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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20

조회 수 5165 추천 수 0 2013.07.02 15:37:02
 
현대신학의 흐름20
 
 
오늘부터는 말씀드렸던 대로 불트만과 그의 신학에 대해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신학자들에 비해 불트만은 그리 호감이 가는 신학자는 아닙니다. 아마도 성서의
비신화화, 실존신학 등 그의 신학적 특징으로 인해 우리(한국교회)에게는 비호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불트만에 이런 인식은 그의 신학의 의도와 깊이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불트만 또한 20세기의 위대한 개신교 신학자 중
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의 인물됨과 신학을 찬찬히 살펴가며 그에 대한 오해도
불식됐으면 합니다.
 
 
부 계시의 실존적 해석과 상관관계
 
4장 계시와 실존 : 불트만
 
 
1. 생애, 사상적 원천, 주요 주제들
 
1) 학자로서의 생애
 
이름 :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출생 : 1884820일 독일 비펠슈테드(Wiefelstede)에서 부=아르투르, =헬레네 의 장남
배경 : 전통적인 개신교 목회자 가문으로 부친은 루터교 목사, 조부는 아프리카 선교사였으며,
           외조부도 개신교 목사였다.
 
1892 ~ 1903
이 기간은 어린 시절과 청소년의 기간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종교학, 그리스어, 독일 문학에
특별히 관심이 가졌으며, 올덴부르크에서 중등과정인 김나지움(Gymnasium)에 다니면서 몇
학년 위였던 야스퍼스(K. Jaspers)와 만나 오랜 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합니다. 물론 훗날
비신화화로 치열한 논쟁을 하기도 합니다. 불트만의 성격은 사상 논쟁 시 움직이지 않는 바위,
집요함 또는 참을성과 상대방의 대화를 끝까지 들어주는 성격 등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양면성이 있는 것이죠.
 
1903 ~ 1912
이 기간은 신학수업과 연구 기간입니다. 1903년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시작했으며
베를린대학, 마르부르크 대학 순으로 거쳐 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불트만이 밝힌 학생
시절 스승으로는 베를린의 교회사가 뮐러(K. Miiller), 역사신학의 하르낙(A. Harnack),
구약의 궁켈(H. Gunkel), 그리고 마르부르크에서는 신약학자인 바이스(J. Weiss),
율리허(A. Julicher), 조직신학자 헤르만(W. Hermann) 등입니다. 1910년 신약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마쳤고 1912년에서 마르부르크대학의 율리허 밑에서 교수 자격 논문을 마쳤다.
 
1912 ~ 1951
이 기간은 신학교수로서 저술과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기간입니다.
1912 - 1916년까지 마르부르크 대학 강사
1916 - 1920년까지 브레슬라우 대학 조교수(이 기간 중 결혼)
1920 - 1921년까지 기센(Giessen)대학 정교수
1921 - 1951년까지 마르부르크 대학 정교수로 은퇴
 
불트만의 중요한 저작들은 대부분 마르부르크에서 교수 생활 중에 출판되었습니다.
그는 본회퍼에 비하면 너무도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 단조롭다 할
정도의 삶인데요. 이런 배경도 불트만을 향한 +α의 호감도가 없게 하는 요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역동적인 삶에 더 호감을 가지는 편이니까요. 그렇다고 그의 삶에
역동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불트만에게도 몇몇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1921공관복음 전승사를 출판하면서 바르트, 고가르텐과 함께 변증법적 신학
운동에 중요한 일원으로 함께 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붕괴에 일조를 하지만 불트만은
바르트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의 과학적 방법론, 역사비평학
등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와의 만남을 통해 1927
존재와 시간, 1933신앙과 이해등의 작품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히틀러 정권에
반대했던 고백교회 운동에 가담한 후로는 바르트와는 호의적이 되고 하이데거와는 불편한
관계가 됩니다.
 
