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판넨베르크 설교집, <믿음의 기쁨>을 읽고 :: 2007년 04월 26일 13시 02분/Blog/서평들

판넨베르크로부터 생명과 희망의 설교 듣다  
판넨베르크 설교집, <믿음의 기쁨>을 읽고

/이국헌 (  khlee64 )    

설교는 하나님의 로고스를 대변하는 행위이다.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위임받은 행위이자 대리적 행위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사회에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여 선포함으로써 민족과 그 구성원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었던 것처럼 오늘날 목사들의 설교는 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진리를 전하는 엄숙하고도 고상한 선포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목사들로부터 이러한 설교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가? 각 교회의 강단에서 매주일 선포되는 설교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로고스가 울려 퍼지고 있는가? 목사들은 그 로고스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당연히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해야만 하는 이 질문에 쉽게 긍정할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작년에 출판된 설교비평집,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에서 한국 기독교계는 교회 내에서 선포되어지고 있는 유명 목사들의 설교가 얼마나 전문성이 결여된 아마추어리즘에 머물러 있는 지를 통감하게 되었다. 특별히 한국 기독교회를 이끌고 있는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가 신학적 전문성과 시대적 통찰력이 결여된 지극히 피상적이고 선동적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의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한국 교회를 이끌고 있는 현대의 목사들로부터 하나님의 로고스가 울려 퍼지고 있지 않은 현실은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많은 내용들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판넨베르크 설교집, <믿음의 기쁨>이 출간되다

이런 절박한 때에 그 절박한 현실을 최일선에서 비평했던 정용섭 목사(대구성서 아카데미 원장)에 의해 한 설교집이 출간되어 우리 앞에 놓여졌다. 판넨베르크 설교집인 <믿음의 기쁨>(Freude des Glaubens, 2001)이 그것이다. 이 책은 판넨베르크가 자신이 재직했던 마인쯔와 뮌헨 대학 등 여러 대학의 채플 및 여러 예배당에서 설교했던 내용들을 묶은 설교집이다. 원래 그의 설교집은 1973년에 <여기 계신 하나님>(Gegenwart Gottes)이란 제목으로 처음 출판되었고, 그 후 1999년에 <믿음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출판집이 나왔다.

판넨베르크의 설교집들은 모두 대구성서 아카데미에서 번역 출판되었는데 이 모두 정목사의 노고의 결실이었다. 그는 우선 2002년에 판넨베르크의 첫 번째 설교집인 <여기 계신 하나님>을 출판했으며, 그 후 <믿음의 기쁨>에 대한 출판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전에 출판했던 책과 <믿음의 기쁨>을 한데 묶어서 이번에 <믿음의 기쁨>(2007)이란 제목으로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역자가 이 설교집을 출판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는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공부한 경험과 박사학위 논문으로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을 썼던 인연으로 판넨베르크의 신학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전문성이 판넨베르크의 설교집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설교집을 출판한 매우 적극적인 동기는 물론 한국 단상의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었다. 그는 “성서도구주의와 신학무용론에 빠진 한국교회의 강단을 갱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동기에서 이 책을 번역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출판 동기는 매우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정성들여 번역, 출판된 책을 받아들면서 척박한 한국 교계의 현실에 이만한 설교집이 소개될 수 있었다는 감동과 함께 좀 더 세련된 편집 출판을 통해 다소 무거운 설교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읽혀지도록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가졌다. 하지만 그런 형식적인 단점들이 그 내용의 깊이와 중요성을 감소시킬 수는 없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좀 더 깊은 깨달음의 경험을 가지도록 인도하기 위해 몇 가지 분석적 정리를 남기고자 한다.


신학이 있는 설교

판넨베르크는 하나님의 로고스를 대변하기 위한 충실한 설교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그의 설교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설교를 위해 선택한 본문이 가지고 있는 로고스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특별히 그는 자신의 조직신학적 이해(보편사 신학, 삼위일체 신학, 생명의 영에 대한 신학, 희망의 신학)를 성경 본문과 조화시켜 신학이 있는 설교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설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그의 신학적 이해를 통해서 풍요로워진다.

