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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30-1

조회 수 4136 추천 수 0 2013.12.07 13:45:52

 

현대신학의 흐름30-1

 

오늘은 제5장 인간과 신의 상관관계 : 틸리히 / ‘5. 새로운 존재'를 연재하겠습니다.
총 세 부분으로 '죄와 타락', '그리스도로 불린 예수', '예수의 유일성' 입니다.

 

5. 새로운 존재

 

틸리히에게 모든 주요 주제의 시작은 항상 상황'입니다. 실존적 고민이죠. 현대인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절망을 경험합니다
. 그렇지만 이러한 고민은 현대인만이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
틸리히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의 유한성을 직시한 모든 인류에게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
인류에게 나타난 존재의 불안과 소외가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해 보려는 시도 또한
보편적이었습니다
. 즉 인간 존재의 불안과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
에 대한 추구도
보편적이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입니다.
틸리히에 따르면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그 기원에서 기독교와 유대교를 넘어선다고 말합니다
.

 

다섯 번째 절인 새로운 존재'는 틸리히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해석입니다. 틸리히의
기독론입니다
. 기본적으로 틸리히 하면 떠오르는 게 존재론과 신론인데,
이에 반해 기독론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 틸리히의 새로운 존재'
는 그의 신학 전체를 완성시켜
주는 결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의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실체를 "새로운 존재"라고 부른다. 이 용어의 전제와 함의는 나의 신학 전체를
통해서만 완전하게 설명될 수 있다
.......어디서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는가?'
조직신학은 이
물음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고 대답한다........
나의 조직신학의 내용적인 규범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이다.......
이 규범은 조직신학의 모든 자료의
사용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다
.

 

이제 틸리히의 기독론을 세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죄와 타락

 

틸리히는 아담으로 기원되는 인간의 원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창세기 1-3장의
이야기를 인간의 본질에서 실존으로 넘어오게 된 전이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
그러면서
아담의 타락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에 기인하며
, 이 자유는 유한한 자유지만,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근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 인간은 자유라는 위대함과 타락의 가능성을 지닌 운명
,
즉 자유와 운명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구성요소입니다.

창세기의 타락이야기는 아담이라는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실존적인
보편성을
, 죄를 모든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실존의 "보편적 한계"
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 틸리히는 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이는 유한한 자유가 보편적인 운명의 틀 안에서 작용하는 것"

 

[틸리히는 죄를 인간과 신의 분리로부터 야기된 어떤 상태로 보았다. 틸리히는 타락' 뿐만
아니라
'라는 용어도 기독교가 사용해 온 상징적 언어로 본다.
틸리히는 죄의 현실에 놓인
 이 상태를
소외'로 표현한다. "실존의 상태는 소외의 상태이다........인간의 곤경은 소외이다
.
 
그리고 그의 소외는 죄이다." 인간 실존은 누구나 소외'의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틸리히의 신학에서
소외'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 왜냐하면 틸리히에게 소외의 극복은 죄의 극복이고,
이런 의미에서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틸리히에게서 인간의 소외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첫째, 불신앙으로서의 소외이다.

[신앙이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요소들을 포함한 전인격적인 행위이듯이, 불신앙도 인간이
그의 전 존재가 신으로부터 돌아서는 행위나 상태를 말한다
.....
불신앙은 신에 대한 단순한
부인이 아니다
.......
불신앙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존재의 근거인
신과의 통일성을 완전히 파괴한다
.
틸리히는 이러한 소외를 인간 존재가 가지는 보편적인
비극성으로 이해한다
.]

 

둘째, 휘브리스(hubris)로서의 소외이다.

[인간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속해 있는 신적인 중심을 벗어나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 유혹은
 인간을 실존적으로 자신과 그의 세계의 중심에 두게 한다
.
인간은 자신이 신의 무한성에서
 떨어져 나온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휘브리스에 떨어진다
.
휘브리스는
도덕적 교만
(pride)과는 다른 것이며 정신적인 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신의
 영역으로의 자기
-높임(self-elevation)이다.]

 

셋째, 실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자아로 끌어들이려는 무제한적인 욕구(desire)이다.

[‘욕구'는 성적인 욕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전체를 자신 안으로
 끌고 오려는 갈망이고 유혹이다
. 이 욕구는 권력, 물질, , 지식, 정신적인 가치 모두에 해당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신으로부터 분리(불신앙), 신의 위치로 높이려는 것(휘브리스), 모든
실재를 자신의 자아로 끌어들이는 것
(욕망)이 되겠습니다.
이는 특별히 죄가 많은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운명"(universal destiny)입니다
.
이 소외의 결과를 몇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줄이면, ‘자아파괴'입니다
.
중요한 것은 이 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구원의 방법이겠죠.

