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 2011년 1월호에 기고된 글, 정용섭 주>

 

 

나는 지금 어느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가

민영진/정 대한성서공회 총무

 

 

나의 설교를 말하라고? 기습이다! 이런 요청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준비된 것이 없다.

남의 설교를 말하라면 절제 없이 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의 설교를 말하라는 요청을 받고서

나는 왜 이렇게 놀라는가?

 

설교집

설교집 『하느님의 기쁨 사람의 희망』(삼민사, 1991)에 들어 있는 25편의 설교는 20여 년 전 교권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룩하려고 애를 쓴 한 교회 공동체의 자매와 형제들이 없었다면 나올 수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1980년대 말, 우리나라 기성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교회를 떠났던 지성들이 어떤 계기가 있어서 평신도교회를 세웠고, 한 명의 목사가 포함된 네 명의 설교자들이 설교를 번갈아 가면서 맡았었습니다. 여기에 실린 설교들은 모두 그 교회의 신도들에게 처음으로 선포된 말씀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질문과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선포된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던 여러 가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문제에 관하여 성서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신도들은 그들의 설교자를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몰아쳤고, 성서 안에서 어떤 통찰을 얻도록 우리를 그리로 밀어붙였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신도들과 말씀을 증언해야 하는 설교자들은 둘 다 자주 서로에게 실망했습니다. 신도는 선포되는 말씀이 사모한 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그러했을 것이고, 설교자는 설교를 하면 할수록 설교자로서의 한계를 절감하였기 때문에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단순히, 설교란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전했어야 했는데,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황한 설교자는 미처 정리되지 못한 거친 메시지를 전하여서 신도들을 더욱더 당황하게 만들어 버렸던 일도 잦았습니다. 그러나 성서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성도의 사귐을 깊게 하였고, 죄인이라도 뉘우치고 돌아서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반기시는 하느님의 기쁨이 바로 우리와 같은 죄인들의 희망임을 함께 깨치기도 하였습니다.

백발백중이면 명사수입니다. 그러나 서툰 사수도 백발 중 한 발은 과녁을 맞추나봅니다. 황송하게도 설교비평 전문가 정용섭 박사께서 졸저에서 몇 편을 골라 과찬을 하는 바람에 많은 독자들이 혼란을 느끼고, 이미 절판이 되어버린 폐품을 찾느라 수고하는 모습들을 옆에서 오래 동안 지켜보면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에 뜻밖의 자리에서 20여 년 전에 삼민사(三民社)에서 이 책을 편집, 출판했던 신영미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동안 이 책을 찾는 이들에게 100여부 넘게 복사하여 전달해 준 대구성서아카데미의 임원 형제를 그녀에게 소개하였고, 두 사람이 이 책의 재판을 기획하였습니다. 이제 졸저를 찾던 독자들의 수고를 덜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설교의 모범을 찾는 독자들에게 끼칠 실망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이것을 말리지 못한 염치없음이 죄송합니다. 이것이 다만 반면교사의 구실이라도 하면 다행이겠다 싶습니다.

제가 전한 이 메시지가 지금은 수집되어 인쇄매체로 유포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폐품이 될 것을 저는 압니다. 또 반드시 폐품이 되어야 그나마 제가 조금은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런 일에 역행하여 이미 절품이 되어 버린 이 설교집을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다시 재판하였으니, 제가 싫어하는 것을 도리어 제가 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간 <기독교사상>이 기획한 “나의 설교를 말한다” 에 기꺼이 응하여 여기에서 이런 주제로 버젓이 말을 하고 있다니 저도 제 자신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중

