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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29-2

조회 수 4448 추천 수 0 2013.11.08 16:10:08
 
현대신학의 흐름29-2
 
오늘은 '4. 존재와 궁극적 관심' / '1) 인간 : 존재와 실존' 에 이어 '2) : 궁극적 관심과
존재자체
'를 연재하겠습니다. 저와 같은 '지적 서민'(?)의 입장에서 틸리히의 신학을
따라간다는 것은 난해함으로 인한 짜증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얻는 게 있다는 것, 이것으로 위안으로 삼고 오늘도 전진합니다.
 
 
2) : 궁극적 관심과 존재자체
 
앞선 연재에서 '인간만이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물을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이죠. 이것과 연결된 것이데요. 지금부터는 틸리히가 신을 이해하는
개념들을 하나 씩 짚어가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의 심연으로 빠져 버리는 존재론적인
충격
(ontological shock)으로 자각된다. 인간은 존재의 유한성에 의해 깊은 불안을 가지게
되고
,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질문이 궁극적 관심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틸리히에게
궁극적 관심은 인간이 신에 대해 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 "인간으로
하여금 궁극적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에게 신이 된다는 것이며
, 역으로
인간은 그에게 신이 되는 것에 대해서만 궁극적 관심을 가질 수 있다
." 따라서 ''은 인간의
유한성이 안고 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며
, 인간으로 하여금 궁극적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에
대한 이름이다
.]
 
틸리히에게 신은 비존재의 위협을 극복하고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의 힘"(power of being)
이며 이 존재의 힘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불안을 이길 수 있으며 모든 존재가 참여할 수 있는
"존재의 근거"(ground of being)입니다. 또한 틸리히는 신은 비존재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
"존재자체"(being-itself)로 이야기합니다. 특히 "존재자체"라는 표현은 틸리히에게 신에 대한
표현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틸리히의 신에 대한 근본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틸리히는 인간이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신 안에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존재의 근거가 되는 존재자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죠.
 
"신에 대한 물음은 신에 대한 자각이 신에 대한 물음 속에 현재화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자각은 신에 대한 물음보다 선행한다."
 
이 점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동일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자체에
참여되어 있고, 존재자체의 힘에 의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죠. 좀 더 보태면 이렇습니다.
 
[틸리히에게 모든 존재가 신인 '존재자체'에 참여한다는 말은 모든 존재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가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이든, 의식이 있는 존재이든 자연과 사물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에게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 모든 존재가 존재자체에 참여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간은
존재자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 존재자체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비존재에 위협당하며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실존적인 불안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 실존적인 불안을 자각한
인간은 비존재가 주는 무
()의 힘을 이길 궁극적 관심에 대해 질문하게 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그에게 신이 된다
.]
 
'참여''분리'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구조입니다. 또한 틸리히는 존재의 근거인
신을 "존재의 깊이"로 표현합니다. 이는 신을 공간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으려는 의도입니다.
우리가 보통 "하늘 위에 있는 신, 보좌에 앉으신....., ~~ 안에, ~~ 밖에" 등의 표현은 공간적
표현들입니다.
 
[비존재, 죄와 죄의식, 무의미함, 죽음을 이기는 존재의 근거인 신은 공간에서 만나지는 신이
아니고 존재의 깊이로 만나지는 신이다
.]
 
틸리히가 사용하는 깊이는 실체의 차원과 근원에 대한 표현입니다.
 
[신은 이 세상 위에 존재하거나 혹은 이 세상의 근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모든 사물과
사건 안에서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실재'를 의미한다. '참으로 실재적인 것'(really real)
실체의 가장 깊은 곳을 관통한다
. 그러므로 틸리히의 신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의 존재 속에서 모든 실체의 깊이로 만나진다.]
 
