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비평      
신앙의 강화냐, 신앙의 심화냐!
-(전) 주님의 교회 이재철 목사-

전설을 쓰다!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어린이를 포함해서 50 여명으로 시작된 ‘주님의교회’는 아이엠에프가 본격화한 1998년 6월, 교회창립 10주년 기념예배를 드릴 때는 2천6백여 명에 이르는, 비교적 큰 교회가 되어 있었다. 이미 한국교회의 성장이 둔화되거나 실제로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고 일컬어지는 그 시기에 50배의 성장을 기록했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교회는 그 외에도 몇몇 손에 꼽을 수 있으니까 그런 급성장만으로 우리가 주님의교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아니다. 주님의교회가 보여준 행태는 흡사 희귀식물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온 교회와는 그 품격을 전혀 달리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본인들에게 물적인 토대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주님의교회는 자신들 소유의 교회당을 세우지 않았다. 잘 알려진 대로 주님의 교회는 미션스쿨인 정신여고를 위해서 대강당을 지어주고 그것을 빌려 쓰는 방식으로 예배처소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의 모든 교회가 명분으로는 모이는 공동체로서의 ‘에클레시아’라는 교회의 본질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교회 소유의 부동산에 관심을 쏟는 이 현실 앞에서 주님의교회가 선택한 방식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님의교회는 교회 재정의 반 이상을 교회 밖으로 돌린다. 무엇을 ‘소유’하기보다는 주님의 교회로 ‘존재’하는 일에 철저하니까 당연히 재정까지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개혁이 논의되는 자리마다 교회재정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재정의 50% 이상을 순수하게 교회 밖으로 돌리는 교회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주님의교회 현상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담임목사와 장로의 시무 임기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담임 목사는 10년으로 못 박고, 장로들은 13년만 시무할 수 있다. 이런 발상이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되었다는 사실에서 필자는 한국교회가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의 빛을 보았다. 은퇴 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목사직의 세습을 위해서 온갖 편법과 변칙, 또는 추태가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한국교회 안에 이렇게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교회가 현존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이며 자랑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의 상식을 파격적으로 허물어내면서 한국교회의 개혁을 선도해나가는 주님의교회는 앞으로 한국교회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매우 높게 평가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교회가 거의 무모하리만치 철저하게 개혁의 길을 가면서도 동시에 쾌속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신기하기도하고, 또한 신비롭기까지 하다. 일반적으로 개혁적인 교회는 성장하지 않거나, 성장하는 교회는 개혁적이지 않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주님의교회가 깬 셈이다. 이래저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영적인 에너지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이 와중에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면서도 동시에 역동적인 공동체를 꾸려낸 주님의교회가 등장했다는 건 하나님이 여전히 한국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징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주님의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그 행태와 결과들을 일종의 ‘전설’이라 부르고 싶다. 옛이야기로만 남아있어야 할 전설을 오늘 우리는 주님의교회를 통해서 ‘현실’로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1984년 8월2일, 새벽 2시
이 전설의 한 가운데에 이재철 목사님(이하 ‘이 목사’)이 있다. 본인은 굳이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주님의교회가 10년 동안 보여준 전설적 이야기 중심에 이 목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불혹의 40대를 온전히 주님의교회에 쏟아 붓고, 본인의 신앙적 비전을 야무지게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교회를 성장시킨 그 순간에, 더구나 이제부터 중진 목사로서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그 나이에 처음 약속한 대로 10년 만에 자리를 훌훌 털고 스위스 제네바로 떠났던 이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 필자가 지금 인물평을 쓰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세세한 이야깃거리는 접어두고 그의 설교와 연관된 대목만 짚어보겠다.