주어진 제목을 받고 보니, 죄송하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설교를 한다고 하면서도 전해야 할 진짜 말은 전하지 못합니다. 그럴 용기가 없습니다. 한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아니면서도 제 자신이 여러 기회에 설교 부탁을 받으면, 으레 메시지의 내용을 명상 중에서 기다리기보다는 청중(聽衆)과 타협(妥協)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곤 합니다. 그들과 알뜰한 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청중을 잃고 싶지 않고, 청중과 척(隻)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 청중은 언제든지 설교자를 외면할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각오하는 설교자 역시 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아니니까, 매번 바뀌는 청중에게 어떤 책임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되면 그는 직업 설교가 일지언정 교인을 걱정하고 돌보는 목회 설교자는 아닙니다. 담임 목회자가 아닌 목사의 설교가 지닌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 교인에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늘 바뀌는 청중에게 설교를 합니다. 라디오 방송이나 TV에서 설교를 하는 경우에는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말씀 편에 서 있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을 굴절(屈折)시켜 결국 말씀을 변질(變質)시켰고, 청중과 야합(野合)하여 그들에게서 은 삼십 세겔의 보상을 충분히 받았고, 지금도 저는 저를 타락시킨, 그래서 제가 경원(敬遠)하는, 그 청중과 이웃하여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새 저는 청중에게 끌려 다니며 그들이 제 입에 넣어주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에게서 응식(應食)을 받아먹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이 듣고 즐길 말만 생각하고 준비하다가 예언자의 아류(亞流)가 되어 버리니, 결국 청중도 잃고 말씀도 잃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 설교의 실패의 이력입니다.

예언자와 제가 다른 것이 있다면 예언자들은 끝까지 말씀 편에 섰고 그 말씀을 굴절시키지 않았고 청중을 배반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고 끝내 혼자 버려지는 절대적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외친 메시지는 하나님의 것이었기에 수집되었고, 보관되었고, 전승되어 지금도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삶에서 비록 짧은 경험이긴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청중은 똑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사야 때의 청중, 예레미야 때의 청중, 예수 때의 청중, 지금의 청중이 모두 같다는 생각입니다. 말을 증언하는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요구도 같습니다. 청중은 듣고 싶은 말에만 늘 귀를 기울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이면, 설교자가 말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모든 잔인한 수단을 동원하여 침묵을 강요하거나, 끝내 실어증 환자가 되도록 내몰거나, 아니면, 추방하여, 그 설교자를 담벼락에 기대어 육자배기나 부르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어릿광대로 만들어버립니다.

너희는 계시를 보는 이들에게는 말한다.

“계시를 보지 마라!” 하며,

예언자들에게는

“진실을 예언하지 마라!”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라!”

“우리의 환상 깨뜨리지 마라!”

너희는 또 그들에게 말한다.

“비켜서라!”

“우리 앞길 막지 마라!”

“너희가 말하는 그 거룩하신

이스라엘 하나님 이야길랑 이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사역 사 30:10-11)1)

이것은 이사야의 청중이 이사야에게 한 말입니다. “계시를 보는 이들”이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미리 보는 이들”입니다. “선견자(先見者)”라고도 했습니다. 말을 전하는 예언자(豫言者)의 다른 이름일 뿐 서로 다른 실체는 아닙니다. 설교자의 조상인 셈이지요. 그런데, 청중은 그들에게 계시를 보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진실을 예언하지 마라!”고도 합니다. 예언자가 자신들을 배반했다고 느끼는 분노한 청중은 예언자에게 올바른 가치를 말하기보다는 청중에게 이익이 되는 실용적인 것만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가치를 물리치고 한 이익 집단이나 권력집단이 바라는 실용적 가치를 긍정하도록 요청합니다. “우리의 환상 깨뜨리지 마라!” 이것은 그들이 짜놓은 거대한 미래 설계에 예언자가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청중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로 바뀌었지만, 예레미야 역시 그들에게서 이사야가 겪은 것과 같은 동일한 체험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嘲弄)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暴力)’을 고발하고 ‘파멸(破滅)’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恥辱)과 모욕(侮辱)거리가 됩니다.

(새번역 렘 20:7-8)

예언자는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暴力)을 고발하고” 그러한 권력이 곧바로 일패도지(一敗塗地)할 “파멸(破滅)”을 외칩니다. 권력이 그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조롱(嘲弄)하고, 모욕(侮辱)하고, 치부(恥部)를 들추어내어 만천하에 공개하여 그로 하여금 이 땅을 떠나고 싶게 만듭니다.(렘 15:17-18; 20:14-18) 당하는 것이 치욕뿐입니다. 예언자가 된 것을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새번역 렘 1:5)

이 말을 들었을 때 예레미야는 순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런 부름이 한 사람의 생애에 얼마나 큰 타격을 가져올 지를 미리 알만한 혜안은 그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부름을 자기가 어리다는 핑계로 사양합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새번역 렘 1:6)

그러나 그는 끝내 피하지 못하고 그 부름을 받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예언자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언자는 하나님이 자기를 “속이셨으므로” 자기가 “속았다”고 무엄한 언사로 하나님에게 대듭니다.