불트만 생애의 가장 격렬했던 시기는 아마도 1941421"신약성서와 신화론" 논문이
발표된 이후일 것입니다. 신학계에서는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큰 신학적 논쟁으로 꼽으며,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바로 '비신화화 논쟁'입니다.
이 논문을 계기로 불트만은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1951 ~ 1976
이 기간은 교수은퇴 후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입니다. 이 시기에는 저술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 기간입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샤퍼 강연(Schaffer Lectures)
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론, 1955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
으로 유명한 역사와 종말론이 출판되었습니다. 노년기에도 학생, 비평가들과 활발한 토론과
학문적 대화를 이어갑니다.
 
[불트만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지성과 솔직한 삶의 자세,
그리고 제자들과의 열정적인 토론을 통해 후학들에게 신학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불트만의 신학과 그의 학자적 면호에 두터운 제자층이 생겨 소위 말하는 불트만 학파가
형성되었다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한 세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까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진다
.]
 
 
2) 세 가지 사상적 원천
 
불트만은 다른 신학자들에 비해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다고 합니다. 그의 지적수준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당혹감을 느낀다는군요.
사상의 폭만 넓은 게 아니라 사상적 경향도 자유주의 신학에서 신정통주의 신학까지
서로 다른 신학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불트만의 사상적 원천이 되는
큰 세 가지 토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유주의 신학과 역사비평학
 
자유주의 신학은 정의 내리기 모호한 개념이라는군요. 통상 슐라이어마허에서 시작되어
19세기에 개신교 신학을 주도한 하나의 신학적 흐름을 지칭합니다.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도그마와 규범화된 교리에 묶이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성서해석을
위해 다양한 학문의 영역과 연계를 하거나 도움을 받는다. 그 과정의 방법론으로 성서에
대해 역사비평학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위의 두 가지 특징으로만 본다면 불트만은 철저히 자유주의 신학자일 것입니다. 당시는
역사적 예수의 생애운동과 역사비평방법이 중요한 학문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그의 스승들도 모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불트만은 디벨리우스와 슈미스와 같은 성서 문헌의 양식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의
입장을 더욱 발전시켜 '양식사 비평'이라는 새로운 역사비평방법을 개척하기도 합니다.
공관복음 전승사가 바로 양식사 비평방법을 체계화한 저술이라고 합니다. 불트만은
스스로 1920년대 초반에는 자유주의 신학의 전승에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의 긍정적 유산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2) 루터와 변증법적 신학
 
불트만 사상의 두 번째 원천은 종교 개혁가들에 의한 '오직 믿음'과 변증법적 신학입니다.
루터파 목사인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자랐으며 자신도 평생 충실한 루터파 목사로 살았습니다.
그는 바울에서 루터로 이어지는 '오직 믿음'을 자신의 중요한 신학적 명제로 여겼다고 합니다.
 
[불트만에게 '오직 믿음'이라는 생각은 초기 신학에서부터 중요한 신학적 토대였다.
불트만은 신은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 능력에 의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917년 그의 논문 감추어진 신과 계시된 신에서 하나님의 타자성에 대해 이렇게 주장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싶다면, 우리가 말해야 할 첫 번째는 우리는 그를 인식하던
그런 방법으로 안 된다는 점이다
. 우리는 우리가 그에 대해 품었던 것과 다른 전적인
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위의 논문을 통해 불트만은 그의 사상에 원천이 되는 자유주의 신학을 뛰어 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2판이 나왔을 때 긴 서평으로 완전히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고 있음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불트만은 변증법적 신학이 단순히 정통주의로 회귀가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고
나온 신학이라고 평가했다
.]
 