바울을 바울 되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부활의 주님을 빛으로 만난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이었듯이 이 목사를 이 목사 되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1984년 8월2일 새벽 2시에 일어난 회심이었다. 그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업을 하던 이 목사는(물론 목사가 되기 이전) 늘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새벽 2시나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모르긴 해도 그 당시의 그는 풍류를 아는 멋쟁이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벨을 눌러서 아내를 깨웠지만 그날만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신의 열쇠로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리에 엎드려 성경을 읽으면서 남편을 기다리던 그의 아내는 잠들어 있었고, 그녀의 얼굴 밑에는 공책이 놓여 있었다. 잠든 아내를 그대로 두고, 그 공책을 펼쳐든 이 목사의 눈은 아래의 글에 가 닿았다.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수유리 너머로 갔다. 시골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죽음을 생각했다. 약을 먹고 죽을까 아니면 손목을 그어서 죽을까. 그러나 그것은 내가 취할 길이 아님을 나는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되돌아왔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위해 내게 주신 남편이므로 나는 사랑해야만 한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사랑하라 명령하시므로 나는 사랑해야만 한다. 주님! 도와주세요. 나의 약함을 주님께서 잘 아시잖아요.(<요한과 더불어> 제2권25쪽. 이후로 권수와 쪽수를 숫자로만 표기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내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된 이 목사는 심장이 멎는 듯했고, 귀에서 큰 북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고 한다. 온몸의 전율과 함께 이 목사는 아내가 불쌍해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불쌍해서 울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다. “왜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을까?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의 영혼은 악취가 진동하는, 갈가리 찢어진 더러운 걸레조각처럼 여겨졌습니다.”(2:26). 그날 밤 이 목사는 예수님이 뒤에서 자기를 감싸주는 느낌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나의 사랑하는 재철아, 나는 너를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단다. 네가 나를 버리던 그 순간에도 나는 줄곧 너와 함께 있었단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2:27).
이날 밤 회심의 순간에 이 목사가 아내, 어머니, 자기에 대해서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는 사실은 그의 무의식과 정서, 그리고 신앙의 기질을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단서다. 그의 정신세계에 이 셋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특히 이 목사에게 아내와 어머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통로였다. 이 목사는 쉰 두 번의 맞선 끝에 그의 아내 되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지난날의 방탕한 삶을 끊어내지 못한 채 오히려 잘난 남편이라고 자만하고 있던 그 순간에 아내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완전히 무너졌다. 어머니는 이 목사가 세살 때 이 목사의 형을 잃었고, 열네 살 때 그녀의 남편을 잃고, 6남매의 막내이며 외동인 이 목사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사셨다. 어거스틴이 어머니의 기도로 회심했듯이 이 목사의 회심에도 역시 어머니의 기도는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이 두 여자, 아내와 어머니를 통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뼈저리게 경험했으며, 그런 구체적인 일상의 경험에 근거해서 ‘이재철’만의 고유한 목회와 설교 스타일을 주조할 수 있었다.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을 통한 일상의 복음화
그것은 곧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에게 절망하고 자기를 부정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큰 긍정으로 지양되었다. 한편으로 부정되고 다른 한편으로 지양을 통해서 긍정된다. 이 목사에게 작용하는 이런 변증법적 신앙의 내면에는 위에서 언급한 아내와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이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자.
필자는 이번에 이 목사의 설교집 <요한과 더불어> 10권을 모두 정독했다. 그 이외에 장로회 신학대학교 사경회를 마치고 신학생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하는 설교 테이프 5개를 듣고, 홍성사 믿음의 글 시리즈 191 <참으로 신실하게>와 199 <내게 있는 것>을 읽었다. 필자가 상당히 정성을 기울여 듣고 읽은 그의 설교와 글쓰기에서 필자는 이 목사가 부단히 자기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로 자란 이 목사가 집안의 기대와는 달리 고등학생 때부터 비록 일년 동안의 한시적인 기간이었지만 깡패들과 어울렸고(6:59), 대학 졸업 후 사업을 핑계로 백구두를 신고 벤츠를 몰면서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위에서 지적한 대로 아내와 어머니를 실망시켰다는 자책 때문인지 그의 설교는 철저한 자기부정에 토대하고 있다.