거부당한 설교

제 생애에서 아마도 네다섯 번은 설교 방해를 받아본 일이 있습니다. 한 번은 제 설교의 진술 방법 미숙으로 설교 방해를 받은 일이고, 다른 서너 번은 저를 설교자로 초청한 교회가 일부 장로들의 반대로 뒤늦게 초청을 취소하는 경우들이었습니다. 어느 기독교 대학에서는 교목실을 통하여 설교 초청을 해놓고 후에 그 학교 재단이사장이 직접 저에게 전화를 걸어 설교에서 교직원 노조 결성이 얼마나 비기독교적이고, 비성서적인지를 말해달라고 부탁하여, 설교 초청 자체를 정중히 사양한 적도 있습니다. 첫 번째 경우, 초청받아 온 설교자의 설교가 아직 서두에서 머물고 있었을 뿐인데, 청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일어나서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런 소리 하라고 부른 게 아니오. 예수 말씀, 성경 말씀을 전하라고 불렀는데, 지금 당신 하는 말이 기독교적이길 합니까, 복음적이길 합니까?”

“지금 제가 이사야서 34장을 읽고 해설하는 중인데요.”

“그런데 <피바다> 얘긴 왜 해요?”

도대체 내가 한 말이 무엇이었기에 저 사람이 저렇게 화를 내나? 원고를 보니, 저는 이사야서 34장, 하나님의 천사가 에돔 땅을 온통 피로 물들게 한 것을 북한의 <피바다>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그 원고를 보니,2) 198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연극을 소개한 것도 극우파 사람들로서는 듣기에 몹시 거북했을 터인데, 그 작품을 소개할 때, 내용을 제 말로 바꾸어 간접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출간한 좬문학예술사전좭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소개하였으니, 그가 화를 낼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수령께서 조직 영도하신 항일무장투쟁 시기에 창조 공연된 혁명연극을 그대로 영화로 옮긴 작품”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그렇게 화를 낸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제가 전달하려 한 전체 메시지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단순한 인용구절에 대한 항의였기 때문에, 저는 설교 자체의 메시지가 외면당한 것 같아서 서운했습니다. 또 끝내 그가 제 설교를 못하게 방해했더라면 바랐는데 설교를 진행하도록 협조해주었고, 점점 화를 푸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저는 청중을 화나게 하는 설교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 이것은 교양이긴 하지만 설교를 타락시키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또 한 번은 어느 보수교단 교회로부터 두 주일 연속, 주일 오후 예배에 특강과 설교를 겸한 집회 인도를 부탁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타 교단 목사들과는 강단교류가 거의 없는 교단에 속한 교회였기에 그러한 초청 자체가 내게 몹시 의외였습니다. 더욱이 그 교회 담임 목사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저를 찾아온 그 교회의 부목사에게 거듭 확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 타 교단 목사를 부르는 일이어서 당회의 허락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얼마나 조심하면서 설교를 겸한 강연을 했겠는지는 여러분도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강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되고 있었습니다. 그 첫 주일이 지나고 그 다음 날, 월요일, 어두운 얼굴로 절 찾아온 그 교회 부목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방문의 의미를 모를 만큼 둔감하지는 않았습니다. 타 교단 목사를 강단에 세우는 그런 모험을 시도했던 목회자들을 위로했고, 그 교회 방문은 그 첫 주일 한 번으로 끝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 교회 담임 목사와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는 뜻밖의 결실도 얻었습니다. 아마 장로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 설교 겸 강연 첫 예배에서 저는 그 교단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참 조심스레 은혜로운 말씀을 준비했었지만 아마 제가 쓰는 용어와 그 교회에서 쓰는 용어가 서로 맞지 않았던가 싶습니다.

