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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18

조회 수 4678 추천 수 0 2013.06.14 16:09:28
 
현대신학의 흐름18
 
3장 계시와 세속 : 본회퍼 / 여섯 번째 절 '신 없이 신 앞에'를 연재하겠습니다.
이번 절은 많이 길어서 두 번에 걸쳐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6. 신 없이 신 앞에
 
본회퍼의 유명한 표현인 "신 없이 신 앞에"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는 그의
후기에 저술이었던(미완성) 윤리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성과 속의 이원화를
해체하고,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구체적인 삶을 실천해 나가려는 그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보통 이론상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주 소소한 부분에까지 사람의 판단과 결정이 필요합니다. 이 때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되는 근거가 윤리입니다. 세속 안에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게
어렵고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본회퍼의 생애 후기 작품인 윤리는 미완성 저술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윤리
1940년부터 체포되던 해인 1943년까지 여러 곳에서 쓴 단편들을 제자이자 친구인
베트게가 편집해서 출판한 것입니다. 본회퍼의 윤리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저서인 제자의 길옥중서간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네 부분으로 나눠서 이 주제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현실", "그리스도의 형성",
"
궁극적인 것과 길 예비", "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오늘은 앞이 두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현실
 
여기서는 본회퍼의 윤리의 근본 개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본회퍼에게 윤리의
출발점은 항상 구체적 현실입니다. 그는 현실을 종교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나아가 세상과 기독교, 자연과 초자연, 성과 속, 이성과 계시를 대립
개념으로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본회퍼는 두 영역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을 율법적
사고로 규정합니다. 따라서 본회퍼는 윤리의 출발을 현실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지적 서민(?)인 우리가 머리 아파해야 할 이야기들이 시작됩니다.
 
[본회퍼에게 현실은 항상 하나이다. 하지만, '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본회퍼에게
구체적인 결단의 장소인
'현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지금
이 세상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뜻하지 않는다
. 이 현실은 '그리스도의 현실'
말한다
. 여기서도 눈에 보이는 현실과 이 현실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현실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이 나타난다
.]
 
앞선 기독론에서 현재와 초월의 긴장이 윤리사상에도 유사한 구조를 보였습니다.
현실이 그 현실이 아니라니.......ㅠㅠ 더 보태볼까요?
 
[그는 인간이 스스로 자연적인 인간학을 구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므로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은 인간의 현실이나 세상의 현실이 아니다
. 본회퍼는 하나님
없는 현실을 현실로 보지 않는다
. 그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자기 노력에 의해 윤리적
()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없는 현실은 현실이 아니랍니다......그의 말입니다.
 
"그분 없이 사물과 율법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모두 추상적인 것이며 근원과 목표로부터
이탈된다
. 인간의 선과 세계의 선에 대한 물음은 먼저 하나님의 선에 대한 물음 없이는
불가능한 물음이다
. 왜냐하면 인간의 선과 세계의 선이 하나님 없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대충 본회퍼의 의중을 이해하셨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궁극적인 현실이 아니고,
인간 능력으로 선을 추구해 나가는 윤리적 시도는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본회퍼는 이 불완전한 현실 너머에 있는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현실을 진정한 현실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회퍼의 "윤리의 과제"가 확실해졌습니다. 본회퍼는
기독교 윤리의 목표와 과제를 이렇게 밝힙니다.
 
"기독교 윤리의 과제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현실이 그 피조물 가운데서
실현되는 것이다
."
 
본회퍼에게서 기독교 윤리의 목적은 어떤 원칙이나 가치를 인간의 상황과 사회에
적용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세계의 현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최종적으로 선하게 만든다거나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선의 개념에서도 본회퍼는 일반윤리에 말하는 ''의 추구에 근원적
가치를 두지 않고, 나아가 보편적인 선이 있다고 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현실이라는 게 아직 확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금 이따가
두 번째 '그리스도의 형성'에서 이 부분을 다룰 겁니다.
 
여기서 저자는 본회퍼 윤리에 나타나는 특징을 두 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첫째,그리스도의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단호한
저항과 변화를 요청하게 된다
.
 
[그리스도의 현실만을 유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 현실의 실현을 윤리적 과제로 보는
인식은 강한 실천적 참여를 수반한다
.]
 
본회퍼의 히틀러 암살기도를 예로 듭니다. 저자는, 이것을 상황윤리로 보는 평가에
대해서 본회퍼 신학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로 취급합니다. 자신이 실존을
던진 그리스도의 현실, 그 현실을 가로막는 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저항하며 하나님의
현실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본회퍼가 윤리를 신학의 여러 주제 중 하나로 본 것이 아니라 모든 신학과
연관된 것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
 
[본회퍼는 윤리에서 윤리적 원칙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원칙을 찾으려 한다.
그는 '윤리'를 실천이 포함된 모든 신학적 주제들이 결집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 그리스도의 형성
 
그리스도의 형성은 본회퍼가 말한 기독교 윤리의 궁극적 목표인 그리스도의 현실을
실현하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현실에 참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본회퍼는
"형성으로서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이 주제를 이야기 합니다. 이 윤리의 구체화를
본회퍼 식으로
'형성'이라는 개념으로 시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형성'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시죠.
 