저는 자타가 인정하는 거룩한 성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으로 저를 조명해 보았을 때, 바로 저 자신이 추잡한 창녀였습니다. 허망한 욕망을 위해 나의 영혼과 인생을 송두리째 팔아먹는 창녀 중의 창녀였습니다. 세상의 창녀는 생존을 위해 창녀가 되지만, 저는 단지 더 먹고 더 지니고 더 즐기기 위해 창녀가 된 자였습니다. 세상의 창녀는 자신이 창녀임을 아는 지혜라도 있지만, 저는 창녀면서도 창녀임을 자각치 못하는 창녀보다 못한 창녀였습니다.(3:267).

그의 설교에는 이렇게 자기를 부정하는 참회어록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런 자기 부정이 단지 청중을 설득하기 위한 설교학적 수사의 차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자기의 삶을 구체적으로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 이 목사 부부는 자기들 개인의 소유를 포기했다(1:180, 3:16, 5:195), 교회 수련회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여의치 않자 스스로 3개월간의 근신을 내렸다(1:241). 자신의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종아리를 치게 했다(4:253). 이 목사 부부는 자기들의 몸도 부정한다. 죽은 다음에 매장하지 않고 화장하겠다고 한다. 주님의교회를 10년 만에 떠날 때 교회에서 5년 동안 유학할 수 있는 비용을 대겠다고 했지만 그것을 극구 사양했다.(10:68). 이런 자기 부정은 그의 모든 삶과 설교와 목회행위 밑자락에 깔려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한 가지만 더 짚겠다. 주님의교회 후임자를 선택할 때 극구 거절하시는 임영수 목사님을 모시기 위해서 스위스를 몇 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필자의 생각에 그가 임영수 목사님을 후임으로 모셨다는 건 주님의교회라는 현상 앞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렇듯 자기를 향한 부정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자기 긍정으로 승화한다. 이미 1984년의 특별한 회심 사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뜨겁게 경험한 이 목사는 즉시 술과 담배를 끊었으며,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세족식에서 가난한 아이의 발을 씻기던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 가난한 아이들은 한결같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발을 씻기는 제 손등 위로 아이들의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저도 울었습니다. 제 눈물로 아이들의 발을 씻긴 것입니다. 발을 다 씻긴 다음에는 아이들을 제 가슴으로 꼭 끌어안고 함께 울면서 기도드렸습니다. 아이들의 뜨거운 눈물, 뜨거운 숨결, 그 뜨거운 가슴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의 이름도 얼굴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한 가지만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 그 아이들의 발아래에서 만난 주님을, 그 곳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감동의 역사를 말입니다.(6:114).

부정을 통한 긍정의 열매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열정은 그의 설교에서 사소한 듯 보이는 일상에 대한 깊은 파토스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흘렸을 법한 작은 일상도 그의 눈에는 거룩한 빛으로 반사된다. 그래서 그가 들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깃거리에는 신앙의 위인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관한 것도 꽤나 많다. 가난한 아버지의 구두를 사드리기 위해 중학생 남매가 걸어서 통학했다는 이야기 같은 데서 발견할 수 있듯이 이 목사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 깃들어 있는 감동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했다는 마이더스의 손처럼 이 목사의 마음과 입을 통해서 전달되는 일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심층에서 울리는 감동적 휴먼 드라마로 변한다는 말이다. 이런 능력은 일상 안에서 살아가는 청중에게 복음을 구체적으로 전해야 할 대중 설교자로서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사람은 자기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확인하고 실현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 맞는다면 이 목사의 마음속에는 감동적이고 따뜻한 일상이 항상 보석처럼 빛나고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적 인식론
그렇지만 일상에 대한 감동적인 경험이 있다고 해서 모든 설교가 청중들의 마음을 관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인격과 삶이 그 바탕에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이야기를 해석해낼 수 있는 인식론적 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맛있는 사과를 깎아서 예쁜 접시 위에 올리는 것과 뚝배기에 담는 것이 전혀 다르듯이 감동적인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설교자의 어떤 인식론적 그릇에 담기는가에 따라서 그 울림의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목사의 인식론적 토대는 실존주의이다.
이 목사는 한국 외국어 대학교에서 불어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카뮈나 사르트르 같은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글을 적지 않게 읽었을 것이다. 인간 삶의 부조리, 무의미, 그 절망, 혼돈을 실존적으로 심각하게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삶의 내면과 이면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실존의 바닥을 딛고 일어선 일상의 감동을 포착할 수 없다.