예언자의 설교가 그러했듯이 본질상 설교는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설교 그 자체가 거부당한 것이라기보다는 저 자신이 글이나 말이 청중에게 어떤 편견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면, 그리고 그 편견이 설교 거부로 이어진 것이라면, 제 자신이 설교자가 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실패가 전제된 말씀 증언

이사야의 소명은 우리 설교자들에게 어떤 깨우침을 줍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대변인(代辯人)으로 보내시면서 정작 대변인의 말을 들어야 할 백성에게는 예언자의 말을 거부하라고 미리 말씀 거부 프로그램을 입력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청중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을 터이니 예언자는 오로지 파멸만 선언하라고 하십니다.(사 6:10) 그러나 그 말을 이사야는 하나님의 리토릭으로, 그냥 엄포 정도로 이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설마 그러랴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부닥쳐보니까 백성들은 예언자의 말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습니다. 백성은 오히려 예언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면서 자기들이 하는 말이나 들으라고 말합니다. 말을 해야 할 예언자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들어야 할 백성은 말하는, 임무의 역전(逆轉)을 여기에서 봅니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사 6:9-10)

이사야는 하나님이 막아놓은 청중의 귀를 뚫어보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겨놓은 청중의 눈을 뜨게 해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둔하게 만든 청중의 마음을 민감한 마음으로 바꾸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그 놀라운 화술(話術)과 능변(能辯)과 필력(筆力)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찬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자기의 재능으로 사태를 호전시켜 보려한 그 착한 노력이 자신의 오만(傲慢)이었음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예언 선포를 중단함으로써 결국 그는 말씀 전달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요. 설교 잘하면 뭣 합니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듣는 이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요!

말로 해서 안 되니까, 몸으로 연출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민족들이 당할 수치를 알리기 위해 이사야는 3년 동안 벗은 알몸으로 행위예언(行爲(豫言)까지 연출해 보이지만(사 20:3-6) 소용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아까운 예언자가 실성한 줄 알았겠지요. 결국 그는 자기의 예언을 봉인(封印)해 버립니다.(사 8:16) 그러고 나서는 자기의 두 아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한 녀석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사 8:3))이고 다른 한 녀석의 이름은 “스알야숩”(사 7:3)입니다. 역시 고도의 행위예언입니다. 길거리에서 이사야가 한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 듣는 이들에게 그것은 “노략이 속히 임할 것이다”라는 말로 들립니다. 웬 소동이냐고, 왜 유언비어를 퍼뜨리느냐고 체포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 아들을 불렀노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 그것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말로 들립니다. 현재 질서의 종말과 새로운 질서의 회복을 암시하는 언어행위가 포함된 행위예언입니다.(사 8:18) 예언자의 이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그가 전달한 메시지를 거절했고, 나라는 망했고, 지도층은 강대국으로 사로잡혀 갔고, 백성은 다른 여러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설교자들이 당하는 방해나 거절이 예언자 그것에 미치는 것이라면 그의 메시지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현상을 일으킬 것입니다. 봉인하여 묻어버려도 누군가가 그것을 꺼내어 유포시킬 것입니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

(시 19:2-4)

설교자의 두 모델3)

1990년대 초에 첫 설교집을 내고나서,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고 성서 안에서 어떤 설교의 모델을 찾고 싶어서 성서의 세계 속에서 방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욥기를 보다가,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한 설교를 보다가 설교를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재앙을 만나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위로하려고 찾아옵니다. 친구들은 욥의 고난의 현장을 목격하고서 통곡합니다. 그의 친구들은 밤낮 이레 동안 욥과 함께 땅 바닥에 앉아서 친구의 고난에 동참하고, 고통을 함께 나눕니다. 욥이 겪는 고통이 너무나도 처참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입을 열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합니다.(욥 2:11-13) 그처럼,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통을 받고 있는 동안은 욥과 함께 있어주는 그것으로 욥을 위로합니다.

그러나 욥이,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며,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기를 치시기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친구들은 하나 같이 모두 욥을 비난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어서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하는 이가 있겠느냐?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

(욥 5:1-2)

빌닷 역시 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보고, 욥을 꾸짖는 것으로 그의 장황한 설교를 시작합니다.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센 바람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구나.

너는, 하나님이 심판을 잘못하신다고 생각하느냐?

전능하신 분께서 공의를 거짓으로 판단하신다고 생각하느냐?

