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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27

조회 수 4489 추천 수 0 2013.10.02 17:15:22
 
현대신학의 흐름27
 
 
오늘은 틸리히 두 번째 절 '2. 3의 길'을 연재하겠습니다. 앞선 절에서 틸리히의 삶이
 '경계선상의 삶'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경계선상의 삶이라는 것은 어떤 두 영역의 사이를
의미합니다. 틸리히는 대립되는 두 실체 혹은 대립되는 두 영역의 조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의 신학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는 신학의 근본 목적은 두 가지가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나는 기독교의
진리를 진술하는 것이고
, 다른 하나는 이 진리를 모든 세대를 위해 해석하는 일이다.
그는 신학의 위치를 기독교 메시지와 세상 사이에 두었고, 신학의 역할을 기독교 메시지와
현 세대 사이의
'중재'로 보았다.]
 
틸리히는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중재라고 믿었습니다. '영원한 진리'
'시간적 상황'의 균형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신학의 과제는 중재이다. 중재는 그리스도인 예수에게서 현현된 진리의 영원한 기준과
다양한 질문과 실체를 인식하는 자신들의 범주를 가진 개인과 집단의 변화하는 경험
사이의 중재이다
. 만약 신학의 중재의 과제가 거부된다면 신학 자체가 거부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라는 용어 자체가 중재를 함축하는데, 즉 신(theos)이라는 신비와
로고스
(logos)라는 이해 사이의 중재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틸리히 신학의 모든 주제가 중재와 연결되고, 그의 신학 방법론인
상관관계도 일종의 중재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틸리히가 의도하는
가장 근본적인 중재는 기독교 메시지와 상황 사이의 중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틸리히는 기독교 메시지와 상황이라는 두 요소 중 어느 하나도 희생되지 않게 중재하는
것을 신학의 바른 역할로 보았다
. 따라서 틸리히의 신학에서는 기독교 메시지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
 
그렇기 때문에 틸리히는 세상, 문화, 현대인들의 가치관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메시지 선포에 사용되는 언어와 단어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분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들이 현대인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을 우려하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에게 현대인은 그냥 단순한 현대인이 아니다. 현대인은 현대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
자랐고 그 문화가 주는 가치와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다
. 따라서 현대 문화와
현대인의 가치체계와 그들의 언어와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 설교는 현대인에게 무의미하다
.
틸리히는 개신교 교회의 설교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한다.]
 
틸리히는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용어와 개념이 현대인과 대화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사용한 단어와 용어에 대한 재해석 작업을 한다.......그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존엄
, 영광, 전능, 영원, 전지 등 기본적인 개념을 재해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십자가와 부활, 중생, 칭의, 성화도 새롭게 해석한다. 인간의 원죄, 타락, , 심판뿐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일상에서 가지는 고독
, 고난, 의심, 용기 등 도 새롭게 해석한다.]
 
단순히 용어의 재해석을 넘어 틸리히는 성서의 가장 중심 개념 자체를 새롭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나라'와 같은 근본적인 개념
자체를 새롭게 합니다. 그래서 틸리히의 사상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사용하는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용어'에 이어 '상황'에 대한 이해가 틸리히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겠습니다.
해방신학이나 행동신학과 같은 상황신학이 의미하는 '상황'과 틸리히가 말하는 '상황'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물론 틸리히도 사회적 구조나 정치적 상황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틸리히에게는
사회
-정치적 환경 위에 처한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이 일차적이다.]
 
모든 신학 작업의 한 극으로서의 "상황"(situation)은 개인이나 집단이 살아가는 심리학적인
또는 사회학적인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 상황은 무엇보다 실존에 대한 그들의 해석을
표현하고 있는 과학적
, 예술적,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 형식을 의미한다.......신학이
고려해야 하는
"상황"은 실존에 대한 창조적인 해석이다.
 
틸리히의 강조점은 '인간'입니다. 사회, 경제, 역사적 구조도 중요하지만, 그 구조 속에
있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틸리히를 철학 신학자로 불릴 만큼 그는 인간의
실존이 잘 드러나 있는 예술, 문학, 철학, 미술과 같은 타학문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19,20세기 실존주의에서 상당한 통찰력을 얻습니다.
 
[틸리히는 20세기를 사는 현대인을 의미 있는 세계를 상실한 채 정신의 중심에서 나오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아를 잃어버린 존재로 이해한다
. 이 존재는 한계와 유한성
속에서 실존적 불안에 빠져 의미상실에 직면한 인간이다
. 이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가장
정확히 포착하고 인간 실존의 한계를 직접적인 주제로 삼는 것이 실존주의이다
.]
 