틸리히를 시작할 때(경계선상의 삶), ()정통주의와 자유주의의 신(계시)관에 대한 틸리히의
입장을 잠깐 언급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정통주의는 신과 인간 사이를 너무 멀리
떨어뜨려놓았고, 자유주의는 신을 인간의 범주에 떨어뜨려 놓았다고 했습니다. 위의 글을
보면서 틸리히의 신관, 또는 계시론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신에 대한 중요한 다른 개념은 '무제약자'(the unconditional)입니다. 이는 신을 하나의
유한한 존재로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신은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는 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들에게 존재, '있음' 자체로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틸리히의 신 이해를 모두 언급한 것 같습니다. 틸리히에게 신은 존재의 근거,
존재자체, 존재의 힘, 존재의 깊이, 무제약자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신을 하나의 존재로 보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표현한 신에 대한 개념들
, '존재', '실존', '본질' 중 어떤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신의 존재는 다른 존재 곁에 혹은 다른 존재 위에 있는 하나의 실존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만약 신이 하나의 존재라면, 그는 유한성의 범주에, 특히 공간과 실체의 범주에 종속된다."
 
[신을 어떤 존재, 혹은 존재자로 보는 것은 틸리히의 신관이 극복하려는 부분이다. 틸리히는
왜 신을 존재로 보지 않는 것인가
? 틸리히는 신을 존재나 실존이 아닌 '존재자체'로 봄으로써
주객의 도식을 극복하려고 한다
. 신을 존재로 보는 것은 신을 하나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이 인간의 인식의 대상이 되면 신과 인간은 주-객 도식(subject-object pattern)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신이 하나의 존재이고 존재자체가 아니라면 신은 실체의 주체 - 객체 구조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신은 주체인 우리에게 하나의 객체가 되고, 동시에 주체인 신에게 우리는 객체가 된다.
 
이것이 신학적 유신론을 초월하려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틸리히는 현대에 와서 신이 더 이상 의미 있게 선포되지 못하고, 현대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바로 신이 주-객 도식 속의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럼 인간이
신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이 존재자체나 무제약자를 만난다는 것은 대상으로서의 어떤 존재를 '마주 대하는 것'
아니다
. 이것은 존재자체를 존재의 깊이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존재자체를 대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존재자체'를 경험하는 장소는 공간적인
곳이 아니다
. 신이라는 존재자체는 바로 나의 존재 안에서 경험되어진다.]
 
-객 도식에 빠진 신론은 결국 이원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초자연주의적 시도나 자연주의적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초자연주의적 시도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형태입니다. 세계를 여러 층으로 나눈 다음 신을 최고의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 신도 존재의 범주에 있는 하나의 유한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주의시도는 신과
우주를 동일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과 피조물 차이는 없어지고 신이 피조물과 같은 범주에서
취급되는 것이죠. 일종의 범신론이나 다신론에 빠지게 됩니다.
 
[틸리히의 신론은 존재 안에서 신을 경험하는 구조를 가짐으로써 주-객 도식의 구조를 피했다.
나아가 그는 초자연주의나 자연주의의 신관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자신의 신관을 제3의 방법
이라고 불렀다
. 틸리히는 제3의 방법이라는 자신의 신론의 성격을 "자기 초월적"(self-transcendent),
혹은 "탈아적"(ecstatic)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나중에 마지막 절의 평가를 통해 틸리히의 신관인 '존재자체'를 더 이야기 할 것입니다. 아무튼
틸리히는 전통적 유신론의 신을 포기하고, '존재자체'로 해석했습니다. 이는 신을 '존재'로 인식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도였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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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天命

November 09, 2013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현대신학이 ~

29-1, 29-2를 연속해서 읽고 났는데 머리에 남는 건 오직 마지막,
우리가 늘 '존재'라고 표현했던 신을 '존재자체'라고 표현함으로써
전통적 유신론의 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다는 그거 하나뿐입니다.

그래도 이게 어떤 횡재입니까? ^^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38]클라라

November 09, 2013

목사님,
이 쳅터는 더 흥미진진하네요. 
목사님께서 이렇게 쉽게
정리해 주시니
즈이들은 고냥 감나무 아래 눠서 
공짜 홍시 먹는 기분들어요. 진짜루..^^

틸리히가 무지무지 매력적이신 분이군요. ^^
profile

[레벨:21]小木

November 11, 2013

틸리히 책을 더 사다 읽어볼 계획입니다.
제가 누구를 평가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이분의 사상이 마음을 약간 동하게 하는군요.^^
빨리 얼굴 한 번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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