그의 설교적 주제와 관심이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의 내용들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사상은 그의 신학적 관심사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 생명의 영의 역할과 중요성, 미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임재 등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신학적 설교를 통해서 판넨베르크는 신자들을 하나님의 진리의 깊이와 넓이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끈다. 그는 피상적인 기독교의 언어가 아닌 생생한 신학적 언어로 메시지를 창출하여 기독교 진리의 본질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차별화된 메시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로고스의 생동성을 추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게 합니다. 그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게 하는 이들의 영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한번만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그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213). 이 말씀 속에는 성령의 사역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거듭남과 구원의 의미를 신학적 언어로 표현한 매우 감동적인 내용이다. 이런 표현들 속에서 우리는 판넨베르크의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신학이 있는 설교를 통해 신자들을 하나님의 로고스로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설교가 필요하다. 단순히 물질적 축복과 삶의 위안을 제공하는 피상적인 설교가 아니라 신학을 토대로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하고 그런 진리의 현현 속에서 종교적인 감동과 깨달음이 있는 설교가 절실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판넨베르크의 설교는 한국 기독교를 깨우는 능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미를 추구하는 설교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교리설교 내지는 주제설교로 분류하고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설교에 대한 본질을 좀 더 깊이 분석한다면 그의 설교를 단지 이런 범주에 국한시켜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의 설교는 기독교의 사상과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가 이해하고 있는 전통적인 사상들이 가지는 문제점과 몰이해를 지적해 내고 그 사상들이 가지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들을 추구해 들어가는 통찰력 있는 설교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설교의 내용들은 기독교사상의 핵심 부분인 사랑, 기도, 봉사, 빛, 생명, 믿음, 인간, 자유 등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내용들에 대한 피상적인 기독교의 이해가 존재한다. 특별히 많은 신자들의 의식 속에 이러한 내용들은 신앙정신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종종 이것들은 올바로 이해되지 못하고 왜곡된 형태로 드러나곤 한다. 판넨베르크의 설교는 항상 그런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사상적 접근을 추구한다. 그래서 기독교 사상에 대한 근본적이면서도 새로운 통찰력이 제공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실천을 대체해버릴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쾌적한 대용물도, 무력한 대용물도 아닙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해지는 비판처럼 기도는 누군가를 돕는 실천적인 일과 관계없는 게 아닙니다. 기도는 오히려 우리가 살아갈 목표설정을 해명하고, 우리가 행동할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321). 기도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삶의 목표를 정해주고, 행동할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그의 설교는 우리 시대에 정말로 힘이 있는 설교가 분명하다. 이처럼 판넨베르크의 설교는 기독교사상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설교로 이루어져 있어 기독교 설교자의 지향점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


본질에 접근하는 설교

많은 설교자들이 그렇듯 판넨베르크 역시 그의 설교에서 현실적인 문제와 아젠다를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설교 역시 현실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그의 접근 방식은 다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보다 더 본질적인 방식으로 현실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3세계 민중들에게 밥보다 더 큰 것을 갚아야 합니다. 그 양식은 배고픈 사람을 단지 일시적으로만 만족시켜주며, 따라서 그 만족은 곧 새로운 굶주림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의 모든 굶주림을 밥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요한복음이 언급한 ‘생명’의 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이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버지의 뜻입니다.”(159).

이 설교를 읽고 있노라면 오늘날 한국 교회들의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기별들과의 차이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많은 목사들이 현실적인 축복과 빵을 강조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우리의 설교 현장에서 빵보다는 진리를 전달해야 하는 절박함을 느낀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판넨베르크의 본질에 접근하는 설교야 말로 설교의 궁극적 지향점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항상 주변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 문제의 해결점을 교회 메시지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종종 현실적인 필요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만 답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설교는 현실사회의 문제의 본질적인 면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 깊고 심오한 하나님의 로고스로부터 문제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판넨베르크와 같은 종교적 사유를 통한 설교를 추구해야만 한다.


생명과 희망의 설교

판넨베르크의 설교집은 한국 교회 설교자들이 설교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의 책인 성경의 본문으로부터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얻기 위해 그것을 도구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 시대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분의 로고스를 찾기 위한 영적인 사색을 시도한다. 그 사색의 결과로 얻어진 메시지를 신자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저들로 하여금 진정한 종교적 성찰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그것만이 그의 설교가 지향하는 목적이다.
  
이러한 영적인 사색은 설교의 주제 선정, 적절한 성경 본문의 선택, 그 본문에 들어 있는 역사적 문화적 문맥들에 대한 신학적 탐색, 신학적 사상과의 조화, 현대적 해석 및 적용, 선포된 진리로 인한 청중들의 변화 예측 등을 망라하는 것이다. 역자인 정용섭 목사가 제시한 꽉 찬 설교란 바로 이런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설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판넨베르크의 설교는 꽉 찬 설교이다.

판넨베르크 설교집, <믿음의 기쁨>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이 되는 이유는 그 설교에서 기독교가 제시하는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설교하는 하나님은 피안에만 계신 분도, 차안에만 계신 분도 아니다. 그 모든 곳에 동시에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위로자가 되기도 하시고, 때로는 우리의 희망이 되기도 하신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살리는 영이시고, 평화의 영이시고, 희망의 영이시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선포는 기독교의 희망의 이유를 설명해 주기에 충분하다.

책의 편집 구성의 아쉬움과 약간은 난해한 듯한 판넨베르크의 사상이 녹아 있는 책이기에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는 조금 한계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간과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책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설교의 깊이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설교자들이나 신자들 모두 이 책을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특별히 이 책이 설교의 변혁이 필요한 한국 교계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으면 좋겠다. (끝)

(인터넷 어떤 방에서 발견하고 베껴두었던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내용이 충실한 것 같아
여기에 달아둡니다.
도움이 되기를. 정용섭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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