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칭 생략)

나는 유신시대에 신학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다.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유신헌법 아래서

그야말로 겨울공화국 국민으로 살았다.

당시 대통령은 간접 선거로 뽑혔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이름의 지역 대표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모여서 거의 100%에 가까운 찬성표를 던져서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연임제한 없이.

그 지역 대표자들은 물론 선거로 결정되지만

모두가 지역 토호들이었기에

박정희를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20대 초반 중반의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야당 경향의 사람들도 그 지역 대표로 나서지 않는지.

당시 투표권을 얻은 나는 투표장으로 가지 않았다.

투표를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를 그렇게 춥게 보냈다.

 

박정희의 딸로서

당시 5년 동안 퍼스트 레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가

지금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유력한 후보의 자리에 올라있다.

최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표지인물로

박근혜를 실었다.

제목은 '스트롱맨의 딸'이라는 것이다.

스트롱맨은 '독재자'라는 뜻이 강하다. 

한국 신문이 권력자 등으로 표기하면서논란이 일자

다음 인터넷 판에서는 구체적으로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로 표기했다고 한다.

물론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와 똑같이 대하면 안 된다.

또한 박근혜가 박정희의 독재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는

보는 입장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당시 20대 중 후반이었을 박근혜에게

많은 책임을 묻기는 힘들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박근혜의 삶이 비운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대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흉탄으로 잃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역사관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버지가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아버지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그 가족들이 풍지박산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대통령으로 나서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딸이라는 천륜을 거스르라는 강요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그럴 수 없다.

박근혜가 육영사업에 전념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

물적, 인적 자원도 충분하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그의 뜻을 좋게 보아줄 수는 없을까?

국가를 사랑하는 그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을까?

인정할 수 있다.

선의와 진정성은 바로 박근혜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나 지도자는 그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독재자들도 모두 선의와 진정성이 있었다.

사이비 교주들도 마찬가지다.

북한 지도자들도 그런 부분에는 배짱을 부릴만하다.

 

박정희의 딸이 막강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은

바로 대한민국의 정신적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막강하다는 증거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콩크리트와 같다.  

오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걸 원한다면 그게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내가 보기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도

지금 거의 막장 수준인 이명박 정권보다는 이 나라가 좋아질 것으로 본다.

이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 퇴행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퇴행은 임상의 대상일 뿐이다.   

 

 

 

profile