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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구약성서와 히브리즘)

 

 

구약성서는 히브리인들의 고대사이며 신약성서는 예수 공동체의 역사다. 구약의 민족사가

신약의 보편사로 확장된 셈이다. 전혀 이질적일 것만 같은 유대인의 히브리즘(Hebraism)

기독교인의 유니버셜리즘(Universalism)이 예수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이 장에서 대략적으로 기원전 10~3세기에 형성된 구약성서를 통해서 세계, 역사,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사유를 배우고, 가능하다면 그것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히브리즘(Hebraism)과 크리스차니티(Christianity)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자. 구약성서를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어준 유대인들의 경전을 그들은 그 경전에 근거해서 예수를

처형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전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어딘가 불쾌한 일이 아닐까?

고대교회로부터(마르시온) 현대에(하르낙) 이르기까지 구약을 기독교의 경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거의 한결같이 구약을 해석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론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초대교회가 구약성서를 예수의 말씀,

특히 십자가와 부활의 빛 가운데서 훨씬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유대인의 구약성서가 예수 사건을 보증해준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유대교인들과 우리 기독교인들의 메시야 개념이

전혀 다른 상태에서 유대인들의 경전을 우리의 경전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 이렇게 질문해보자.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구약성서 해석이 옳은가, 아니면 2천 년 전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의

구약성서 해석이 옳은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시오니즘에 근거해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지평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민족주의적 메시야니즘 안에서 살았으며, 또한 그런 범주 안에서 예수와

적대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예수는 민족주의적 히브리즘과는 달리 세계보편적

지평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이는 곧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해석의 패러다임이 달랐다는

말이 된다.

 

그 차이를 이렇게도 설명해보자. 유대인들에게는 민족의 생존이 종교의 핵심이었다고 한다면

예수는 하나님 나라였다고 말이다. 생존의 차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투적이며 배타적이며

 때로는 파괴적으로 행동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예수와 원시 기독교를

박해했으며, 더 오래 전에는 주변의 모든 세계와 적대적인 관계를 가졌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그들에게는 전투적으로라도 민족의 생존을 지켜내는 것이

메시야적 사명과 연관되었다. 반면에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민족을 뛰어넘는 평화와 사랑의 기준에서 행동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히브리즘과 크리스챠니티의 지평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잣대로 평가해서 한쪽 편이

다른 한쪽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를

해석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유대인들의 구약성서를 배척해서는 안 된고 반드시 읽고

배워야만 한다. 히브리즘의 영적 곡간으로서 기독교인의 신앙을 풍성하게 하는 구약성서를

초대교회가 받아들인 것은 당연하고 잘 된 선택이었다.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서

 

하나님이 흡사 인간처럼 입을 갖고 있어서 말을 하거나 손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닌데도

구약성서를 하나님의 말(언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구약성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나름대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선 계시론과의 관계로부터 시작해보자. 기독교인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연과 역사를

통해서도 계시하지만 특별히 성서를 통해서 계시한다. 즉 성서는 하나님의 계시다. 계시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자기(自己)계시라 할 때 성서가 곧 하나님인 셈이며, 이는 곧 하나님의

존재론이 성서, 말씀, 언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 성서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야라는

기독교인들의 언급은 곧 성서가 하나님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성서가 하나님의 계시이기는 하지만 계시 자체라기보다는 계시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말이다.

 

성서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혹은 계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데에 있다. 곧 성서 영감론(靈感論)이다.

성서가 다른 문서들처럼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했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소위 성서영감론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인다. 하나는 근본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입장으로서 축자영감설(기계적)이다. 이들은 성서의 일점일획까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니 완전 무결, 완전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전체 영감설(역동적)로서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낱말이나 문자 하나마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즉 성서 기자의 마음을 전체적으로 감동시켰을 뿐이고 그 이외의 문제들은

성서 기자의 책임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성서영감론 문제를 우리는 성서의 역사성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서가 역사를

초월하는가, 아니면 역사에 의존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성서가 역사를 초월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학의 학문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성서를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고자 한다. 예컨대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인식해온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구약성서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역사를, 삶의 자리를 해석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여기서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상의 차이도 생긴다. 성서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성서는

오직 성서를 통해서만,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고 하는 반면에, 역사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역사비평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성서를 다른

고대 문헌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전제하고 문헌비평을 가할 수 없다는 주장이며,

후자는 성서를 다른 고대 문헌과 같은 지평에 놓고 역사비평을 가해야만 정당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는 주장이다. 이들 두 입장은 신학사에서 항상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런 갈등이

지금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신학적 차이점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점차적으로 역사비평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대세가 잡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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