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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18-2

조회 수 3545 추천 수 0 2013.06.21 13:48:48
 
현대신학의 흐름18-2
 
 
오늘은 6'신 없이 신 앞에' 마지막 부분 "4)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를 연재하겠습니다.
 
 
4) 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본회퍼 신학의 단면만을 취한 면이 없지 않지만, 현대 행동신학자들은 그들의
사상적 원류로 본회퍼를 지목합니다. 그만큼 본회퍼는 실천을 강조했던 신학자입니다.
물론 그의 실제 삶도 자신의 신학과 일치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그의 신학과 삶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부름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써 '따름'이 매우 중요한 논제가 됩니다.
여기서는 이것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본회퍼는 옥중서간에서 삭개오, 가버나움의 백부장, 고넬료, 나다나엘, 아리마대
요셉과 무덤가의 여인들 등을 거명하면서 이들에게 나타난 공통점을 지적한다
. "여기에
나타난 유일한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지', '어떻게 그리스도에
복종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회퍼 신학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름과 따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위를 강조한다.......본회퍼에게 그리스도를 따름은
삶의 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지금까지 자신을 유지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 따름은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인 동시에 그리스도와는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 "따라 오라는 예수의
부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결합함이며 동시에 모든 법칙과의 단절이다
...
....
따름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다."]
 
신앙도 따름과의 연관에서 이해합니다. 본회퍼에게 신앙은 믿는다는 자기 인식이나
믿음에 대한 내적 확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믿고 나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만이 믿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언어유희처럼 들으면 곤란합니다.
 
"순종의 첫걸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기 위한 첫 행위이다.......믿기 전에 먼저
순종의 첫출발이 필요하다
. 순종치 않는 자는 믿을 수 없을 것이나, 오직 순종하는
자는 믿을 수 있다
."
 
순종치 않는 자에게 신앙이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믿음이란 어떤
내면성이나 종교성이 아니라 믿음은 행위에 의해 시작된다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순종과 행위를 강조한 본회퍼에게 이런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나는 순종을
결단했으니
,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그의 답변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순종의 내용은 무엇인가? 나를 따라 오너라! 이것이 전부이다. 그 뒤를 따라간다는
것은 철두철미 내용 없는 일이다
. 실현시킬 만한 합리적인 프로그램도, 목적도,
추구해 나갈 이상도 없다."
 
잘못 이해하면 무책임한 것으로 오해하기 딱! 입니다. 본회퍼가 말한 '따름'의 의미는
어떤 구체적 항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자의 '자세'(태도)와 연관된 것이라는군요.
그러니까 인생의 일정부분, 가진 것의 일정 부분을 주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따름은 우리 삶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를 따르든
아니든 둘 중 하나이지 제 3의 길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본회퍼의 유명한 명제인 은혜에 대한 논의도 따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는
은혜를 귀중한 은혜(costly grace)와 값싼 은혜(cheap grace)로 대비합니다.
이에 대한 그의 말입니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대 원수이다. 우리는 오늘날 귀한 은혜를 위해 싸우고 있다.
값싼 은혜는 시장에서 행상인들이 물건을 싸구려로 파는 것과 같다. 성만찬,
죄의 용서, 위로가 헐값에 내동댕이쳐진다. 교회의 보물 창고에서 물건을 내어오듯
질문도 확인도 없이 함부로 축복을 빌어 준다
. 대가 없는 은혜이고, 가치 없는
은혜이다
!.......은혜의 대가는 이미 지불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공짜라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의 부정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되었다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
 
"은혜는 따라오라는 부름 때문에 비싸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오라는 것이기에
은혜이다
. 은혜가 비싼 것은 그것이 사람에게 삶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참 생명을 주는 것이기에 은혜이다
."
 
은혜가 어찌 두 개 이겠습니까? 본회퍼의 이 말은 은혜를 값싸게 대하는 교회와
목사, 성도들의 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회개와 죄에 대한 고백 없이
은혜와 축복만을 요구하는 것이 은혜를 값싸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 기도에 대해
 
"기도는 막연하게 자신의 소원을 추구해 나가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의 생을 굽어보시고 우리의 생에
동참하신다는 것이 아닐
, 우리가 경건히 귀를 기울여 거룩하신 역사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
, 곧 지상에서 이룩된 그리스도의 역사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중간 정리의 개념으로 저자는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과연 본회퍼 자신이 주장한 대로 전적인 따름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 "만약 가능하지 않다면, 가능하지도 않은 요구를 본회퍼는 왜 하는
것인가
?" "따르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성도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본회퍼는 이에 대한 대답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이중적 긴장(변증법적 긴장)이 있다고 합니다. 앞서 윤리'형성'을 다룰 때
나타났던 구조와 동일합니다.
 
"내가 예수의 모범적 삶을 닮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의 행위는 나를 절망 상태로
이끌어 간다
. 그러나 만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럴
때는 나는 우선 그를 모범으로 하고 따르도록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다
. 나는 그의
행위 속에서 내 스스로는 그의 일을 할 가능성이 없는 자로서 그를 만나게 된다
."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모범이 아니다. -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우리는
절망한다
. - 노력이 크면 클수록 절망도 커진다. - 철저한 무능력의 자신을 발견하고,
따름의 불가능을 알게 된다. - 인간의 무능력 속에서 가능케 하는 은혜를 만난다. -
순종과 따름은 나에게 요구되지만 가능케 하는 이는 ''를 넘어서는 곳에서 온다.
 
결과적으로 참 순종과 따름은 은혜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순종과 따름이 무슨 윤리, 청빈, 이상주의와 같은 율법화
된 기준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그의 말을 들어보시죠.
 
"예수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나서는 첫 행위는 예수께 드리는 인간의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에게
주는 예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
."
 
어렵습니다. 순종이 인간에게 요청되고, 인간은 순종하려 노력하지만, 순종이
가능해지는 것은 예수에 의해서 가능하다. 입니다. 저자의 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부름을 외면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싸게 만든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내면의 세계에 가두어둘 수 없다
. 그는 결코 인간 경험의 한 부분에 위치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며, 이 역사의 중심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그는 이 세상의
주인이다
. 그리스도는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형성'(form)이다.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그의 부름은 우리를 한계선상으로 몰아간다
. 하지만 이 한계선상에서
우리는 그를 만난다
. 나의 좌절과 절망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결단이 나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이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진정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
 
다음 불트만으로 넘어가기 전 본회퍼 신학의 이해를 더하고, 총정리 개념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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