(욥 8:2-3)

소발 역시 욥의 잘못을 규탄하는 것으로 그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네가 하는 헛소리를 듣고서 어느 누가 잠잠할 수 있겠느냐?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

네가 혼자서 큰 소리로 떠든다고 해서,

우리가 대답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우리를 비웃는데도 너를 책망할 사람이 없을 줄 아느냐?

(욥 11:3)

여기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욥의 친구들이 아무리 친구라 해도, 슬프게도, 우리는 그들의 우정이 그들의 신학적 편견을 초월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들은 욥이 자신들의 신학 노선 혹은 자신들의 신앙 노선과는 다른 신학과 다른 신앙을 가진 것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욥의 적으로 변하고 맙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습니다. 욥기의 독자들이 볼 때, 그 세 친구라는 사람들은 욥의 친구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친구인 것 같고, 욥을 변호하거나 위로하기보다는 욥을 비난하면서 하나님을 옹호하고 하나님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아니면 하나님이 모욕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아니, 자기들이야말로 사람에게 모욕당하는 하나님을 그 모욕에서 건지는 하나님의 보호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어떤가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볼 때 그들의 고통에는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들이 그러한 고통을 받는 데는 고통 받는 자들에게서 연유되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고 지레 짐작해 버리고 하나님 편을 들어 그들의 고통을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이런 경우, 설교자는,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비난하는 것과 그들이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에서 우리는 또 다른 설교자의 모델을 봅니다. 욥이 등장한 무대와 유사한 무대가 나옵니다. 그 무대 위에는 고난을 받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욥의 경우는, 그의 곁에 앉아서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서 함께 통곡해 줄 친구라도 있지만, 여기 이 익명의 인물에게는 그러한 위로자도 없습니다. 그를 위로하는 친구는 없는데, 그를 비난하는 대적들은 많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蔑視)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苦痛)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病)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蔑視)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 53:3)

여기에서 화자(話者)는 “우리도 …” 라고 말함으로써, 고난을 받고 있는 그 사람을 묘사하는 이 관찰자는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고난 받는 그 사람을 비난하는 대열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관찰자는 고난 받는 그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이미 깨닫고 있습니다. 자기가 소속한 공동체가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사 53:4-5)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사 53:4)

그런데 지금 깨닫고 보니까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사 53:5)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사 53:6)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를 보고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사람에게서, 고통 받는 사람을 보고서 그에게서 자신의 구원자의 임재를 확인하는 그 사람에게서, 우리는 더 진한 우정과 해방과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를 설교자의 모범으로 삼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욥을 위로하러 왔으면서도, 욥이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욥을 비난하는 그의 세 친구의 신학적 설교에는 설교로서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잘 준비된 설교에 별 하자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설교에도 아무런 신학적 교리적 하자는 없습니다! 아니, 하자가 아니라,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완벽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느 곳에서 선포해도 모범적인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위험성이 있다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형벌 받는 죄인을 옹호하고 “그의” 죄를 “우리의” 죄로 인식하고, 그에게서 구원자의 임재를 보는 그 익명의 관찰자의 발언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설교자의 두 모델을 봅니다. 하나는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설교를 하고, 신학적 노선을 달리한다고 하여 고통의 현장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욥의 세 친구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 신학과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교리적으로도 의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심판을 합법화하기보다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고, 그것을 자신과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인식하고, 고난당하는 자에게서 대속(代贖)을 체험하고, 그리하여 한 개인의 고난을 구원의 능력으로 재해석하는, 고난의 종을 보고 있는 그 관찰자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가?

오랜 항해를 끝내고 지금은 한 항구에 정박 중입니다. 작은 배안에 두 종류의 자료를 실었습니다. 하나는 유대교의 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 예수에게 사로잡혔던 한 시인이 남긴 몇 편의 작품입니다.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부터 평생 역사적 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온 저는 그 방법을 그대로 선용(善用)하면서 유대교 라비들의 말씀 해석의 전통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30대 초반에 히브리대학교에서 라비들에게 중세 라비주석을 배우고 유대인 교수들에게서 탈무드와 미드라쉬를 배웠고, 틈틈이 카발라와 같은 유대교 신비주의를 읽었습니다. 그때는 그것들이 모두 성서에 대한 역사적 비평적 접근과는 너무나도 달라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건성으로만 들었는데, 점점 그쪽으로 다시 관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들 곧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집단으로 성경을 만나서 읽고 해석해온 역사가 우리가 집단으로 성경을 만나서 읽고 해석해온 역사보다 훨씬 길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제가 마지막으로 정박(碇泊)할 항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다시 먼 원양(遠洋) 항해(航海)를 떠날 시간은 없습니다.