인생이 대단한 것 같지만 고작 70-80년이면 끝나 버립니다. 그것도 날아가는 것같이 빨리 끝나버립니다.(1:104).
거듭난 삶을 추구하지 않는 자의 인생 궤적은, 설령 밤잠을 설치고 매일 수고의 땀을 흘리며 애써 그어 가고 있다 할지라도 실은 공동묘지를 향한 죽음의 궤적에 지나지 않습니다.(1:299).
아무리 잘 먹어도 그 인생은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를 수밖에 없고, 잘 먹고 잘 입은 사람의 죽음일수록 모든 것의 굴절을 의미하는 죽음은 상대적으로 더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5:228).

위에서 몇 구절만 인용했지만 이런 실존주의적 경향은 그의 설교에 거의 구조적이며 내재적이다. 물론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인간의 죽음과 고독과 소외 같은 실존적 현상을 언급하겠지만 다른 설교자들의 경우에는 그런 부분들이 단지 하나의 정보 수준에서 작용하는데 반해 이 목사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 안에 실제적으로 체화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별된다. 성서와 신앙과 인간의 삶을 실존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그것을 복음 안에서 전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이런 설교에 은혜 받지 않을 청중이 있겠는가?

열린 세계이해
회심 사건을 통한 일상의 감동과 실존주의적 세계관을 통한 삶의 깊이가 이 목사의 설교를 추동해나가는 두 기둥이지만 그의 설교에는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곧 비교적 탄탄한 인문학적 토대이다. 이 목사는 일반적인 대중 설교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청중들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한다거나 교묘하게 교리적으로 혼선을 야기한다거나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선동하는 일을 결코 의도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보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인문학적 토대를 통해서 복음을 자폐적이거나 독단적인 방향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서 열린 방향으로 끌고 나간다.
이미 아버지의 서재에서 이룬 풍부한 독서가 한몫하기도 했겠지만 홍성사를 운영하면서 책읽기의 내공을 깊이 쌓은 게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설교에는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시인인 구상, 소설가인 이청준처럼 실제로 친분을 쌓은 분들도 제법 많다. 그의 설교에는 그런 문학적 소양만이 아니라 선불교로부터 시작해서 동서양 고전, 영화, 바둑에 이르기 까지 인간 삶의 모든 분야가 다양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소재를 통해서 그는 일상을 복음의 차원으로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으며, 이런 그의 작업이 청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또한 한국의 일반적인 설교 명망가들과 달리 그의 세계 인식은 역사적인 부분에서도 비교적 선명하다. 박정희 전대통령을 비롯해서 군부 독재자들을 비판할 줄 알며(2:347, 4:137, 4:357), 인디언들이 북미에서 당했던 운명에 대해서도 분명한 인식이 있으며(5:241),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그는 문익환, 박형규 목사님과 함석헌 선생님 같은 분들의 글들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이 세상을 열린 자세로 보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생각이나 사상이 제 삶의 방식이나 신앙의 틀 혹은 사고의 양식 속에서 여과될 것은 여과되고 농축될 것은 농축되어, 좀더 성숙하고 좀더 열린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3:235).

