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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말한다.(신약성서와 구원의 보편성)

 

 

서신

 

신약성서에 서신 형식을 갖춘 문헌은 21편에 이른다. 이 서신을 쓰던 당시 사도들이나 사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서신이 나중에 그렇게 중요한 기독교의 경전이 되리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곧 어떤 의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 결과적으로 위대한 사건으로 변화하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문안을 묻고 교회생활이나 목회철학 같은 내용들이 포함된다.

 

복음서의 기자를 확정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바울의 서신을 제외한 대개의 서신들의

발신인을 가려낸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본문 자체가 그것을 밝히고 있지 않기도 하지만, 밝히고

있다 하더라도 사용된 용어나 문체 등이 저자의 시대와 다른 경우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의 명성에

기대어 어느 익명의 저술가가 기록한 경우가 적지 않다.

 

사도들의 기억에 의해 전승되고 편집된 자료라는 점에서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복음서가 여전히 복음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다면, 그 기독교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발생한 서신도 역시 그만한 영적 권위를 담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서신을 복음서의 조명 가운데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아무리

주도면밀하게 구원론과 칭의론을 진술하고 있다하더라도 예수의 복음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와야만 한다.

왜냐하면 서신은 예수를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목수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의 실질을 관념적으로 가릴 수 있는 염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앙을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복음서와 교리적 예수를 말하는 서신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바울과 기독교

 

우리가 사도바울이라고 하는 인물을 생각할 때 여러 면에서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는 예수의 생전에 한 번도 예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환상 가운데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으며,

그에게서 사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예수의 공생애 중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한 번도 예수를 만나지 못한 것일까? 그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도 극단적으로 예수를, 정확하게는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했는가? 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예수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가, 비록 부활한

예수를 환상 중에 만났다고 하더라도, 신약성서 중에서 최소한 10권을, 그것도 기독교 교리에 골격을 이루는

편지를 쓸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바울은 로마의 직할 식민지인 다소에서 출생한 유대계 로마 시민권자다. 그는 그 당시 로마와 헬라와

히브리 문명을 골고루 흡수한 인물로서, 그것에 기초해서 기독교의 이론적 바탕을 세계 종교적 지평으로

올려놓았다. 만약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유대교의 아류로 떨어져버릴

개연성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하나님의 행위가 어떤 한 인물에게만 의존할 리는 없겠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최소한 신약성서의 삼분의 일 이상을 우리가 읽을 수 없었을 것이며,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종교회의에서 볼 수 있듯이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 문제가 상당히 큰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다.

 

바울은 신학자였다. 그는 예수의 복음을 교리적으로 체계화시킨 인물이다. 물론 예수의 복음을 교리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때로는 복음을 관념화시켜서 지나치게 종교화될 염려가 없지는 않지만, 그런 신학 작업이

아니고서는 그 시대정신과 투쟁할 방법이 없었으며, 복음이 단순히 한 시대의 열광주의적 메시야 운동으로

끝나지 않아야 했다면 고차원의 논리적 교리화는 필연이었다. 이런 점에서 초창기 기독교 역사에서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울이 과연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점은 기독교 전반을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3:7-9)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요한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지중해의 밧모섬에 유배당한 가운데 본 환상을 극단적인 상징언어를

통해서 서술한 내용이다. 이러한 문학장르를 가리켜 묵시문학(아포칼립틱)이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의 독특한

세계이해를 바닥에 깔고 있다. 구약성서 중에서도 다니엘서, 이사야의 일부분, 스가랴, 에스겔 등이 이런 종류에

포함되고, 종말에 대해 언급하는 마태복음 24, 25장도 부분적으로 묵시문학에 속한다.

 

이러한 묵시문학이 극단적인 상징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자신들의 혁명적

세계관을 은폐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현질서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노골적인 현실언어로 표현한다면

기존의 권위가 그대로 놓아두겠는가? 오늘처럼 자유로운 사회라 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상과 그 표현의

자유가 전폭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상태인데 하물며 2천 년 전 로마시대라고 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를 현실 언어가 담을 수 없다는 한계이다. 아무리 언어가 존재론적이고 심층적이라 하더라도

종말에 대한 이해를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종말은 믿음의 세계이며, 현실 너머의 세계다. 직관의 세계이지

판사와 변호사의 경전인 육법전서 같은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세계는 결코 아니다. 요한은 자신의 환상을

하늘과 바다 속의 뿔 달린 용으로, 어린 양의 혼인잔치로 그려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2천 년이 지난 오늘 그의 글을 받아 읽는 우리는 그가 형상화시킨 상징적 언어를 통해서 그 시대의 현실을

보며 그의 희망을 살려내야 한다. 절망의 시대에 그가 희망할 수 있는 대상은 악의 나라를 단칼에 요절내고

강권적으로 새예루살렘을 끌어오는 하나님의 능력뿐이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사실은 이렇다. 요한이 말하려는 주제가 2천 년이 지난 오늘에

일어나야 할 사건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그때의 사건과 연관된다는 점이다. 요한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묵시문학적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진술하고 있을 뿐이다.

요한계시록이 그 당시의 사건에 대한 묵시문학적 상징이라 해서 오늘 우리에게 무의미한 문서라는 말은 아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시대정신 안에 숨어있는 뿔 달린 용들을, 화인 맞은 적그리스도를 수없이 보며, 그 절대 권력

밑에서 흘러나오는 절망의 소리를 듣는다. 따라서 요한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이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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