이처럼 틸리히의 '상황'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틸리히 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오해해서 안 되는 것은, 상황에 매료된 나머지 기독교의 메시지를 현대라는 상황에
맞게 변형하려는 것이 아니냐? 입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중재를 통해 현대인의 문제를
기독교 메시지로 답변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을 변증신학(apologetic theology)
이라고도 말합니다. 변증법적 신학과 다른 말입니다.
 
[틸리히가 사용하는 변증신학은 상황에서 나오는 질문을 기독교 메시지의 힘으로
답변하려는 신학이다
. 이런 의미에서 그의 변증신학은 "대답하는 신학"(answering theology)이라
부를 수 있다
.]
 
변증신학은 "대답하는 신학"이다. 변증신학은 영원한 메시지의 힘과 상황에 의해 마련된
수단으로
"상황" 속에 내포된 질문에 대답하는 신학이다.
 
원래 변증신학은 초대교회 이후에 신학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변증신학이 지나치게 상황에 치우쳐 항상 문제를 야기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케리그마를 강조하는 신학은 변증신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틸리히는 케리그마 신학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합니다.
 
[틸리히는 케리그마를 강조하는 신학이 말씀을 강조함으로 메시지가 상황에 빠지는 것은
막아 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본다
. 하지만 신정통주의 신학이 배타적인 초월주의를
견지함으로 메시지와 상황의 연결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
 
틸리히는 자신의 신학을 중재의 신학으로 규정합니다.
 
[틸리히는 신학이 상황에 빠지거나, 혹은 반대로 기독교 메시지만 강조하는 것을 반대한다.
틸리히는 '종합'(synthesis)을 신학의 중요한 역할로 보았다. "......'종합'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끊임없는 수고가 신학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 그들이 없었다면 전통적인 기독교는 편협하고
미신적인 종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틸리히는 잘못된 변증신학과도 다르고 케리그마의
신학과도 다르다는 점을 강조함으로 자신의 신학을
'중재의 신학'으로 규정한다. , 틸리히가
의도하는 중재의 신학은 상황이 안고 있는 물음을 메시지가 가진 대답과 연관시키려는 시도이다
.]
 
중재의 신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의 신학일까요? 틸리히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신과 인간 사이의 동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봤습니다.
앞선 논한 잘못된 변증신학과 유사한 것이죠. 반면에 바르트를 위시한 변증법적 신학은
신과 세상을 너무 멀리 분리시켰다고 분석합니다. 변증법적 신학에서는 신과 인간의 종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이 점에서 변증법적 신학을 위에서 논한 케리그마 신학의 유형으로 보면 됩니다.
 
이런 연결 속에서 현대신학의 두 주된 흐름과 비교해서 나의 신학에 대해 말하고 싶다.
주된 두 신학 중에 하나는 유럽에서는 "변증법적" 신학이라 불리고 미국에서는 "신정통주의"
라고 불리는 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에서는 "자유주의"라고 불리고 미국에서는 "인본주의"
라고 불리는 신학이다. 나의 신학은 이 두 종류의 신학의 갈등을 극복하는 신학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
 
[틸리히가 의도하는 신학의 방향은 분명히 드러났다. 틸리히가 추구하는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도 아니고 신정통주의 신학도 아니다
. 틸리히는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3의 길"(third way)을 택했다.......틸리히의 신학은 여러 의미에서
중재의 신학이다
. 기독교 메시지와 상황 사이의 중재이고, 신학과 다른 학문 사이, 계시와
이성 사이
, 영원과 시간 사이, 무한과 유한 사이, 그리고 초월과 내재 사이를 중재하려는
신학이다
. 이런 의미에서 틸리히를 중재의 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고, 그의 신학을 진정
중재의 신학이라 칭할 수 있다
. 이 중재의 신학을 펼쳐나가기 위한 방법론이 '상관관계의
방법
'이다.]
 
다음은 세 번째 절 '상관관계의 방법'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profile

[레벨:18]天命

October 02, 2013

틸리히는, 요즈음 우리가 예배 후에 공부하고 있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배타적인 초월주의를 견지함으로 메시지와 상황의 연결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하고 있군요.

현대신학의 흐름은 이렇게 앞으로 갔다 또 뒤로 갔다,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공부를 해야
뭔가가 짚이는 게 있겠다 싶네요. 

날이 갈수록 읽어야 할 것도 많고 찾아야 할 것도 무지 많아 바빠지는데
그래도 옛날 텅빈 버리로 신앙생활을 할 때 보다는 훨 행복합니다.

요약 정리 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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