삶과 역사에 대한 이 목사의 열린 태도는 한국교회에 거의 금기시되고 있는 타종교에까지 이른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 목사가 담임하던 당시에 주님의교회는 매년 정기적으로 4월에 ‘신앙대강좌’를 개최했다. 이 강좌에 초청된 인사들 중에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이들이 제법 많다. 비기독교인인 이어령 선생, 가톨릭의 오경응 신부와 김승혜 수녀, 종교학자인 길희성 교수, 더 나아가 불교에서 윤호진 승려 같은 이들이 주님의교회를 방문했다. 이런 강연이 가능한 교회는 한국에서 주님의교회 외에는 없다. 특히 개혁적인 자세를 보이긴 하겠지만 여전히 강남 지역 특성상 비교적 보수적인 신자들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주님의교회에서 이런 파격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목사의 세계이해와 역사이해가 열려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필자는 이 목사의 설교를 전반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가 이미 이룬 목회와 후진들에게 끼친 영적인 영향력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의 개혁 마인드와 그 실천을 높이 사고, 특히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접근하는(테이프 4) 태도에서도 그의 설교에 신뢰가 간다. 그러나 그의 설교가 가장 바람직한 복음적 설교의 한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으로, 순전히 개인적으로 그의 설교에서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는 사실도 숨길 수 없다. 이런 나의 아쉬움이 이 목사의 설교가 지향하고 있는 큰 줄기를 흔들지는 못하겠지만, 또한 그럴 의도도 그렇게 크지 않지만, “설교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회력의 실종
우선 이 목사의 설교가 교회력과 거의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설교에서 갖게 된 아쉬움의 단초이다. 주님의교회에서 6년여에 걸쳐서 설교한 <요한과 더불어>에서 교회력과 연관된 설교를 한편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뜻밖이었다. 물론 ‘성찬주일’이라는 표제가 주기적으로 달려있는 걸 보면 다른 개신교회에 비해서 리터지에 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은데, 설교만 놓고 본다면 교회력과 거의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대림절, 사순절, 고난주일, 부활절, 추수감사절을 맞아 한두 마디 그 절기를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 날을 암시하는 것에 불과할 뿐, 설교의 전반적인 내용은 교회력과 아무 상관없는 길을 갔다. 이 목사는 성서 텍스트와 그것이 선포되는 컨텍스트와의 관계에서 조금 이상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4년 반 동안 성경의 각각 다른 부분을 순서대로 배워 오면서 우리는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 성경을 순서대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들이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우리의 처지나 상황에 언제나 딱 맞아 떨어지는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시기나 처지를 맞아 그 상황에 맞는 말씀을 구태여 찾지 아니해도 순서대로 본 말씀이 기가 막힐 정도로 그 순간을 위해 예비된 말씀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심을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2:132).

하나님의 말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의 삶에 적용된다는 이 목사의 진술은 성서를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저력이 그에게 확보되었다는 증거이면서도 동시에 보기에 따라서는 아전인수일 가능성도 높다. 왜냐하면 필자의 생각에 따르면 성서 텍스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기보다 오히려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설교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성서해석의 근본적인 한계와 오류가 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성서해석에서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왜,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싶지 않다. 텍스트의 지평과 독자(컨텍스트)의 지평이 융해됨으로써 새로운 지평이 열리려면 각각의 지평이 구체적이고 실체적으로 살아나고 들어나야 한다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Wahrheit und Methode)을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성서가 가리키는 계시의 지평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단지 청중들의 종교적 욕구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서, 혹은 그들에게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모든 성서 텍스트를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행태를 문제 삼을 뿐이다. 성서를 역사 계시론적 깊이가 아니라 단지 도구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이런 설교는 조금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설교자 개인의 주관주의적 경험에 근거한 ‘설교편이주의’와 다른 게 아니다. 물론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밤까지 전력투구하는 이 목사의 설교를 편이주의의 한 모델이라고 단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만한 개연성까지 부정할 수 없다.

