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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법을 통한 신 이해

 

보통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인들은 공간적, 탈시간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강하고, 히브리인들은

시간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탈시간화된 사유의 대표적 예를

들어 보겠다. 아리스토텔레스 <오르가논> 궤변논박에 다음과 같은 궤변이 나온다. 물론 나는

오르가논을 읽지 않았다.

 

a) 병든 사람이 나았다.

b) 나은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C) 그러므로 병든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형식적 오류는 없지만 결론은 궤변이다. 원인이 뭘까? 시간 개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이 논증에 시간개념을 삽입해 보겠다.

 

a) 어제 병든 사람이 오늘 나았다.

b) 나은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c) 그러므로 어제 병든 사람은 오늘은 건강한 사람이다.

 

똑같은 형식의 논증이지만 이젠 궤변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논리학은 이처럼

철저하게 탈시간화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파르메니데스가 시작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논리학의 전통이자 한계이며, 거기에 따라 서양문명 역시 탈시간화 된 것이라고 한다.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의미를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책 읽는 재미가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서론을 거창하게 그리스적, 히브리적 사유까지 들먹이느냐, 하겠다. 바로 신 또는

신의 속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근대 서구 지성인들이 활발한 토론을 벌이던 논제들 가운데 하나인, 사실 꼭 지성인들 뿐 만 아니라

보통 기독교인들도 객체로는 잘 아는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막상 두 가지 명제를 하나로 설명하라

하면 주저하게 되는 논제가 있다. 바로 하나님은 영원히 안식하느냐 아니면 부단히 활동하느냐?”이다.

주저하지 말고 답을 해 보시라. 쉽지 않을 것이다. 성서에 어떤 곳에는 안식하신다고, 어떤 곳에서는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우리는 보통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설명을 할 수는 있어도

이 두 가지 명제를 하나로 설명하는 데는 주저하게 된다. 이 물음에 기독교적 대답은 이렇다. “신은

영원히 안식하면서 부단히 활동하신다.” 앞서 예를 든 논제처럼 궤변이고 모순이다. 하지만, 서두를

자세히 읽은 사람이라면 이게 궤변도 모순도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에 제목으로 잡은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법을 적용해 보면 이렇다.

신은 시간 밖에서는영원히 안식하지만, ‘시간 안에서는부단히 활동하신다.” 이다.

 

모순되는 두 개념을 하나로 묶어 사용하는 이 논법을 학자들은 이중적 논법이라고 정의했다. 기독교

신학의 모든 것을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법인 이 논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개념이 그리스 철학과 히브리종교의 만남으로 형성된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특히나 신 개념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삼위일체론, 기독론이 대표적인데, 한 예를 들어보겠다.

기독교신학의 초석을 다진 히포의 감독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에서 신의 속성을 설명할 때 그는

이중적 논법을 사용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신은 성질이 없어 선하며, 양이 없어 크고, 결핍이 없어 창조적이며, 지위가 없어 통치자이며, 외관이

없어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장소를 가지 않아 어디든지 있고, 시간을 갖지 않아 영원하며, 변함이 없어

변화하게 하고, 아무 작용을 받지 않아 모든 작용을 한다.

 

아리송한 말이지만 이게 이중적 논법을 적용한 것이라 한다. , 그렇지 않아도 어거스틴은 수사학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스인들의 신 개념은 부동자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다. 움직이면 신이 아닌 것이다. 플라톤,

플로티노스, 아리스토텔레스...... 히브리인들의 신 개념은 역동적으로 생성, 작용하는 존재다.

구약성서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 두 개념의 융합으로 형성된 기독교의 신 개념은 신은 부동(존재)자이면서

 동시에 역동적으로 생성, 작용하는 분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사유, 인식했고,

히브리인들은 그렇게 체험,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히브리인들의 신 개념에

부동(존재)의 개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야훼의 어원인 하야(haya)’ 속에 존재, 생성, 작용하는

행위의 개념이 동시에 들어 있다. 그들이 이중적 논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신을 경험했다. 하지만 고대이스라엘 사람들이 경험한 야훼는 역동적으로 일하시는 분으로

대부분 표현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이 그렇다. 초기 기독교인들 역시 히브리인들이 그랬듯이

 그들의 종교적 현실 속에서 하나인 신을 불변하는 존재인 성부와 창조 활동을 하는 성자그리고

성스럽게 작용하는 성령으로 체험한 것이다. 비록 다른 언어와 그리스적 방식으로 사유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정리하겠다. 그리스적 사유나, 히브리적 사유, 기독교적 사유 속에 신은 창조주다. 창조한다는 것은

피조물들에게 본질과 존재를 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사과로 존재하게 하는 일이다. 신은 시간 밖,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시간(영원)에서는 부동자로 영원히 안식하지만, 자신을 무한한

존재의 장(field)으로 펼쳐 그 안에 창조한 만물의 시간 안에서는 부단히 생성, 작용(유지), 이끄시는

존재이다. 고로 지금도 신비한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다. 기독교적 신 개념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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