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6

기도로 신을 움직일 수 있는가 마지막

 

앞의 세 번째 글의 결론은 우리의 기도와 상관없이 신은 그의 섭리대로 창조세계를

이끌어 간다.’였다. 아퀴나스가 기도라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합당한 것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우리와 상관없이 자신의 섭리대로만 이끌어

갈 것 같으면 도대체 기도는 왜 하라 했는지 근본적으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기도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까지 교훈했는데,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 그랬을까? 이 근본적 물음에 대한

기독교적 대답을 먼저 밝히자면 이렇다.(사실 저자가 밝힌 이 대답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에 반박할 만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신의 강제적 섭리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한없이 유익하다.’

 

주일 설교에서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

원하던 응답을 받으면 받은 대로, 또 받지 못하면 받지 못한 대로 그 결과를, 자신을 향한

신의 섭리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짝 짜증이 날 수 있다. “그게 뭐냐?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지 않은가?” 이렇게 되묻고 싶을 것이다.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기도가 이루어졌든 이뤄지지 않았든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의

섭리로 확인하는 일은 기독교인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아퀴나스의 말이다.

 

신으로부터(무엇을) 획득하기 위한 기도는 기도하는 자 자신 때문에 인간에게 필요하다.

즉 그 자신이 자기의 결함을 고찰하고, 기도함으로써 얻기를 소망하는 것을 경건하게

바라도록 자기 마음을 기울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는 받기에 적합한 자가 된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기도로 신의 섭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치 욥, 하박국, 바울처럼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것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말로 자족이지, 그건

일종의 체념이 아닌가?” 더 구체적으로 반박한다면 그런 건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비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특히나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는 것 아니냐?” 여기에 뭐라 답변을 해야 하는가. 교인들의 입에 발린

말처럼 불신자들의 자족과 기독교인의 자족은 다르다. 우리는 거룩한 자족이다.”

이런 답변이 옳을까? ,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저자는 그냥 체념이라고 말한다. 거룩할 겨를도 없는 체념, 그것도 그냥 체념이 아니라

무한한 자기체념이란다. 되짚어보자. 신을 믿고 그의 섭리에 의지한다는 것은 본디

극단적 자기체념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신앙이 아닌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버려라. 내가 말하노니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버려라.

당신의 자신을 막아라. 만약 당신이 자기 자신의 자아를 내세운다면 당신은 파멸하고

말 것이다. 당신 자신으로부터 도망쳐라. 그리고 당신을 창조하신 그분께로 가라.”

 

부단한 자기체념과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신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가 자기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알리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실 극단적 체념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얻고, 더 나아가 스스로 신의 경지에 이르는

종교철학이 있다. 바로 세네카를 중심으로 한 스토아철학이다. 기독교도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고, 근대까지도 스토아철학의 영향을 완전히 벗지 못했었다. 바울이

기도해서 얻는 것이 체념과 자족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이라면 세네카의 신에게 기도해서

얻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이냐 반박할 수 있다. 타당한 반박이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위의 예수가 했던 말 중에 그 대답이 있다. 예수는 마지막에 구원

이야기한다. 구원이라는 문제에서 분명하게 갈린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과

도덕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구원은 오직 믿음과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자들이 이성적 체념을 통해 마음의 평정은 얻을지 몰라도

기독교인들이 얻는 구원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틸리히의 말이다.

 

기독교가 아무리 스토아 사상을 많이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우주적 체념을

감수하는 스토아주의와 우주적 구원을 믿는 기독교의 신앙 사이에 걸친 간격을 없이할 수는 없다.”

 

사실 이런 대답도 기독교인들의 제 논에 물대기식 주장일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신 존재, 창조, 구원, 종말 등의 큰 교리만이 아니라 기도, 찬양, 봉사 등의

기독교인들의 일상의 모습을 이야기 할 때도 궁극적으로 신앙이 아니고서는 대화나 근본적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주어진 상황을 신앙적으로

해석하든지(약간 비이성적이지만), 무한한 자기체념을 통한 평화를 얻고,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든지 비기독교인들이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리하겠다. 서두에 말했던 기도에 대한 기독교적 결론을 다시 상기해 보자.

 

신의 강제적 섭리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한없이 유익하다.’

 

바른 기도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다가도 신의 무한한 섭리를 깨닫게 되고, 바른 기도는 신을

발견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사회적거리 유지 기간 온라인예배 [레벨:24]임마누엘 2020-03-05 43189
공지 말씀예전 - 성경봉독 - 에문. 2023.12.10 file [레벨:33]우디 2018-01-09 45140
공지 서울샘터교회 휘장성화 총정리 file [7] [레벨:33]우디 2014-01-04 84130
공지 교인나눔터 게시판이 생겼습니다. [2] [레벨:10]mm 2012-02-13 196327
공지 2024년 교회력 [1] [레벨:33]우디 2011-11-26 232831
공지 서울샘터 교회 창립의 변 [123] [레벨:100]정용섭 2008-10-24 293808
806 기독교를 말한다. 두 번째 [레벨:21]小木 2014-10-14 2929
805 2014년 서울샘터교회 수련회 현수막 주문 도안 file [4] [레벨:33]우디 2014-10-13 4562
804 2014 서울샘터교회수련회안내 [레벨:12]서울샘터운영위 2014-10-10 3090
803 서울샘터교회 수련회 장소 교통편 [레벨:21]小木 2014-10-10 3707
802 기독교를 말한다 [레벨:21]小木 2014-10-08 2955
801 서울샘터 수련회 안내 [2] [레벨:12]서울샘터운영위 2014-10-06 3689
» 기도로 신을 움직일 수 있는가 마지막 [레벨:21]小木 2014-09-16 2944
799 기도로 신을 움직일 수 있는가 세 번째 [레벨:21]小木 2014-09-05 2911
798 기도로 신을 움직일 수 있는가 두 번째 [2] [레벨:21]小木 2014-08-29 3859
797 기도로 신을 움직일 수 있는가 [1] [레벨:21]小木 2014-08-26 3642
796 <명량>의 고독한 근대인 이순신 [4] [레벨:13]체호프 2014-08-20 3813
795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법을 통한 신 이해 [레벨:21]小木 2014-08-19 3039
794 예스주석성경 습득했습니다. [2] [레벨:13]체호프 2014-08-18 3724
793 신 존재에 대한 증명 두 번째! [레벨:21]小木 2014-08-12 2893
792 신 존재에 대한 증명 [레벨:21]小木 2014-08-08 3419
791 재준이에게 [2] [레벨:26]은빛그림자 2014-08-04 3785
790 결혼식 [5] [레벨:21]小木 2014-05-26 3883
789 재정부에서 알립니다. (2) [2] [레벨:63]남양주댁 2014-04-10 3969
788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 중 한 부분입니다. [레벨:26]비가오는날 2014-03-27 4086
787 무슨말인지?(2014년 수능 영어 B형 35번 문제 ) [레벨:26]비가오는날 2014-02-20 4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