연속 강해설교의 문제점
이 목사의 설교에서 교회력이 무시되는 이 현상은 그의 주일공동예배 설교가 연속 강해설교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과 결탁해있다. 그는 주님의교회에서 말씀을 전한 10년 동안 주일공동예배에 한정해서 본다면 대략적으로 마태복음을 4년, 요한복음을 6년 설교했다. 필자가 볼 때 주일공공예배에서 교회력에 의한 ‘성무일과’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한권의 성서만을 설교의 본문으로 삼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이 목사나 그 당시에 이 목사로부터 설교를 들었던 주님의교회 신자들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이 목사와 주님의교회 신자들이 교회력의 실체를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림절로부터 시작해서 52주 동안 각각의 교회력에 맞도록 성무일과가 정해지는 교회력은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고 체험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개인의 영성보다는 교회의 역사적 영성이 훨씬 근본적이고 상위라는 사실에 대한 신학적 확증이다. 이런 점에서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유행하다시피 하는 주일공동예배의 ‘연속 강해설교’는 매우 무모한 시도이다. 이런 형식의 연속 강해설교에 의하면 스타 목사는 출현할지 모르지만 성서 텍스트가 스스로 말씀하는 계시의 역사적 신비는 침묵하고 말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목사의 요한복음 설교가 요한복음만이 아니라 66권 성서 전체와, 교회력을 포함한 기독교 역사 전체를 총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에게는 그럴만한 신앙적, 신학적, 영적인 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목사의 이러한 장점은 즉시 그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어느 본문을 택하더라도 흡사 손오공의 도술처럼 청중들에게 필요한 영적인 양식을 자유자재로 풀어낼 수 있는 그의 능력으로 인해서 결국 텍스트가 침묵하고 있다는 역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필자의 지적이 옳은지, 아니면 공연한 트집 잡기인지 앞으로 조금 더 나가보자.

침묵하는 텍스트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목사는 스물한 장에 불과한 요한복음을 6년 넘게 설교했는데, 2004년에 그것을 자그마치 10권의 설교집으로 묶어 출판했다. 이런 일은 2천년 기독교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념비적인 사건이 아닐까 모르겠다. 이런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은 곧 성서본문에 대한 그의 영적 통찰력과 그 적용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설교는 결국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았거나 집중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텍스트의 깊이로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요한복음 설교가 거의 끝없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만약 이 목사가 마음만 먹었다면 10년 이상을 요한복음만으로 설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은 일종의 설교 요령에 속하기 때문에 필자에게도 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가?
<요한과 더불어> 6권의 21번째 설교 “버려두지 아니하고”(요 14:15-21)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어거스틴을 중심으로 한 시간의 의미, 소설가 박경리, 삼손, 쥐(동화, 우화?), 본문 18절 해석, 수술환자 이야기. 좀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필자의 생각에 이런 식의 설교는 아무리 감동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주일공동예배의 설교로서는 자격 미달이라고 본다. 좀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교양강좌, 혹은 신앙강좌다. 6권 25번째의 설교 “나보다 크심이라”(요 14:28-31)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성되었다. 아들들의 바둑 이야기, 야구방망이, 금붕어, 본문설명, 믿음과 행복에 대한 일반적 교훈, 일본 작가 엔도 슈사꾸의 수필집 <마음의 야상곡>. 텍스트에 대한 해명은 단지 구색을 맞추는 정도에 머물고 사람들의 온갖 감동적인 이야기가 범람하고 있는 설교를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Deus dixit) 설교라고 말할 수 없다. 이처럼 설교행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다는 비극적 현상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매우 일반적인 것으로서, 이미 오래 전에 루돌프 보렌이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에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즉 성서가 설교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략> 성서에 관해서 설교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책을 덮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서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침묵을 깨려면 성서 자체가 말을 하고 그 말씀이 들려져야 한다.(루돌프 보렌, 설교학 원론, 4).

필자가 이 목사의 수많은 설교 중에서 극단적인 설교 두 편만 인용했지만, 비록 일부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이 목사 본인의 설교이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의 설교 중에 이런 유의 설교가 적지 않았으며, 넓게 보면 거의 모든 설교가 이런 방식이었다는 건 놀랍기도 하고 실망스러웠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목사의 그런 설교를 들은 청중들이 은혜 받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삶이 실제로 변화되면 괜찮은 거 아니냐 하고 말하지는 마시라. 설교학 교수들이나 설교 세미나의 강사로 나서는 설교 명망가들이 흔히 강조하는 그런 부분은 참으로 무의미하고, 어떤 점에서는 설교자의 영성을 파괴시키는 요설(饒舌)이며, 동시에 청중들의 영혼을 어지럽히는 요설(妖說)이다.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하겠다는 조급증에서 하루 빨리 자유로워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설교자가 주관적으로 다룰 수 있거나 객관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말씀 자체의 일이며, 성령 자체의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중이 받는 은혜와 감동이라는 게 경우에 따라서 순식간에 선동과 세뇌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 안에서 자주 목격하고 있는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사람이 자신의 영적인 눈높이에 묶이거나 안주한 채 청중들을 설득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다. 설교자는 약간 느리거나 진부하게 보이더라도 성서의 심층적 지평으로 들어가는 일에 집중해야만 한다.