[본회퍼는 '형성'(formation)은 오해스러운 용어이며 보통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본회퍼는 '형성'을 사회적이거나 이념적
차원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형성'을 성서적 의미로 사용한다.......본회퍼에 따르면
오직 하나의 형성만이 있다
. "모든 형성들 가운데 오직 한 모습, 세상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의 형성
"만이 유일한 형성이다.]
 
, 기독교인이라면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유일한 메시아,
교사, 윤리적 모델이라고 말입니다. 일반적 기독교 윤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하네요.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경건하고 선한 생활을 위한 교사로 이해될 때 그리스도의
모습이 오해되듯이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경건하고 선한 생활을 위한
가르침으로 보려고 할 때 인간의 형성 역시 그릇 이해된다
." ,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형성으로 보았지만
, 그 의미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모델로 본 것은
아니다
. 형성은 그리스도를 모범 삼아 그를 닮아가려는 인간의 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합니다. '형성'은 그리스도를 모범 삼아 그를 닮아가려는 인간의 시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것이라면 일반적 윤리가 되겠죠.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형성'(formation)
따르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이 대답은 본회퍼가 이해한 화해자 예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에게서 하나님과
세상은 화해되고 하나님과 세상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나타난다
. 그리스도에 의한 화해로
인해 하나님과 이 세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은 이 역사를 거룩한 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 이제 세상없는 하나님(God without world)도 아니고, 신 없는 세상(world without God)
아니다
. 세상없는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 없는 세상도 없다. 오직 한 분에게서 하나님과 세계가
만나고
, 하나님과 이 세상의 실체가 함께 만나며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과
세상이 만나며
, 하나님과 세상은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게 본회퍼가 말한 그리스도의 형성이며 유일한 현실입니다. 화해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인간이 모방하거나 따를 수 있는 모범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예수의 인격과 윤리적인 모습을 보고 그렇게 되라고 이야기 하지만 가당치 않은 말이라는
겁니다. 본회퍼는 인간을 초월하려는 노력, 신을 닮으려는 시도, 모든 종교적 영웅주의를
거부했습니다. 그런 시도를 율법적인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윤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회퍼는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산 독특한 그의
'형성'(form)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인의 삶은 이 그리스도의 형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 기독교 윤리의 최종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성을 이 세상에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형성'이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아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면 본회퍼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저자는 여기서도 변증법적인 긴장이 발견된다고 하는데 정말 긴장됩니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형성에 참여하려는 노력이 요청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자기
노력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 이 인간의 노력 중에 인간은 오직 유일한 그리스도의 형성에
스며들고 그리스도에 의해 참인간으로 형성된다
. 이 변증법적 조화가 본회퍼의 형성의 윤리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 하자면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계시적 현실, 이 유일한 '현실'에 참여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 안이나 종교적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자기 체험이나 실현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 안에서 행하는 우리의 전 실존을 건 복종을 의미한다.]
 
교회, 종교, 경건, 개인 영역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역사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형성을 향해 헌신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이해가 쉽지는 않네요.ㅠㅠ 중요한 것은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어떤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성에 동참하고,
복종할 뿐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동참하고 복종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 새롭게 되는데, 이것을 '참인간'이라고
본회퍼는 말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직 유일한 현실인 '그리스도의 형성'(formation)
아직 현실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일한 현실인 그리스도의 형성이 현실화
되기까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향에 부름 받는다는 것입니다.
 
[각 신앙인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부름을 받는 것처럼 교회도 그리스도의 형성을 향해
부름 받는다
. 교회는 그 자체를 위한 유지와 발전에 관심을 두는 문화적 단체나 모임이
아니다
. 교회는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자들의 종교단체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그 모습을
취한 그리스도이다
.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과 구별해 피할 수 있는 은신처가 아니다.
교회 역시 유일한 현실인 그리스도의 현실을 증거 하는 장소이다.]
 
본회퍼는 교회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면 교회는 '종교적 사회'가 된다고 했으며, 이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본회퍼는 자신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현실을 거부하는 히틀러 정권에 전 실존으로
저항했던 겁니다.
 
[그리스도의 현실을 거부하는 모든 힘은 우상이다. 본회퍼에게는 그리스도의 현실을 막는
어두움의 힘은 히틀러로 상징되는 당시의 독일의 현실이었다
.]
 
다음으로는 '궁극적인 것과 길 예배', '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를 연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profile

[레벨:18]天命

June 15, 2013

이 <현대신학의 흐름>에 나오는 본회퍼의 사상을 먼저 섭렵을 하고 난 후에
"나를 따르라"를 읽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높은 산에 올라 숲을 조망한 후 하나하나의 나무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profile

[레벨:21]小木

June 15, 2013

 아무래도 이 책이 정리가 잘 돼 있어서 공부하기는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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