설교가 궁극적으로 배척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런 설교를 하기 위해 성경 본문에 더 천착(穿鑿)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청중이 아니라 본문에 더 사로잡히고 싶습니다. 이젠 청중이 없이도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듣기를 거절한다면 봉인하여 오래 묵힐 그런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청중을 일차적으로 고려한 것이 내 설교의 실패였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을 향한 청중의 대변인이 아닙니다.

교회력에 따라 주어진 그 주일의 본문을 설교하는 것이 설교자를 위한 올바른 안내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기피했던 것에 저의 설교가 지닌 약점이 있습니다. 주어진 말씀을 읽고 주석하고 묵상하고 구원사건과의 맥락 안에서 계약서로서의 성서 본문에 귀를 기울이고 강한 연대(連帶 engagement)를 강조했어야 했는데, 제가 무엇인가 말씀을 만들어서 제가 잃고 싶지 않은 그 청중에게 주려고 했던 모든 시도가 사실은 시의적절하게 주어지는 말씀을 거절한 설교자의 오만이었습니다. 설교가 청중과 상황과 환경을 고려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논객(論客)이 되어 어떤 민감한 문제에 전문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쪽으로 기울다가는 그 설교는 길을 잃고 맙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생애에서 지난 20여 년간은 성경번역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 번역자가 되기 전, 그전 20여 년간은 저는 히브리어성경의 본문비평가였습니다. 성경의 원문비평을 해온 생애도, 성경을 번역해 온 기간과 같이 20여 년이 됩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사본들과 고대 번역들을 비교하면서 5천여 곳의 문제 되는 본문들의 최초본문의 형태는 무엇이었을까를 탐구하는 것이 제가 몰두해 온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본문비평가와 번역자는 서로 좋은 이웃이 못 됩니다. 관심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본문비평은 원문회복이 원초적 관심입니다. 그것이 뜻이 통하든 안 통하든 괘념(掛念)치 않습니다. 오히려 문맥에 잘 맞지 않고 뜻이 잘 안 통하는 비문(非文) 같은 것이 더 원문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 본문비평의 정설입니다. 그러나 성경 번역은 그럴 수 없습니다. 번역문을 읽는 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이 본문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뜻도 전달하지 못하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해 놓으면, 의미가 없거나 다른 뜻으로 읽히거나 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원문의 전체적인 의도를 파악하려하고 한 본문에 대한 여러 해석 전통들을 참고하면서 가능한 한 뜻이 통하는 번역을 하려고 합니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 본문 재구성과 추측이 허용됩니다.

저는 지난 40여 년을 이렇게 본문비평과 번역이라는 모순 관계를 한 몸에서 동시에 살아왔습니다. 시간의 선후는 있습니다. 먼저, 엄격한 본문비평에서 제 학문을 시작하였고, 후에 상상과 추측과 본문 재구성의 모험이 허용되는 번역으로 옮겨왔습니다. 이것을 두고 저를 옆에서 관찰해 온 한 친구는 제가 은퇴할 무렵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젊은 날에는 본문비평에 몰두하면서 학문의 엄격성(嚴格性)에 투철했고, 인생 후반기에서는 성경번역을 하면서 자유(自由)를 만끽했던 삶을 그는 “민영진의 생애에서는 시적정의(詩的正義 poetic justice)와 시적자유(詩的自由 poetic licence)의 변주곡을 듣는다.”고.4)

어쨌든 저는 평생을 이문(異文)을 보이는 수많은 사본(寫本)과 서로 다른 이해를 반영하는 수많은 고대역(古代譯) 현대역(現代譯) 성서들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따지는 일만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저는 한 시인이 남긴 한 조각의 시를 발견했습니다.

땅 위에

구름 위 땅 위에

하나님의 말씀

이제는 피도 낯설고 모래가 되어

한줌 한줌 무너지고 있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남천(南天)이 젖고 있다.