일상의 과부하
그런데 아내와 어머니를 통한 삶과 신앙의 경험이 강렬했던 탓인지 이 목사는 기독교 신앙을 그런 감동적인 일상에서 확인하려고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만큼 애를 쓰고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서 무리수를 둘 때도 많다. 예컨대 변비에 걸린 행려병자들의 항문을 입으로 빨아 해결했다는 가가와 도요히꼬의 이야기나(테이프 5), 주님의교회 부목사인 신철범 목사가 뇌성마비 아들을 키우는 간증에서(7:85 이하) 청중들은 크게 감동받는 것 같지만, 영적인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부활절을 비롯해서 몇몇 주일에는 설교하기 전에, 혹은 설교 중간에 상당히 긴 간증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이런 간증이 얼마나 은혜롭고 본받을 만한가에 대해서 아무런 토를 달고 싶지 않지만, 신자들은 ‘병원 24시’나 ‘인간극장’, 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그의 설교가 ‘일상’의 과부하에 걸렸다고 한다면 필자의 편견일까? 무엇이나 과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목사는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어머니를 잃은 14살짜리 무남독녀를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큰 은혜를 받고 돌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저희 어머니께서 붕괴된 건물더미에 깔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평강을 제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생명으로 제 어머니를 품고 계심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5:499).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14살 소녀라고 한다면 최소한 몇 달간은 울고불고 지내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생을 달관한 듯한 말을 한다는 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모르겠다. “듣기만 해도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주는 아름다운 시”라고 그가 인용한 초등학교 5학년 소녀의 시를 여기 소개하겠다.

내 마음에는 빛이 있어/ 무엇보다 밝은 빛/ 해보다 밝고 달보다 밝아/ 별처럼 반짝이는 빛/ 어른들은 몰라/ 내 마음의 밝고 반짝이는/ 이 아름다운 빛을/ 그건/ 욕심 없는 깨끗함이야(8:93).

아마 고(故) 이오덕 선생님이 이 동시를 읽었다면 어른 흉내를 낸 죽은 글이라고 따끔하게 나무라셨을 것 같다. 매우 작위적으로 보이는 이런 예화들을 통해서 그의 설교는 흡사 솜씨 좋은 프로 권투선수가 상대선수를 코너로 몰아넣듯이 청중들을 압박한다. 이런 설교가 반복되면 청중들은 일종의 청교도적인 콤플렉스에 빠지거나 아니면 적당한 위선에 만족하는 신앙적 처세술을 배울 뿐이다.
그런데 필자의 이런 거친 비판과 달리 이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목회와 설교 행위의 기초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는 교회 개혁을 주장하더라도 그 개혁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테이프 5), 목회 철학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목회로서, 그 구체적인 목표 중의 하나가 바로 교인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케 하여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게 함으로 인간적 획일성에서 탈피하여 신앙적 시야와 경지가 넓어지도록 돕는 것”이라고 주장한다.(7:411). 이런 주장의 진정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긴 하지만 성서 해석과 설교는 이런 개인의 신앙과 인격의 진정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이 문제는 곧 신앙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인식과 관계된다.

