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4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방인근(총회역사편찬위원장, 수유리교회 목사)

나는 설교 잘하는 목회자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은 사람이다. 설교는 하나님에 대해 사람에게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도 잘 모르고 사람도 잘 모르는 주제에 무슨 수로 설교를 잘 할 수가 있는 일이겠는가?

신학대학 졸업반 때 몇 달 동안 어느 잡지사 편집기자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어느 유명작가와의 만남은 나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단편적이며 피상적인지를 뼈가 저리도록 깨닫게 하였다. 소설가만큼도 인간을 모르면서, 알지도 못하는 그 인간에게 무슨 하나님 말씀씩이나 들려줄 수가 있는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제대로 아는가? 제대로 알기는 뭘 아는가, 하나님 찾아 길 떠난 영원한 길손인 주제에...

이래서 나는 설교 제대로 하는 일에 대해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사람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안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내 설교를 비평한 정용섭은 한술 더 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잘 몰라서 설교 잘하기는 애당초부터 글러 먹었다는 나에게, 하나님을 알려고도 안하는 사람이라는 지적을 하고 덤볐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설교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완벽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설교는 당연히 오직 성경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완벽하게 담고 있는 성경에 매달리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 꼭 그런 문장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내가 듣기에 그랬다는 말이다. 이것이 내가 그에게 받은 지적이고 대부분의 한국 강단의 설교자들이 받는 지적이다. 말 되는 소리 아닌가? 누가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토를 달겠는가?

나는 그의 지적을 받고 내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성당에 나간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성경을 먼발치로만 보았을 뿐이었고, 교회에 첫 출석을 했던 중학교 3학년 때 펴든 성경은 마치 외국어를 대할 때의 생경함이 느껴지는 어지간히 재미없는 책이었다. 성
경이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완벽하게 담고 있는 책이라고? 그렇다면 하나님이란 분도 어지간히 재미없는 분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이는 히브리어 원문이 담고 있는 시적(詩的)인 운치와, 살아서 팔팔 뛰는 생동감과, 가슴을 파고드는 비수 같은 예리함을 전혀 눈치도 못 챈 채 성경을 읽게 되는 이방인의 비극이며, 헬라어 원문이 담고 있는 선명한 논리와 종교적 깊이를 어림짐작도 못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는 타 언어권 사람들의 비극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나는 성경에서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얻고 성경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보다는 여타의 여러 채널을 통하여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했던 것 같다. 책 읽기, 연극 구경 다니기, 영화 보기, 서울연극제, 서울무용제, 광주비엔날레, 부산국제영화
제... 많이도 쏘다녔다. 초교파 수도자(修道者)들 모임, 신학강좌, 중국문명의 우주관을 담고 있다는 주역강좌, 마인드 컨트롤, 수지침 강좌...

그런데 정용섭은 고집스럽게 말한다.

“설교의 주제인 하나님에 관하여, 그 설교를 들려줄 대상인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거기 더하여 하나님의 깊이와 높이와 크기를 가늠케 하는 성령에 관한 모든 정보가 가장 확실하고 완벽하게 담겨 있는 책이 성경이다. 그러니 설교자는 마땅히 성경에 철저히 매달려야 한다.”

활천에 내 설교비평이 나간 후에 정용섭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사님, 목사님 설교에 대한 비판적인 비평을 너그럽게 용납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어 면구스러운걸요.”
“칭찬이라고요?”
“설교와 설교자 간에 존재하는 괴리가 문제인데, 날더러는 그런 괴리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얼마나 분에 넘치는 칭찬입니까?”
“...........”

나는 현기증이 날 만큼 대단한 칭찬을 들었고, 성경을 제쳐두고 하는 설교가 무슨 설교냐는 혹독한 비판을 들었다. 설교비평은 어느 개인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닐 터이다. 다만 모델로 제시된 설교를 통하여 설교자 모두를 향하여 화두를 던지는 작업일 뿐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설교자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에 매달려야 한다.”고. 그리고 또 말한다. “설교자는 자신이 쏟아놓는 설교와의 사이에 괴리가 없어야 한다.”고.

정용섭의 설교비평을 받기 전에도 내 책상에는 늘 원어성경이 상시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설교할 성경본문을 반복해 읽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펼쳐진 원어성경은 그냥 펼쳐진 채로 있었고 성경과 설교는 따로 놀았다.

요즘 나는 다시, 모르는 대로 성경원문과 싸운다. 단 두 단어로 된 시편 구절이 던져주는 자극에 쇼크를 받기도 하고 본문의 뜻과는 동떨어진 이해를 했던 성경말씀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누가 날더러 그런다. 내 설교에 점점 물이 올라간다고. 한방 먹고 제정신이 들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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