남천은 머지않아 하얀 꽃을 달고

하나님의 말씀 머나먼 말씀

살을 우비리라

다시 또 우비리라.

-김춘수

이 시인은 말씀이신 예수, 하나님이신 예수, 그분이 평소에 하신 말씀 때문에 유대교 당국과 로마의 통치자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는데, 그래서 그분의 말씀에는 피가 묻어있는데, 피 묻은 말씀이 나를 깨우치고 하나님을 알게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시인에게서 이제는 갈보리의 피도 낯설고 그 말씀은 모래가 되어 한줌 한줌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평생을 파피루스 사본과 양피지 두루마리 사본만을 뒤져온 제 삶의 영원하신 말씀이 “이제는 피도 낯설고 모래가 되어/ 한줌 한줌 무너지고 있다”는 제 현실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내게 말씀은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쓰인 글이었을 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 딱한 난국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갈보리의 십자가 피가 묻어있는 우리 주님의 육성을 들을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인은 다음 연에서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비가 내리고, 메말랐던 남천 나무가 젖고, 그것이 꽃을 피우면, 그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 내게 멀기만 했던 그 말씀이 내게로 다가와서, 십자가의 대못이 예수의 살을 우볐듯이, 창이 우리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듯이 그 말씀이 나를 못처럼 우비고 창처럼 내 살을 찌를 것이라고 합니다.

같은 시인이 십자가 처형 때 사용된 대못을 상기하면서 “못”이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술에 마약을 풀어

어둠으로 흘리지 마라.

아픔을 눈감기지 말고

피를 잠재우지 마라.

살을 찢고 뼈를 부수어

너희가 낸 길을 너희가 가라.

맨발로 가라.

숨 끊이는 내 숨소리

너희가 들었으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마 사박다니

시편의 남은 귀절은 너희가 잇고,

술에 마약을 풀어

아픔을 어둠으로 흘리지 마라.

살을 찢고 뼈를 부수어

너희가 낸 길을 너희가 가라.

맨발로 가라. 찔리며 가라

-김춘수

저는 고난주간 설교를 하거나 사순절 개인적 명상을 하면서도 그 끔찍한 십자가의 고통을 쉽게 관념화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죄수들이 고통을 잊기 위해 마취제를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종교를 아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신학화시키고 관념화시켜 버리는 것은 마치 마취제를 마시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저에게 십자가는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관념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아무런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은 시적 화자의 입을 빌어, 내가 시편 22편 1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읊었으니 나머지 구절은 너희가 이어보라고 합니다. 1절은 우리 주님께서, 2절은 내가, 3절은 다시 주님께서, 4절은 내가, 5절은 주님께서, 6절은 내가 읊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숨을 거두시면 나머지는 21절까지는 내가 다 이어서 읊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 생애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飜譯)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제 설교 인생 40년은 여기 “번역하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 금요일 오후에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시편 22편 1-21절을 교독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름 위 땅 위에/ 하나님의 말씀/ 이제는 피도 낯설고 모래가 되어/ 한줌 한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소개한 두 편의 시를 쓴 시인 김춘수는 교인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 라이나 마리아 릴케를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서 창녀 소냐와 같은 사람의 삶과 살인자 라스꼴리니코프 같은 등장인물들을 관찰하면서, 또 조르주 앙르 루오가 그린 여러 예수의 여러 그림들을 보면서 예수를 만났던 인물입니다.5) 저는 그의 시와 수필을 감상하면서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의 예수 시 목록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관심을 40년 동안의 나의 설교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 대한 친밀성이 그 시인에 비해 저의 경우가 너무나도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고, 목사요, 신학자요, 설교자요, 성경번역인 너에게서는 내가 일찍이 김춘수 시인에게서 보는 이런 믿음을 못 보았다”

동역자 여러분, 우리의 설교에서 “구름 위 땅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는 피도 낯설고 모래가 되어/ 한줌 한줌 무너지고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못다 읊으신 시편은 우리가 함께 잇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앞에서 비기독교인들의 믿음을 가리키시면서 너희 목사들에게서는 이런 믿음을 못 보았다고 하시는 질책이 우리를 각성시켰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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