 

[틸리히는 인간이 시도한 구원의 방법들로 율법주의적 방법, 금욕주의적 방법, 신비주의적
 방법
, 성례전적인 방법, 교리적인 방법,
감정적인 방법들이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보았습니다
. 그리고 그 근본원인을 인간의 의지의 노예'(bondage of the will)로 보았습니다
.
인간의 유한성에서 나온 자유와 운명은 자기구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구원을 향한 의지는
굴레의 한계라는 숙명적 상황을 맞이한다
.]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소외된 실존의 힘으로 소외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은 모진 고생과 비극적인 실패로
끝나고 만다
."

 

틸리히는 인간의 자기구원에 대한 모든 실패의 시도는 인류에게 새로운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초역사적 유형,
둘째는 역사적인
유형입니다
. 전자는 브라만, 불교 같은 다신론과 신비주의적 종교에서 나타나는 유형입니다
.
역사는 순환하고 구원은 초역사적인 신들의 출현이나,
선견자들에 의한 정신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 후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발견되는 유형입니다.
역사적인 과정 안에서
 새로운 존재를 기대하고
, 새로운 존재의 출현은 역사에 중심을 부여하고,
역사가 그 중심으로부터
새롭게 인식되면 역사의 완성을 기대하게 되는 유형입니다
.

 

틸리히는 기독교 외의 타종교에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다른 종교
전승에서 결정적인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음
항목에서 기독교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인 예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그리스도로 불린 예수

 

우선 틸리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참 하나님'이며 참인간'이라는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 이유

[‘참 하나님'이라는 교리와 연관된다. 예수는 중재로 불렸지만 구원이 예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신에게서 온다는 점이다
.
이런 의미에서 틸리히로서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는다
.]

..... 그는 그 자신에 의해 세워진 구원자가 아니고 신적인 운명에 의해서 세워진 구원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과 중재는 실재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구원자는 하나님을 정죄의
필연성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 중재와 구원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
하나님은 중재와 구원의 주체이지 객체가 아니다.

 

틸리히에게 예수가 참 하나님'이라는 말은 예수가 신적인 운명에 의해 구원자로 세워진' 것을
 단지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구원의 중재와 주체는 여전히 오직'
하나님이다는
 것입니다
.
이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많기 때문에 제가 연재하는 단적인 지면을 가지고 속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두 번째 이유

[‘참인간' 이라는 교리와 연관이 된다. 예수가 참인간이라고 불렸지만, 이는 신과 인간 사이의
또 다른 하나의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 틸리히는 '참인간'
은 신 앞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자로서
 그 기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

그러므로 만약 그리스도가 중보자와 구원자로 간주된다면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제3
실체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로서 기대되는 것이다
.
그는
하나님에게 인간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어떠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지를 보여준다
.
그는 실존의 조건들 아래에서 살고 있는 자들에게 인간이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마땅히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
중보자가 하나님과 인간 곁에 있는 하나의
존재론적인 실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기독론의 근원이다
.

 

정리하지면 이렇습니다. 예수는 구원자나 중재자로 불릴 수는 있지만, 이것은 예수가 구원의
주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 ,
전통적인 의미에서 예수를 신으로 볼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

 

[왜 틸리히가 이렇게 예수를 존재론적으로 구원자 혹은 중보자로 보는 것을 거부하는가?
그것은 틸리히가 신 자체를 개체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그의 신론에 대한 이유도 있지만
,
직접적으로는 예수가 존재론적으로 중보자가 되면 신은 피조물의 구원과 중보를 예수에게
의존해야 한다
. , 신이 구원의 주체가 될 수가 없고, 하나의 존재'
에 의해 신과 인간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
틸리히로서는 하나의 존재인 예수가 존재자체인 신과 피조물의 중재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예수가 그 자신의 존재'로서 구원자가 아니라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가
? 입니다.

 

[틸리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유명사로 보지 않는다.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오직 예수에게만
 사용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 , "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특별한 인물을 신화론적 전승 속에서 표현해 주는 용어이다
."
기독교는 예수에게서
특별한 기능을 보았고
, 예수를 그리스도로 불렀다.]

 

틸리히의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리스도로 불린 예수"(Jesus who is called the Christ), 혹은
그리스도인 예수”(Jesus who is the Christ), 혹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Jesus as the Christ),
혹은
 
그리스도 예수”(Jesus the Christ)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표현들 중에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하는지는 문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기독교의 선포와 가르침은 인간 예수가 그리스도로
불린다는 역설을 끊임없이 다시 강조해야 한다
.
이 역설은 안타깝게도 예전과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유명사로 사용함으로써 자주 상실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본래적으로
, 본질적으로 그리고 항구적으로 그리스도인 예수”(Jesus who is the Christ)

의미한다
.