신앙의 강화, 혹은 심화
필자는 이 목사의 설교에서 주로 신앙의 ‘강화’만 보았지 신앙의 ‘심화’는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가 자칫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신앙의 강화와 심화는 전혀 다른 차원이며, 다른 성질이다. 강화는 이미 주어진,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된 신앙의 내용을 여러 방식으로 세련되게 하거나 개혁적으로 만들거나 확실하게 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심화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령에게 철저하게 의존함으로써 생명의 신비로운 세계로 빠져들어 가는 사건이다. 강화는 겉으로는 감동적이지만 내적으로는 정체된 반면에, 심화는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는 듯하지만 내적으로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교육적인 차원이라면 신앙의 강화가 우리에게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하지만, 케리그마를 다루어야 할 주일공동예배의 설교는 전적으로 심화로 방향을 잡아야만 한다. 신앙과 삶의 일치를 예언자처럼 부르짖는 이 목사의 설교야말로 신앙의 심화에 토대를 둔 설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은 기독교 신앙이 도덕성을 회복하고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향한 놀람과 기쁨과 송영(doxology)에 있다는 사실을 좀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한국교회에 도덕성이 없다거나 개혁적이지 않다거나 교회 성장이 둔화되었다는 것보다는 신앙의 심화과정이 없다는 사실을 훨씬 본질적이고 심각한 위기로 생각한다. 도덕성과 개혁과 교회성장은 우리의 게으름과 한계에 불과하지만 신앙의 심화과정이 없다는 말은 성령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자리에서 설교와 영성, 그리고 성령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신앙의 심화 과정이라 할 기독교 영성은 어떤 신앙적 고지를 점령하거나 고상한 인격적 상태에 머무는 게 아니라 바람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시는, 따라서 신비롭게 생명의 세계를 열어 가시는 성령의 활동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우리의 영적인 인식과 연관된다는 점만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따라서 기독교 영성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의 통치와 그의 미래를 심층적으로 인식하고 자기 삶에 체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독교 영성은 기본적으로 ‘신학적 통찰’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영성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열정적인 기도와 말씀읽기, 봉사 같은 실천을 통해서 영성을 확보하는 것이지 신학적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런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영성은 경우에 따라서 단순히 인간의 심리적 작용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바른 신학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활동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영성과 바른 신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신학적 영성’이야말로 신앙을 심화하는 가장 바른 길이다.
따라서 이 목사의 설교가 단지 기존의 신앙을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강화하고, (이 시대에 반드시 요구되는 방향으로) 개혁할 뿐이지 신비한 생명의 세계를 향한 심화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근거는 그에게 신학적 영성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루려면 또 하나의 다른 글쓰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비록 이 목사에게 이런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룬 목회와 설교의 업적은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정도로 접어두고, 다만 신학적 영성에 의한 신앙의 심화에 토대를 둔 설교의 특성을 한 마디 짚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설교의 여운
그것은 곧 설교의 여운(餘韻)이다. 필자의 생각에 신앙의 심화를 지향하는 설교는 ‘여운’이 있으며,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하나님의 존재 신비와 ‘세계의 비밀로서의 하나님’(에버하르트 융엘)을 의식하고 있는 설교자라고 한다면 자기의 잠정적이고 제한적인 신앙 경험과 열정을 청중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데 온 마음을 쏟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가능한대로 줄이는 대신 성령과 성서 텍스트가 활동할 수 있는 자리를 넓히게 된다. 그 자리가 설교의 여운이며, 바로 그곳, 바로 그 순간에 청중과 말씀이 설교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만난다. 그 사이에 설교자는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설교자의 몫이 아니라 설교자의 신앙경험보다 훨씬 위대한, 즉 2천년 기독교 역사와 함께 하신 성령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경험되지 못한 진리가 언젠가는 경험될 수 있는 진리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진리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성서의 진리를 선포하게 되고, 교회의 진리가 우리의 신앙경험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헬무트 틸리케, 현대교회의 고민과 설교, 80쪽).
일상을 복음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복음을 일상의 차원에서 구체화하기 위해 신앙의 강화와 개혁에 온몸을 던졌던 이 목사가 단지 개혁전도자, 또는 대중설교자로 머물지 말고, 어쩌면 그 일만으로도 그의 사명은 이미 충분한 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인간의 경험과 언어와 열정까지 모두 폐기되는 궁극적 신비의 세계를 향해 시나브로 발걸음을 내디딜 것으로 기대한다. 제네바에서 돌아온 다음 교회를 맡지 않고 작은 교회의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며,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이 목사와 그의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혹시 필자가 잘못 짚은 부분이 있다면 똘레랑스를 베풀어 주시고, 아울러 따끔한 질책이 있기를 기다린다. (기독교사상, 2005년 4월호)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