(3) 실존신학과 케리그마
 
'불트만' 하면 실존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불트만이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와
깊은 연관 가운데 자신의 실존주의 신학을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존재와 실존에 대한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불트만이 하이데거 철학의
어떤 측면을 영향 받았는지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하이데거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존재 문제이다. 실존주의 철학 자체가 인간을 주된 주제로
삼았지만 하이데거는 인간 실존의 구조의 분석에 힘을 많이 기울였다
. 그는 인간의
존재
(Sein)의 본질을 규명하는 일에 최우선적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인간을 '여기 있음'
지칭하는
'현존'(Dasein)으로 이해한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다른 일반적인 존재들과
구별하는데
, 인간 존재를 다른 사물과 같은 범주에서 다루면 인간 실존에 대한 바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현존을 철학적으로 그 형식과 구조를 밝히는 것과
각 개인이 실제적인 삶의 상황 안에서 실존이 본래성을 찾는 것을 구별하였다
. 그는 철학자가
실존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실존론적
(existential)이라고 하고 개인의 실재적
상황을 실존적
(existentiell)이라 불렀다.]
 
불트만은 하이데거의 인간에 이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이데거가 사용한
'실존론적''실존적'이라는 구별도 받아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트만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의 철학을 인간을 이해하는 틀로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불트만은 이를(하이데거 인간 이해)통해 인간과 성서의 인간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인간이해의 틀을 마련하다
. 하지만, 하이데거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그것은 인간의
비본래적인 실존에서 본래적인 실존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은혜'라고
본다는 것이다
. 여기서 불트만에게 복음의 역할이 결정적인 요소로 드러난다. 대부분의
실존철학자는 인간의 비본래적 상태에서 본래적 상태로의 전환을 인간의 내재적 힘이나
인간 본질의 어떤 요소에서 찾는다
. 불트만은 이 점에서 실존철학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하이데거와 함께 불트만에게 영향을 끼친 또 한명의 철학자는 켈러(M. Kahler)입니다.
그는 헤겔과 리츨의 사상적 흐름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라이마루스에 의해 격발된
'예수 생애운동과 역사주의'에 반대해 1896소위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성서적 그리스도
라는 책을 출판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수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역사적 예수와 성서의 그리스도를 구별했습니다.
 
[그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신앙이 담보되지 않으며, 오직 성서의 그리스도에
의해 신앙이 가능함을 역설했다
. 켈러는 이 논쟁적 글에서 '역사적 예수와 성서의 그리스도'
구별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적 구별을 시도했다
. 그는 역사를 실증적 역사(History)
실존적 역사
(Geschichte)로 구별하였다......실증적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날짜
, 장소, 사건의 사실적(fact) 확인과 재구성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실존적 역사는 인간의
실존이 도전하고 결단하면서 역사와 마주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 켈러는 신앙의 토대를
실증적 역사에 바탕을 둔 예수가 아니라 선포를 통해 오는 실존적 그리스도 위에 두었다
.]
 
불트만은 켈러의 그리스도의 두 가지 개념과 역사의 두 가지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의
사상으로 발전시킵니다.
 
[불트만은 실존주의를 통해 형성된 인간에 대한 실존 개념과 역사를 결합니다. 불트만에게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재구성이나 역사적 사실은 현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 오직 역사와
실존적 만남을 통해 과거의 역사가 현재가 된다
. 역사에 대한 이런 관점은 불트만이 성서
텍스트를 해석하는 중요한 해석학의 근거가 될 뿐 아니라
, 그의 실존주의적 역사관을 형성하게
된다
. 이처럼 신앙,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실존적 만남 등은 서로 연결된 개념이다.]
 
 
이렇게 해서 불트만의 생애와 그의 사상적 원천이 끝났습니다. 다음은 '주요 주제들'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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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天命

July 02, 2013

드디어 불트만으로 들어가는군요.

제게 이 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렇게 공부할 게 많아 저는 참 행복합니다 !
계속 군불을 때주십시오. ^^

교우들의 따듯한 환송을 받으며 따나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편
말못할 사정으로 공적인 환송도 사양하고 따나시려는 분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없나 돌아보게 되는군요.
두 가정이 옮겨 가시는 곳에서 예배를 예배답게 드릴 수 있는 교회를 꼭 찾으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크는 나무가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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