 

틸리히에게는 예수가 존재론적으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 어느 순간에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 (이 부분은 다음 연재에 계속)

 

오늘은 중간이라도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분량이 많고 중요한 부분이라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profile

[레벨:18]天命

December 07, 2013

오늘의 내용은 틸리히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젠 면역이 생겨서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게 되었을 뿐
옛날 같으면 '아이쿠, 이거 위험한 사상이야!'하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외면했을, 그런 내용입니다.

profile

[레벨:21]小木

December 07, 2013

 저도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그런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교회현장에서 이런 공부가 가능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December 07, 2013

저는..
오늘내용은 귀에 쏙쏙 잘 들어오네요.
일단 어려운 용어가 엄써서 그런 것 같어요.
글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서 야기되는 어떤 상태, 즉 소외된 상태가
죄라는 거군요. 이것이 또한 우리의 실존이구요. 
"소외의 특징/불신앙, 휘브리스, 실재하는 모든 것을 자기자아로 끌어들이려는 열망,"
이런 것들을 한 마디로 '자기애 집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거스틴도 죄를 휘브리스라고 했다고 하고,
정목사님께서도 '자기집착'이라고 하시잖아요?
이렇게 다들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교리의 원죄론은, 사실,
우리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만,
일반인들, 특히 논리정연한 현대인들에게는
아담의 전가된 원죄이야기는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것도 같아요.
맥락과 행간을 잘 설명해주기 전에는요.

두번째,
-그리스도로 불린 예수
이부분은 오해소지가 엄청 많아 보이네요.
저도 좀 헷갈리고요.
틸리히 사상을 전혀 몰라서 그럴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무슨 말씀 하시고자 하는지는 쪼끔은 감을 잡긴하겠어요.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감'일뿐이네요.
이 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은뎅..
너무 어려워서 길라잡이가 있었음 좋겠어요.

김목사님, 먼 책을 읽어야할까요?
즈이 집에 <조직신학3>이 뒹굴어 다니긴 하는데,
몬 읽겠네요. 어려워서요.

profile

[레벨:21]小木

December 07, 2013

 정목사님께서 자주 말씀 하시던 것과 같습니다. 인간예수가 어느 순간에 초대 그스도교로부터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불렸다는 사건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예수의 운명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틸리히의 주장은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전후 사정(신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의 주장을 이해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저는 내공이 빈약하여 누구에게 책을 추천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시간 나실 때 정목사님께 여쭤보심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profile

[레벨:38]클라라

December 07, 2013

맞습니다.
그리스도론에 대해선
저도 정목사님께 배워온 바가 있어서인지
틸리히의 주장이 그리 낯설지는 않습니다.
참인간이시며 참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
사실, 저는 아직도 그 속뜻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데, 오히려 틸리히의 설명을 듣고 보니
감이 잡혀질 듯 하네요.
대체 이건 무슨 조활까요?
김목사님,
목사님의 이런 설명으로도 저한테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셔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께요.

profile

[레벨:18]天命

December 08, 2013

지난 여름수련회 때
눈꽃님께서 고백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틸리히에 심취해 있노라" 라는.

앞으로 틸리히 공부때는 눈꽃님께 한번 특강을 요청드릴려고 하니
라라님께서도 그땐 꼭 참석하실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예배시간이 당겨지니까 그땐 공부가 너무 늦지 않게 끝나겠지요 ?
 

profile

[레벨:38]클라라

December 08, 2013

예, 집사님,
목집사님이 책을 참 많이 읽으시더라구요.
전에도 저한테 책이야기로 자꾸 말씀을 걸어오시는데,
지가 워낙 딸려서리..
답변불능였어요.
저도 목집사님의 틸리히 읽기, 기대되어요.^^

글구..
지난 주에 뵜을 때
"지하철 타고오니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네."
하심서 교회에 종종 나오실 듯 비추시더라구요.
사실, 저도 남의 말만 할 게 아니라
서울이 여기서 먼 거리도 아닌데,
게으름, 꽤만 자꾸 느네요. 
주일은 안식일, 푹 쉬자!! 
머 이럼서 말이지요. 
제 스스로도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함정에 빠지네요.

profile

[레벨:18]天命

December 08, 2013

그런 말씀꺼정 하셨다면 미리 문자라도 보내드려
그 이전부터라도 나오기 시작을 하셔서
부드럽게 대화를 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시도록 하는 게 좋겠구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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