

권위를 갖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교회생활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볼 때 성서가 모든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성서만으로 어떤 기준을 삼는다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예컨대 임신중절이나 배자복사, 생태파괴, 핵문제 같은 문제들은 성서에서 직접

다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개신교회는 아무리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전승시켜왔으며 종교 회의가 성경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경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그 성경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근거에서 이렇게 말한다. 첫째, 교회와 종교회의는 교회 역사를 통해서 적지 않은 오류를

행했기 때문에 교회를 신앙생활의 절대적 규범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말씀의 원래성이

그 근거다. 종교회의가 성경을 정경화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즉 이미 있었던

복음서와 서신들을 종교회의를 통해서 결정한 것뿐이기 때문에 모든 교회질서는 역시 성경 말씀보다

하위에 놓여야 한다는 말이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이러한 입장 차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성경의 절대화 VS 교황의 절대화이다.

문자로서의 성경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가 있으며 제도적인 교황(교회)을 절대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성경과 교회 질서가 미래로 열려진

하나님 나라에 종속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솔라 피데 믿음인가, 행위인가?

 

기독교는 사도 바울 이래로 의로움의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이유는 인간 행위가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의로워지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바울과 어거스틴의 전통에 서 있는 루터는

인간의 의로움이 오직 믿음’(Sola Fide)에 있다고 주장했다. 소위 이신칭의’(以信稱義)였다. 반면에

카톨릭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조건이 될 수 없고 인간의 행위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목회임상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자. 개신교회에서는 신자들에게 믿음만을 강조한다. 삶의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려는 신앙태도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개신교회의 이런

모습만 보면 예수의 가장 모범적인 제자가 된 것 같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다.

소위 믿음은 좋은데 행위가 없다는 말이다. 반면에 카톨릭 신자들은 종교적, 윤리적 행위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물론 개신교가 행위를, 카톨릭이 믿음을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사회봉사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행위가

인간을 참되게 변화시키는 것일까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뜻 수긍하기도 힘들다. 기독교가 기껏해야

도덕적 가치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소위 탕자의 비유로 일컬어지는 예수의 가르침을 볼 때, 큰 아들의 윤리적 근거가 존재론적인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며, 반면에 작은 아들의 비윤리적 행위가 하나님 나라에서 배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인간 변화의 기초를 어디에 두는가에 달려 있다. 존재인가, 아니면 행위인가. 사실 존재와

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사실을 두 가지 현상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사도 바울의 말(고전13:3)

야고보의 말(2:17)을 종합해 보면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개신교의 믿음 강조와 카톨릭의

행위 강조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의 의로움이 빛을 발한다고.

 

 

솔라 그라티아 은총인가, 업적인가?

 

마지막으로 다루게 될 문제는 구원의 주체에 관한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오직 은총’(Sola Gratia)만이

구원의 주체이지만, 카톨릭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업적이 함께 작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구원 받는데,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연관된다. 개신교는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으며

근본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에 구원사건에 아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능력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시각이다. 반면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신학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카톨릭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 있는 자연적 인식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서 구원사건에도 협력할 수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개신교의 입장을 계시 일원론이라고 한다면

카톨릭의 입장은 계시와 이성의 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질문해 보자. 인간은 그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이 이 땅 위에 완전한 복지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 개신교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에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카톨릭의 입장에서는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양측의 주장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역사는 지금까지 복지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천해왔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 행복에 기여해 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 인간이 무엇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 중에서

유일하게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인간을 완전히 무기력한 존재로 간주해 버린다면 그것도 역시 책임적인

자세는 되지 못한다. 아무리 인간의 역사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인간은 구원문제에서도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며,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요약하자면, 결국 개신교회는 신자 개개인의 실존적 신앙 결단과 그 경험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에

카톨릭 교회는 교회 질서와 신자의 모범적 삶에 그 무게를 둔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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